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민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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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진회는 1906년 12월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조직된 계몽 단체이다. 1906년 12월 2일 민찬호가 이내수, 임준호, 임정수 등과 함께 하와이 동포의 자치, 민족의식 고취, 생활 개선, 조선 문화 수호 등을 목적으로 조직하였으며, 기관지 『공진회보』를 발행하였다.
공진회 (共進會)
공진회는 1906년 12월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조직된 계몽 단체이다. 1906년 12월 2일 민찬호가 이내수, 임준호, 임정수 등과 함께 하와이 동포의 자치, 민족의식 고취, 생활 개선, 조선 문화 수호 등을 목적으로 조직하였으며, 기관지 『공진회보』를 발행하였다.
1930년 1월 일본 오사카(大阪)에 거주하는 조선인을 위하여 설립된 의료기관.
오사카조선무산자진료소 (Oosaka[大阪]朝鮮無産者診療所)
1930년 1월 일본 오사카(大阪)에 거주하는 조선인을 위하여 설립된 의료기관.
1925년 12월 13일 하와이 대한인동지회에서 설립한 합자회사.
동지식산회사 (同志殖産會社)
1925년 12월 13일 하와이 대한인동지회에서 설립한 합자회사.
1925년 한미 두 민족간의 친목과 복리를 증진하기 위해서 설립한 단체.
조미구락부 (朝美俱樂部)
1925년 한미 두 민족간의 친목과 복리를 증진하기 위해서 설립한 단체.
1906년 5월 10일 로스앤젤레스시(나성)에서 한국인들이 설립한 최초의 장로교회.
나성한인연합장로교회 (羅城韓人聯合長老敎會)
1906년 5월 10일 로스앤젤레스시(나성)에서 한국인들이 설립한 최초의 장로교회.
하와이에서 세운 한인 최초의 이민교회.
그리스도연합감리교회(하와이) (←Kristos聯合監理敎會(Hawaii))
하와이에서 세운 한인 최초의 이민교회.
다뉴바 한인장로교회는 1912년 9월 미국 캘리포니아 다뉴바에 거주하는 한인들이 세운 장로교회이다. 다뉴바는 유명한 과일 생산지로 이 지역 과일농장에서 일하는 한인근로자들이 증가하자 교회를 설립하게 되었다. 이치완 전도사의 인도로 설립되어 한때 교인이 150명에 이르기도 했으나 한인의 급감으로 1958년 폐쇄되었다. 중가주 지역 한인교회 가운데 가장 먼저 설립되어 이 지역 한인들과 한인교회들의 구심점이 되었다. 독립운동 모금, 3.1운동 기념식 개최, 민족운동 단체의 설립, 중경 임시정부 지원 등 미주 독립운동사에서 큰 위치를 차지한다.
다뉴바 한인장로교회 (Dinuba 韓人長老敎會)
다뉴바 한인장로교회는 1912년 9월 미국 캘리포니아 다뉴바에 거주하는 한인들이 세운 장로교회이다. 다뉴바는 유명한 과일 생산지로 이 지역 과일농장에서 일하는 한인근로자들이 증가하자 교회를 설립하게 되었다. 이치완 전도사의 인도로 설립되어 한때 교인이 150명에 이르기도 했으나 한인의 급감으로 1958년 폐쇄되었다. 중가주 지역 한인교회 가운데 가장 먼저 설립되어 이 지역 한인들과 한인교회들의 구심점이 되었다. 독립운동 모금, 3.1운동 기념식 개최, 민족운동 단체의 설립, 중경 임시정부 지원 등 미주 독립운동사에서 큰 위치를 차지한다.
조선민족혁명당 미주총지부는 미주 한인들에 의해 설립된 독립운동 단체이다. 중국에서 활동 중인 민족혁명당을 후원하고 미주 내 선전 및 외교활동을 추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민족혁명당의 조선의용대가 대한민국임시정부 광복군에 합류된다는 사실을 접하고 1942년에 결성했다. 결성 초기 회장은 변준호, 총무는 김강 등 대부분 미국 내 진보적인 한인들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민족혁명당에 대한 자금원조 및 군사 운동을 위한 군사금 모금 활동에 주력했다. 기관지 『독립』을 발행했는데 1955년까지 지속했다. 이 단체는 미주한인사회에 새로운 정치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조선민족혁명당 미주총지부 (朝鮮民族革命黨 美州總支部)
조선민족혁명당 미주총지부는 미주 한인들에 의해 설립된 독립운동 단체이다. 중국에서 활동 중인 민족혁명당을 후원하고 미주 내 선전 및 외교활동을 추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민족혁명당의 조선의용대가 대한민국임시정부 광복군에 합류된다는 사실을 접하고 1942년에 결성했다. 결성 초기 회장은 변준호, 총무는 김강 등 대부분 미국 내 진보적인 한인들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민족혁명당에 대한 자금원조 및 군사 운동을 위한 군사금 모금 활동에 주력했다. 기관지 『독립』을 발행했는데 1955년까지 지속했다. 이 단체는 미주한인사회에 새로운 정치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태평양잡지』는 1913년 하와이에서 이승만이 시사교양의 증진과 독립된 주권 회복을 도모하기 위하여 발행한 한국어 잡지이다. 이승만이 영문신문을 발간하려다 재정난으로 국문잡지로 전환하여 창간하였다. 1930년까지 간행되었으며 이후 『태평양주보』로 확대 발행되었다. 발행 부수는 대략 500부 내외로 미주와 극동에 배포되었다. 국제 정세, 동서양의 정치 사상과 제도, 일제의 식민통치와 한국의 실상 등 다양한 내용을 다루는 종합월간지였다. 1930년대 이전 하와이 한인사회의 면모와 이승만의 사상 및 활동을 고찰할 수 있다.
태평양잡지 (太平洋雜誌)
『태평양잡지』는 1913년 하와이에서 이승만이 시사교양의 증진과 독립된 주권 회복을 도모하기 위하여 발행한 한국어 잡지이다. 이승만이 영문신문을 발간하려다 재정난으로 국문잡지로 전환하여 창간하였다. 1930년까지 간행되었으며 이후 『태평양주보』로 확대 발행되었다. 발행 부수는 대략 500부 내외로 미주와 극동에 배포되었다. 국제 정세, 동서양의 정치 사상과 제도, 일제의 식민통치와 한국의 실상 등 다양한 내용을 다루는 종합월간지였다. 1930년대 이전 하와이 한인사회의 면모와 이승만의 사상 및 활동을 고찰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