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민족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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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호는 일제강점기 전도대를 조직하여 전국 순회 전도를 하며 민족 계몽 사업에 힘쓴 목사이자 독립운동가이다. 1906년 상동교회의 전덕기 목사에게 감동하여 기독교인이 되었으며 그의 지도 아래 신민회에 가입하며 민족 운동에 참여하였다. 3·1운동에서도 독립선언서를 각국 영사관에 배포하고 배재학교 학생을 시위에 동원하는 일을 맡았다. 상동청년학원, 공옥학교, 배재학교, YMCA에서 성경, 한문, 역사 등을 가르쳤다. 1998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김진호 (金鎭浩)
김진호는 일제강점기 전도대를 조직하여 전국 순회 전도를 하며 민족 계몽 사업에 힘쓴 목사이자 독립운동가이다. 1906년 상동교회의 전덕기 목사에게 감동하여 기독교인이 되었으며 그의 지도 아래 신민회에 가입하며 민족 운동에 참여하였다. 3·1운동에서도 독립선언서를 각국 영사관에 배포하고 배재학교 학생을 시위에 동원하는 일을 맡았다. 상동청년학원, 공옥학교, 배재학교, YMCA에서 성경, 한문, 역사 등을 가르쳤다. 1998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은 한국의 기독교 및 근대문화 수용을 보여주는 관련 자료를 소장, 전시하는 숭실대학교 부속 박물관이다. 매산 김양선이 해방 직후 평생 수집한 기독교 및 고고미술 박물 자료를 기초로 개관한 이래 박물관 자료를 모교인 숭실대학교에 기증한 것을 계기로 숭실대학교 부설 박물관으로 재개관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 (崇實大學校 韓國基督敎博物館)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은 한국의 기독교 및 근대문화 수용을 보여주는 관련 자료를 소장, 전시하는 숭실대학교 부속 박물관이다. 매산 김양선이 해방 직후 평생 수집한 기독교 및 고고미술 박물 자료를 기초로 개관한 이래 박물관 자료를 모교인 숭실대학교에 기증한 것을 계기로 숭실대학교 부설 박물관으로 재개관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09년 함경북도 성진시에 설립된 기독교계 여자 사립학교.
보신여학교 (普信女學校)
1909년 함경북도 성진시에 설립된 기독교계 여자 사립학교.
1920년 2월 10일 북경 거주 한국기독교 청년·학생들이 미국 공리회 예배당에서 설립한 청년회.
고려기독교청년회 (高麗基督敎靑年會)
1920년 2월 10일 북경 거주 한국기독교 청년·학생들이 미국 공리회 예배당에서 설립한 청년회.
십자가당 사건은 1933년 4월 강원도 홍천에서 기독교인들이 십자가당이란 비밀 결사를 조직하여 항일 투쟁을 전개한 민족운동이다. 계급 투쟁, 노동 해방, 물질 생활의 개혁을 추구한 사회주의와 달리 박애주의, 평화주의, 평등주의 등을 중심으로 전면적 개혁을 목표로 ‘공존공영의 지상천국 건설’을 추진하였다. 1933년 11월 일제에 의해 불온사상이라는 명목으로 탄압되었다. 기독교 사상 위에 사회주의적 민족운동을 중심으로 일제로부터 한민족을 해방시켜 기독교적인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려고 한 항일 운동이다.
십자가당 사건 (十字架黨 事件)
십자가당 사건은 1933년 4월 강원도 홍천에서 기독교인들이 십자가당이란 비밀 결사를 조직하여 항일 투쟁을 전개한 민족운동이다. 계급 투쟁, 노동 해방, 물질 생활의 개혁을 추구한 사회주의와 달리 박애주의, 평화주의, 평등주의 등을 중심으로 전면적 개혁을 목표로 ‘공존공영의 지상천국 건설’을 추진하였다. 1933년 11월 일제에 의해 불온사상이라는 명목으로 탄압되었다. 기독교 사상 위에 사회주의적 민족운동을 중심으로 일제로부터 한민족을 해방시켜 기독교적인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려고 한 항일 운동이다.
간도교육자대회는 1920년대 간도 지역 교육을 담당했던 교육자들의 모임이다. 제국주의 일본의 침략 속에서도 민족교육을 잃지 않기 위해 민족교육기관 교육자들이 전 간도 지역에 산재해 있는 교육회를 활용하여 민족운동을 실시하고자 한 것이다. 1920년대 중반부터 시작되었으며, 일제의 방해로 중단되었지만 민족교육기관의 지속적인 민족운동의 일환이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간도교육자대회 (間島敎育者大會)
간도교육자대회는 1920년대 간도 지역 교육을 담당했던 교육자들의 모임이다. 제국주의 일본의 침략 속에서도 민족교육을 잃지 않기 위해 민족교육기관 교육자들이 전 간도 지역에 산재해 있는 교육회를 활용하여 민족운동을 실시하고자 한 것이다. 1920년대 중반부터 시작되었으며, 일제의 방해로 중단되었지만 민족교육기관의 지속적인 민족운동의 일환이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