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민중당"
검색결과 총 12건
한국의 대표적인 여성 정치인으로, 건국부녀동맹을 조직하여 반탁운동을 벌였고, 독립촉성애국부인회 부회장, 대한부인회총본부 회장, 제2·4·5·6대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박순천 (朴順天)
한국의 대표적인 여성 정치인으로, 건국부녀동맹을 조직하여 반탁운동을 벌였고, 독립촉성애국부인회 부회장, 대한부인회총본부 회장, 제2·4·5·6대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제8·9·10·12·14대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박일 (朴一)
제8·9·10·12·14대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김도연은 일제강점기 2·8독립운동, 조선어학회사건 등과 관련된 독립운동가, 정치인이다. 1894년 경기도 양천군 출생으로 1919년 게이오 대학 이재학부를 수료했다. 유학 시절 2·8독립운동을 주도하다 9개월 간 옥고를 치렀다. 1922년 미국 유학 후 1931년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한인사회의 발전과 해외동포 구제를 위해 노력하였다. 1942년 조선어학회사건에 연루되어 약 2년간 옥고를 치렀다. 1946년 이후 다수의 의원직을 역임하였으며, 1967년 숙환으로 사망하였다. 1991년 독립운동의 공로를 인정해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 받았다.
김도연 (金度演)
김도연은 일제강점기 2·8독립운동, 조선어학회사건 등과 관련된 독립운동가, 정치인이다. 1894년 경기도 양천군 출생으로 1919년 게이오 대학 이재학부를 수료했다. 유학 시절 2·8독립운동을 주도하다 9개월 간 옥고를 치렀다. 1922년 미국 유학 후 1931년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한인사회의 발전과 해외동포 구제를 위해 노력하였다. 1942년 조선어학회사건에 연루되어 약 2년간 옥고를 치렀다. 1946년 이후 다수의 의원직을 역임하였으며, 1967년 숙환으로 사망하였다. 1991년 독립운동의 공로를 인정해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 받았다.
윤보선은 해방 이후 대한민국 제4대 대통령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897년에 태어나 1990년에 사망했다. 20세 때 상해로 가서 임시정부 의정원으로 활동하다가 신규식·신익희 등의 권유로 영국에 유학했다. 광복 후 한국민주당 창당을 주도하여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와 대립했다. 미군정청·이승만정부에도 참여했으나 한국전쟁 중 부산정치파동을 계기로 이승만과 결별했다. 4·19 이후 제4대 대통령에 선출됐으나 5·16군사정변으로 하야했다. 제5대 대통령선거에서 박정희에게 15만 7천표 차이로 패배하고 이후 야권 지도자로서 민주화운동에 공헌했다.
윤보선 (尹潽善)
윤보선은 해방 이후 대한민국 제4대 대통령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897년에 태어나 1990년에 사망했다. 20세 때 상해로 가서 임시정부 의정원으로 활동하다가 신규식·신익희 등의 권유로 영국에 유학했다. 광복 후 한국민주당 창당을 주도하여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와 대립했다. 미군정청·이승만정부에도 참여했으나 한국전쟁 중 부산정치파동을 계기로 이승만과 결별했다. 4·19 이후 제4대 대통령에 선출됐으나 5·16군사정변으로 하야했다. 제5대 대통령선거에서 박정희에게 15만 7천표 차이로 패배하고 이후 야권 지도자로서 민주화운동에 공헌했다.
유진산은 해방 이후 3, 4, 5, 6, 7, 8, 9대 국회의원과 신민당 총재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905년 충남 금산 출생으로 1926년 와세다 대학에 입학하였으나 독서회사건으로 투옥되었다. 광복 여러 청년 조직을 결성해 청년운동을 하던 중 정계에 투신하였다. 1954년 이래 3~9대 연속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야당 중진 의원으로 활약하였으며, 1970년 신민당 총재를 역임했다. 1974년 유신헌법개헌투쟁을 선언하고 나섰으나 결장암으로 죽었다. 유진산은 권모술수에 능한 합리주의자로, 민주정치의 기본을 대화와 타협에 두었던 정치인이었다.
유진산 (柳珍山)
유진산은 해방 이후 3, 4, 5, 6, 7, 8, 9대 국회의원과 신민당 총재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905년 충남 금산 출생으로 1926년 와세다 대학에 입학하였으나 독서회사건으로 투옥되었다. 광복 여러 청년 조직을 결성해 청년운동을 하던 중 정계에 투신하였다. 1954년 이래 3~9대 연속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야당 중진 의원으로 활약하였으며, 1970년 신민당 총재를 역임했다. 1974년 유신헌법개헌투쟁을 선언하고 나섰으나 결장암으로 죽었다. 유진산은 권모술수에 능한 합리주의자로, 민주정치의 기본을 대화와 타협에 두었던 정치인이었다.
