"키워드 : 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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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결성된 서예와 사군자 연구단체.
문인서화연구회 (文人書畵硏究會)
1940년 결성된 서예와 사군자 연구단체.
문인들의 인장(印章)을 모아 전시한 박물관.
한국문인인장박물관 (韓國文人印章博物館)
문인들의 인장(印章)을 모아 전시한 박물관.
강세황은 조선 후기 시서화에서 일가를 이룬 문인화가이다. 강한 자의식을 바탕으로 기념비적인 70세 「자화상」을 제작하였으며, 실경산수화에 서양식 투시 원근법을 도입한 『송도기행첩』을 제작하였다. 명청 대 회화 사조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남종화, 문인화풍의 화조화, 사군자화가 조선 화단에 정착하는 데 기여하였다. 풍부한 지식과 안목을 바탕으로 18세기 주요 화가들의 그림에 화평을 적었으며, 김홍도의 스승으로 알려져 있다.
강세황 (姜世晃)
강세황은 조선 후기 시서화에서 일가를 이룬 문인화가이다. 강한 자의식을 바탕으로 기념비적인 70세 「자화상」을 제작하였으며, 실경산수화에 서양식 투시 원근법을 도입한 『송도기행첩』을 제작하였다. 명청 대 회화 사조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남종화, 문인화풍의 화조화, 사군자화가 조선 화단에 정착하는 데 기여하였다. 풍부한 지식과 안목을 바탕으로 18세기 주요 화가들의 그림에 화평을 적었으며, 김홍도의 스승으로 알려져 있다.
도서는 조선시대 왜인의 통제를 위해 일본의 지방 호족이나 대마도주에게 지급한 도장이다. 조선 전기부터 사용되었으며 1635년 이후에는 사급 대상이 대마도주로 한정되었다. 대마도주가 물러나거나 사망하면 도서를 조선 정부에 반납해야 했지만 지켜지지 않고 부정한 사용의 예가 자주 발생하였다. 1872년 일본의 명치 정부가 대마번의 대조선 무역을 중지하면서 폐지되었다. 도서는 실물로 ‘길견(吉見)’, ‘의달(義達)’, ‘숭통(崇統)’ 등이 새겨진 대략 23개 정도가 현전하고 있다. 조선시대 대일 외교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제도이다.
도서 (圖書)
도서는 조선시대 왜인의 통제를 위해 일본의 지방 호족이나 대마도주에게 지급한 도장이다. 조선 전기부터 사용되었으며 1635년 이후에는 사급 대상이 대마도주로 한정되었다. 대마도주가 물러나거나 사망하면 도서를 조선 정부에 반납해야 했지만 지켜지지 않고 부정한 사용의 예가 자주 발생하였다. 1872년 일본의 명치 정부가 대마번의 대조선 무역을 중지하면서 폐지되었다. 도서는 실물로 ‘길견(吉見)’, ‘의달(義達)’, ‘숭통(崇統)’ 등이 새겨진 대략 23개 정도가 현전하고 있다. 조선시대 대일 외교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제도이다.
김광두는 조선 후기 임진왜란 때 정경세, 이전, 이준 등과 함께 함창 황령사에서 창의하여 왜군을 격퇴하였다. 전란이 끝난 후 정경세 등과 함께 사설 의료원인 존애원(存愛院)을 설립하는 데 동참하였다. 사망 후 효곡서원에 제향되었다.
김광두 (金光斗)
김광두는 조선 후기 임진왜란 때 정경세, 이전, 이준 등과 함께 함창 황령사에서 창의하여 왜군을 격퇴하였다. 전란이 끝난 후 정경세 등과 함께 사설 의료원인 존애원(存愛院)을 설립하는 데 동참하였다. 사망 후 효곡서원에 제향되었다.
조선시대 「고목우도」·「영모도」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김식 (金埴)
조선시대 「고목우도」·「영모도」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설요 묘지명은 신라 중대에 김인문과 함께 당나라에 건너가 좌무장군을 지낸 설영충의 딸 설요의 묘지명이다. 정식제목은 ‘관도곽공희설씨묘지명’이며, 당나라 시인 진자앙이 지었다. 묘지명을 보면 설요는 660년경에 태어나 675년경 아버지가 죽자 산에 들어가 수도생활을 하였다. 680년경에 「반속요」를 짓고 하산해 곽진의 첩으로 살다가 693년에 사망했다. 이 묘지명은 신라의 정치·사회·경제사 연구에 도움이 되는 내용들을 지니고 있어 자료로서 가치를 가진다. 또한 신라인으로 당나라에서 활약한 설영충 가문의 신분 강등을 통해 신라 사회의 신분문제를 추측해 볼 수 있다.
