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 ()

개신교
인물
일제강점기, 전도대를 조직하여 전국 순회 전도를 하며 민족 계몽 사업에 힘쓴 목사이자 독립운동가.
이칭
애산(愛山)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73년 9월 29일
사망 연도
1960년
본관
청풍
출생지
경상북도 함창군 수하면(상주군 이안면) 가장리
주요 저서
『무화과』
대표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관련 사건
3·1운동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김진호는 일제강점기 전도대를 조직하여 전국 순회 전도를 하며 민족 계몽 사업에 힘쓴 목사이자 독립운동가이다. 1906년 상동교회의 전덕기 목사에게 감동하여 기독교인이 되었으며 그의 지도 아래 신민회에 가입하며 민족 운동에 참여하였다. 3·1운동에서도 독립선언서를 각국 영사관에 배포하고 배재학교 학생을 시위에 동원하는 일을 맡았다. 상동청년학원, 공옥학교, 배재학교, YMCA에서 성경, 한문, 역사 등을 가르쳤다. 1998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정의
일제강점기, 전도대를 조직하여 전국 순회 전도를 하며 민족 계몽 사업에 힘쓴 목사이자 독립운동가.
인적사항

김진호는 1873년 9월 29일 경상북도 상주에서 아버지 김규진(金奎晋)과 어머니 강옥산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3남 2녀를 두었다. 1960년 9월 29일 만성 위장병으로 사망하였으며, 장례는 배재고등학교장으로 실시되었다.

주요 활동

어릴 때 고향에서 한문을 배우다가 1899년에 서울로 가 당시 주1이용태(李容泰)주2으로 있으면서 말죽거리와 남대문 밖에서 주3을 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고 이어 군대 해산, 헤이그 특사 사건, 고종 퇴위 등의 국가 위기가 겹치게 될 무렵인 1906년 상동교회의 목사 전덕기(全德基)의 설교와 인격에 감동하여 기독교에 입교하였다.

전덕기의 지도로 1907년에 조직된 신민회(新民會)에 가입하여 김구(金九) · 이갑(李甲) · 양기탁(梁起鐸) · 이동휘(李東輝) 등과 항일 주4에 가담하는 한편, 1905년 이후 상동교회에 설치된 상동청년학원과 공옥학교(攻玉學校)에서 조선 역사 · 성경 · 한문 등을 가르쳤다.

1911년에 상동교회 전도사로 임명되면서 전덕기의 주5와 민족 주6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였고, 1912년에는 피어선 성경학교에 입학하여 목사직 훈련을 받았다. 1913년 감리교연회에서 전도사 임명을 받고 상동교회 소속 전도사로서 병을 앓고 있던 전덕기를 도와 목회에 전념하였다.

1914년 2월 협성신학교(協成神學校)에 입학하였고, 그 해 3월 전덕기가 사망하자 상동청년학원도 문을 닫음으로써 당시 황성기독교청년회연맹(YMCA)의 총무였던 신흥우(申興雨)의 주선으로 황성기독교청년회연맹에서 한문과 역사를 가르쳤다.

1915년 신흥우가 배재학교 교장으로 주7 1916년부터 배재학교에서 성경과 한문을 가르치게 되었으며, 정동교회 전도사직도 겸직했다. 그때부터 배재학교 학생들로 전도대(傳道隊)를 조직하여 전국순회전도를 하면서 민족 계몽 사업에 힘썼다.

1919년 3·1운동 당시에는 감리교 출신 민족 대표 및 목사 손정도(孫貞道) · 이필주(李弼柱) · 현순 등과 함께 이 운동 계획에 참여하여 인쇄된 「독립선언서」를 서울 시내 각 외국 주8에 전달하는 일과 배재학교 학생들을 시위에 동원하는 일을 하였다. 그로 인해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서울 서대문형무소에 갇히면서 징역 7월 집행유예 3년을 주9.

1920년 인천 내리교회에 부임하여 목회 활동을 하였고 그해 10월 목사 안수를 받았다. 1921년 다시 배재학교 주10으로 부임하여 1935년에 은퇴할 때까지 학생들에게 신앙과 민족 의식을 심어주었다. 1940년 함경북도에서 교회 분쟁이 일어나자 감독의 특별 주11으로 청진 · 어항 · 경성 · 주을 · 생기령 등의 교회를 맡아서 목회하였다.

광복 후에는 공산당의 압박을 피하여 1947년 6월 월남하여 한때 분쟁 중인 강릉 주문진 지역에 파송되어 이를 수습하였고, 그 뒤 서울 궁정동교회 목사로 목회 활동을 하다가 1951년 부산 가덕도 피난지에서 노령으로 은퇴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8년 대한민국 정부가 건국훈장 주12주13.

참고문헌

단행본

현대목회연구소 편, 『애산 김진호 목사 연구: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서울신학대학교 출판부, 2015)
『정동제일교회구십년사』 (정동제일교회역사편찬위원회, 1977)
『내리교회 95년사』 (내리교회역사편찬위원회, 1980)
『상동교회 90년사』 (상동교회역사편찬위원회, 1980)

논문

한규무, 「애산 김진호의 민족운동」 (『한국민족운동사연구』 91, 한국민족운동사학회, 2017)

인터넷 자료

애산 김진호(http://www.aesan.or.kr)
주석
주1

정치상의 권세를 휘두르는 사람. 또는 그런 집안. 우리말샘

주2

세력 있는 집에 머물면서 밥을 얻어먹고 지내는 사람. 또는 덕을 볼까 하고 수시로 그 집에 드나드는 사람. 우리말샘

주3

글방의 선생. 우리말샘

주4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에 대한 저항 운동. 우리나라의 3ㆍ1 운동, 중국의 5ㆍ4 운동 등을 거쳐 만주 사변 후에 격화하여 중국에서는 항일 통일 전선이 결성되는 등, 무력 투쟁으로 발전하였다. 우리말샘

주5

목사가 교회를 맡아 설교하거나 신자의 신앙생활을 지도하는 등 공식적으로 행하는 활동. 형태는 교회에 따라 다양하며 초대 교회에서 발전한 형태는 로마 가톨릭교회, 동방 정교회, 성공회 따위의 몇몇 교회에 보존되어 있다. 우리말샘

주6

식민지 상태나 종속 상태에서 압박당하는 민족이 지배 민족이나 국가의 압박에서 벗어나 독립하려는 운동. 제이 차 세계 대전 후 급속히 발전하였다. 우리말샘

주7

임명이나 발령을 받아 근무할 곳으로 가다. 우리말샘

주8

영사가 머무르는 곳에서 사무를 보는 공적으로 쓰는 집. 우리말샘

주9

공판정에서 재판장으로부터 판결을 받다. 이로써 재판의 효력이 생기며 판결 원본이 낭독되고 필요한 경우에는 이유의 요지다 설명되어야 한다. 우리말샘

주10

학교에서, 예배와 종교 교육을 맡아보는 목사. 우리말샘

주11

일정한 임무를 주어 사람을 보냄. 우리말샘

주12

건국 훈장 중 다섯 번째 등급. 우리말샘

주13

죽은 뒤에 관등을 올리거나 훈장 따위를 주다. 우리나라의 경우 긴급 상황에서 살신성인의 정신을 실천하다가 사망하거나 위급한 상황에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여 사회 전체의 본받을 만한 모범이 된 사람, 생전에 큰 공을 세워 국민의 존경을 받으며 덕망을 갖춘 사람에게 준다. 우리말샘

관련 미디어 (1)
집필자
손승호(한국기독교역사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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