전진한은 해방 이후 초대 사회부장관, 민정당 부총재 등을 역임한 정치인, 사회운동가이다. 1901년 경북 문경 출생으로 서울로 상경해 고학 중 1920년 기미육영회의 동경유학생으로 선발되었다. 유학시절인 1926년 동지들과 ‘협동조합운동사’를 만들어 항일운동, 노동운동, 협동조합운동, 대중운동의 발판을 삼았다. 1948년 제헌국회의원에 당선된 후 초대 사회부장관을 지냈다. 5차례의 국회의원을 지내면서 민정당 부총재, 민중당 지도위원 등을 지냈으며, 통일문제에 관심을 쏟았다. 1967년 대통령 선거에 입후보하였으며, 1972년 4월 별세했다.
전진한 (錢鎭漢)
전진한은 해방 이후 초대 사회부장관, 민정당 부총재 등을 역임한 정치인, 사회운동가이다. 1901년 경북 문경 출생으로 서울로 상경해 고학 중 1920년 기미육영회의 동경유학생으로 선발되었다. 유학시절인 1926년 동지들과 ‘협동조합운동사’를 만들어 항일운동, 노동운동, 협동조합운동, 대중운동의 발판을 삼았다. 1948년 제헌국회의원에 당선된 후 초대 사회부장관을 지냈다. 5차례의 국회의원을 지내면서 민정당 부총재, 민중당 지도위원 등을 지냈으며, 통일문제에 관심을 쏟았다. 1967년 대통령 선거에 입후보하였으며, 1972년 4월 별세했다.
정명섭은 해남군수, 국회의원, 국회 교통체신위원장, 자유민주당 중앙위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910년 전남 나주 출신으로 광주고보 시절 광주학생의거에 참여하였다. 일본 주오대 법학부 대학원을 졸업하고 해방 후 해남·화순·장흥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대한탁구협회 회장, 세계탁구연맹 이사, 국회 교통체신위원장, 대한연탄공업협회 회장을 지냈다. 자유당 공천으로 제3·4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자유민주당을 창당하여 제6대 국회의원이 되었다. 제7대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낙선한 후 호남육림 사장, 의원동우회 부회장 등을 역임하다 1997년 별세했다.
정명섭 (丁明燮)
정명섭은 해남군수, 국회의원, 국회 교통체신위원장, 자유민주당 중앙위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910년 전남 나주 출신으로 광주고보 시절 광주학생의거에 참여하였다. 일본 주오대 법학부 대학원을 졸업하고 해방 후 해남·화순·장흥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대한탁구협회 회장, 세계탁구연맹 이사, 국회 교통체신위원장, 대한연탄공업협회 회장을 지냈다. 자유당 공천으로 제3·4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자유민주당을 창당하여 제6대 국회의원이 되었다. 제7대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낙선한 후 호남육림 사장, 의원동우회 부회장 등을 역임하다 1997년 별세했다.
국회의원, 건설부장관, 부총리, 대한석탄공사 총재 등을 역임한 정치인·기업인.
태완선 (太完善)
국회의원, 건설부장관, 부총리, 대한석탄공사 총재 등을 역임한 정치인·기업인.
사회부 감사과장, 내무부 인사과장, 국회의원, 국회부의장 등을 역임한 정치인.
정성태 (鄭成太)
사회부 감사과장, 내무부 인사과장, 국회의원, 국회부의장 등을 역임한 정치인.
국회의원, 국회 예결위원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정계 은퇴 후 신한종합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로 활동한 정치인·법조인.
이충환 (李忠煥)
국회의원, 국회 예결위원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정계 은퇴 후 신한종합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로 활동한 정치인·법조인.
해방 이후 서울특별시장, 외무부장관 , 국민의 당 대표최고위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허정 (許政)
해방 이후 서울특별시장, 외무부장관 , 국민의 당 대표최고위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제2데 · 제5대 국회의원 · 상공부차관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912년 3월 20일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만연리 출생으로, 화순금융조합장을 지냈고, 광복 후에는 대한독립촉성국민회 화순군지부 총무위원, 대한국민회 화순군지부 사무국장, 화순중학교 후원회장 등을 역임했다. 1950년 5월 30일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되었다. 1971년 윤보선, 장준하가 이끄는 국민당 창당에 참여해, 정무위원 겸 운영위원으로 활동했다. 2005년 4월 9일 숙환으로 사망했으며, 5·18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박민기 (朴珉基)
제2데 · 제5대 국회의원 · 상공부차관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912년 3월 20일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만연리 출생으로, 화순금융조합장을 지냈고, 광복 후에는 대한독립촉성국민회 화순군지부 총무위원, 대한국민회 화순군지부 사무국장, 화순중학교 후원회장 등을 역임했다. 1950년 5월 30일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되었다. 1971년 윤보선, 장준하가 이끄는 국민당 창당에 참여해, 정무위원 겸 운영위원으로 활동했다. 2005년 4월 9일 숙환으로 사망했으며, 5·18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