설요 묘지명 (薛瑤 墓誌銘)
설요 묘지명은 신라 중대에 김인문과 함께 당나라에 건너가 좌무장군을 지낸 설영충의 딸 설요의 묘지명이다. 정식제목은 ‘관도곽공희설씨묘지명’이며, 당나라 시인 진자앙이 지었다. 묘지명을 보면 설요는 660년경에 태어나 675년경 아버지가 죽자 산에 들어가 수도생활을 하였다. 680년경에 「반속요」를 짓고 하산해 곽진의 첩으로 살다가 693년에 사망했다. 이 묘지명은 신라의 정치·사회·경제사 연구에 도움이 되는 내용들을 지니고 있어 자료로서 가치를 가진다. 또한 신라인으로 당나라에서 활약한 설영충 가문의 신분 강등을 통해 신라 사회의 신분문제를 추측해 볼 수 있다.
『삼의당고(三宜堂稿)』는 조선 후기 여성 문인 삼의당 김씨(三宜堂金氏)의 시문을 수록한 시문집이다. 1930년에 석인본 2권 1책으로 간행되었다. 정통 한문학 창작 활동을 했던 조선 후기 여성 문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삼의당은 신분상 문예 영역에서 소외되었던 향촌의 사족 여성이었지만, 문예사적 측면에서 바라보면 조선 후기 여성 문학을 대표하고 또 다양한 주제와 양상을 시 문학으로 담아낸 작가로 평가할 수 있다.
삼의당고 (三宜堂稿)
『삼의당고(三宜堂稿)』는 조선 후기 여성 문인 삼의당 김씨(三宜堂金氏)의 시문을 수록한 시문집이다. 1930년에 석인본 2권 1책으로 간행되었다. 정통 한문학 창작 활동을 했던 조선 후기 여성 문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삼의당은 신분상 문예 영역에서 소외되었던 향촌의 사족 여성이었지만, 문예사적 측면에서 바라보면 조선 후기 여성 문학을 대표하고 또 다양한 주제와 양상을 시 문학으로 담아낸 작가로 평가할 수 있다.
조선시대 『산수화첩』을 그린 화가. 선비화가.
윤의립 (尹毅立)
조선시대 『산수화첩』을 그린 화가. 선비화가.
『소정시고』·『소정문고』는 1891년 조선 후기 문신이자 학자 김영작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간행한 시문집이다. 『소정시고』 2권 1책, 『소정문고』 4권 2책의 활자본으로, 아들 김홍집이 편집, 간행하였다. 시가는 편년순으로, 산문은 문체별로 편차되어 있다. 연행을 통해 중국 문사와 주고받은 시가와 산문이 다수 있고, 4년간 경연에서 강의한 내용도 수록되어 있다.
소정시고ㆍ소정문고 (卲亭詩稿ㆍ卲亭文稿)
『소정시고』·『소정문고』는 1891년 조선 후기 문신이자 학자 김영작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간행한 시문집이다. 『소정시고』 2권 1책, 『소정문고』 4권 2책의 활자본으로, 아들 김홍집이 편집, 간행하였다. 시가는 편년순으로, 산문은 문체별로 편차되어 있다. 연행을 통해 중국 문사와 주고받은 시가와 산문이 다수 있고, 4년간 경연에서 강의한 내용도 수록되어 있다.
조선후기 대사간, 한성좌윤, 병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유치명 (柳致明)
조선후기 대사간, 한성좌윤, 병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옥비녀』는 1947년에 「38선의 밤」 · 「진통」 · 「옥비녀」 등 총 50편의 시를 수록하여 동백사에서 간행한 모윤숙의 제2시집이다. 1933년에 첫 번째 시집 『빛나는 지역』이 간행된 이후부터 해방기에 이르기까지의 서정시를 포함해 해방 이후 정치적 혼란과 분단의 슬픔에 대한 시인의 정치적 견해가 표출된 시집이다.
옥비녀 (玉비녀)
『옥비녀』는 1947년에 「38선의 밤」 · 「진통」 · 「옥비녀」 등 총 50편의 시를 수록하여 동백사에서 간행한 모윤숙의 제2시집이다. 1933년에 첫 번째 시집 『빛나는 지역』이 간행된 이후부터 해방기에 이르기까지의 서정시를 포함해 해방 이후 정치적 혼란과 분단의 슬픔에 대한 시인의 정치적 견해가 표출된 시집이다.
1946년에 조직되었던 문인 단체.
조선청년문학가협회 (朝鮮靑年文學家協會)
1946년에 조직되었던 문인 단체.
조선후기 『농수고』, 『농수집』 등을 저술한 시인. 여항시인.
최천익 (崔天翼)
조선후기 『농수고』, 『농수집』 등을 저술한 시인. 여항시인.
조지훈(趙芝薰)은 해방 이후 『청록집』, 『풀잎단장』, 『역사앞에서』 등을 저술한 시인이자 국문학자이다. 1939년 잡지 『문장(文章)』에 추천을 받아 「고풍의상」, 「승무」 등을 발표하며 시인으로 등단하였고, 1942년에 조선어학회 『큰사전』 편찬위원이 되었으며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검거되어 심문을 받고 해방이 될 때까지 고향에서 지냈다. 또한 1947년부터 고려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초대 소장으로 『한국문화사대계(韓國文化史大系)』 제6권을 기획 및 출간하는 등 한국학의 기틀을 마련한 국문학자이다.
조지훈 (趙芝薰)
조지훈(趙芝薰)은 해방 이후 『청록집』, 『풀잎단장』, 『역사앞에서』 등을 저술한 시인이자 국문학자이다. 1939년 잡지 『문장(文章)』에 추천을 받아 「고풍의상」, 「승무」 등을 발표하며 시인으로 등단하였고, 1942년에 조선어학회 『큰사전』 편찬위원이 되었으며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검거되어 심문을 받고 해방이 될 때까지 고향에서 지냈다. 또한 1947년부터 고려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초대 소장으로 『한국문화사대계(韓國文化史大系)』 제6권을 기획 및 출간하는 등 한국학의 기틀을 마련한 국문학자이다.
현진건은 일제강점기에 「빈처」·「고향」·『적도』 등을 발표한 소설가이자 ‘일장기 말소 사건’에 관여한 언론인이다. 한국 근대문학 초창기에 완미한 단편소설 형식을 선보였고, 일제 말기에 민족주의적인 역사소설을 시도하였다. 『적도』·『무영탑』 등 장편소설 네 편과 「빈처」·「고향」 등 단편소설 30여 편 외에 번역소설 10편, 평론과 수필 40여 편을 발표했다.
현진건 (玄鎭健)
현진건은 일제강점기에 「빈처」·「고향」·『적도』 등을 발표한 소설가이자 ‘일장기 말소 사건’에 관여한 언론인이다. 한국 근대문학 초창기에 완미한 단편소설 형식을 선보였고, 일제 말기에 민족주의적인 역사소설을 시도하였다. 『적도』·『무영탑』 등 장편소설 네 편과 「빈처」·「고향」 등 단편소설 30여 편 외에 번역소설 10편, 평론과 수필 40여 편을 발표했다.
해방 이후 『리얼리즘문학론』, 『민중문학과 민족현실』, 『실패한 인생 실패한 문학』 등을 저술한 평론가. 문학평론가.
김병걸 (金炳傑)
해방 이후 『리얼리즘문학론』, 『민중문학과 민족현실』, 『실패한 인생 실패한 문학』 등을 저술한 평론가. 문학평론가.
조선전기 문신·학자 이황의 『주자서절요』에서 핵심적인 내용을 발췌하여 저술한 유학서.
주자서절요문초선 (朱子書節要文抄選)
조선전기 문신·학자 이황의 『주자서절요』에서 핵심적인 내용을 발췌하여 저술한 유학서.
미상의 저자가, 『주자어류』에서 주자와 중국 역사에 관한 내용을 뽑아 21권 8책으로 엮은 유교서.
주자어류초 (朱子語類抄)
미상의 저자가, 『주자어류』에서 주자와 중국 역사에 관한 내용을 뽑아 21권 8책으로 엮은 유교서.
조경희는 해방 이후 『낙엽의 침묵』, 『치자꽃』, 『하얀꽃들』 등을 저술한 수필가이자 언론인, 관료이다. 1918년 강화군 출생으로, 이화여자전문학교 재학 중(1938년) 『한글』에 수필 「측간단상」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졸업 후 조선일보 학예부 기자 및 다양한 신문사를 거쳤고, 1961년 한국여기자클럽 부회장직을 수행하였다. 한국여류문학인회 초대 회장,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회장 등 문인으로서도 활동하였고, 정무 제2장관 등 관료로서도 활발히 활동하였다. 상훈으로는 한국문학상, 프랑스 예술문학공로상, 대한민국 예술원상 등이 있으며, 2005년 사망했다.
조경희 (趙敬姬)
조경희는 해방 이후 『낙엽의 침묵』, 『치자꽃』, 『하얀꽃들』 등을 저술한 수필가이자 언론인, 관료이다. 1918년 강화군 출생으로, 이화여자전문학교 재학 중(1938년) 『한글』에 수필 「측간단상」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졸업 후 조선일보 학예부 기자 및 다양한 신문사를 거쳤고, 1961년 한국여기자클럽 부회장직을 수행하였다. 한국여류문학인회 초대 회장,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회장 등 문인으로서도 활동하였고, 정무 제2장관 등 관료로서도 활발히 활동하였다. 상훈으로는 한국문학상, 프랑스 예술문학공로상, 대한민국 예술원상 등이 있으며, 2005년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