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박세채"
검색결과 총 31건
『남계집』은 조선 후기 문신이자 학자인 박세채의 시문집이다. 저자는 1689년 기사환국 이후 파주로 돌아온 뒤 수년 간 한거(閑居)하면서 자신의 시문을 산정해 놓았다. 이후 저자의 후손과 문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갈리면서, 서로 입장을 달리하는 이들 사이의 갈등이 문집 간행을 둘러싸고 드났다. 그래서 문집은 결국 1732년에 이르러 조현명(趙顯命)에 의해 간행되었다. 본집은 정집 87권, 외집 16권, 속집 22권 합 56책이다. 맨 앞에 정집의 목록 2권 1책이 상·하로 실려 있다. 서문은 없다.
남계집 (南溪集)
『남계집』은 조선 후기 문신이자 학자인 박세채의 시문집이다. 저자는 1689년 기사환국 이후 파주로 돌아온 뒤 수년 간 한거(閑居)하면서 자신의 시문을 산정해 놓았다. 이후 저자의 후손과 문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갈리면서, 서로 입장을 달리하는 이들 사이의 갈등이 문집 간행을 둘러싸고 드났다. 그래서 문집은 결국 1732년에 이르러 조현명(趙顯命)에 의해 간행되었다. 본집은 정집 87권, 외집 16권, 속집 22권 합 56책이다. 맨 앞에 정집의 목록 2권 1책이 상·하로 실려 있다. 서문은 없다.
조선 후기에, 『관산유고』 등을 저술한 학자.
박문빈 (朴文彬)
조선 후기에, 『관산유고』 등을 저술한 학자.
조선 후기에, 혜민서제조 등을 역임한 문신.
박미 (朴瀰)
조선 후기에, 혜민서제조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사간원정언, 홍문관수찬, 이조좌랑 등을 역임한 문신.
박태손 (朴泰遜)
조선 후기에, 사간원정언, 홍문관수찬, 이조좌랑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금창부위 등을 역임한 문신.
박태정 (朴泰定)
조선 후기에, 금창부위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사헌부지평, 동지돈녕부사, 동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박필균 (朴弼均)
조선 후기에, 사헌부지평, 동지돈녕부사, 동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병조참지, 성균관좨주, 장례원판결사 등을 역임한 문신.
박필부 (朴弼傅)
조선 후기에, 병조참지, 성균관좨주, 장례원판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후기 문신 최규서가 인생의 경력과 사회의 견문에 대하여 1730년에 작성한 수필집.
병후만록 (病後漫錄)
조선후기 문신 최규서가 인생의 경력과 사회의 견문에 대하여 1730년에 작성한 수필집.
김간은 조선 후기 연산현감, 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학자이다. 박세채의 제자로서 노론을 대표하는 학자로 활동하였으며, 산림(山林)으로 여러 차례 벼슬에 임명되었으나 응하지 않고 학문 연구에 매진하였다. 특히 예학에 밝아 『동유예설(東儒禮說)』, 『예기유집(禮記類輯)』 등을 집필하였다.
김간 (金榦)
김간은 조선 후기 연산현감, 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학자이다. 박세채의 제자로서 노론을 대표하는 학자로 활동하였으며, 산림(山林)으로 여러 차례 벼슬에 임명되었으나 응하지 않고 학문 연구에 매진하였다. 특히 예학에 밝아 『동유예설(東儒禮說)』, 『예기유집(禮記類輯)』 등을 집필하였다.
조선 후기에, 대사간, 우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신완 (申琓)
조선 후기에, 대사간, 우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호조좌랑, 경기도도사, 황해감사 등을 역임한 문신.
신임 (申銋)
조선 후기에, 호조좌랑, 경기도도사, 황해감사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시강원서연관, 금성현령, 호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신경 (申暻)
조선 후기에, 시강원서연관, 금성현령, 호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상의원직장, 귀후서주부, 의금부도사 등을 역임한 문신.
심원준 (沈元俊)
조선 후기에, 상의원직장, 귀후서주부, 의금부도사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경상감사, 대사헌, 대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
신방 (申昉)
조선 후기에, 경상감사, 대사헌, 대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상의원첨정, 홍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세구 (李世龜)
조선 후기에, 상의원첨정, 홍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연잉군의 스승으로 추천되었으며, 지돈녕부사 등을 역임하였고, 『속동유사우록』을 저술한 학자.
이세환 (李世瑍)
조선 후기에, 연잉군의 스승으로 추천되었으며, 지돈녕부사 등을 역임하였고, 『속동유사우록』을 저술한 학자.
조선 후기에, 예문관검열, 홍문관수찬 등을 역임한 문신.
송주석 (宋疇錫)
조선 후기에, 예문관검열, 홍문관수찬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후기 대사성, 개성유수, 호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송징은 (宋徵殷)
조선후기 대사성, 개성유수, 호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조선 후기에, 대사간, 개성부유수, 부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
임영 (林泳)
조선 후기에, 대사간, 개성부유수, 부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
윤증은 조선후기 『명재유고』, 『명재의례문답』, 『명재유서』 등을 저술한 학자이다. 1629년(인조 7)에 태어나 1714년(숙종 40)에 사망했다. 김집의 문하에서 주자에 관해 배웠고, 송시열에게서 『주자대전』을 배웠다. 효종 말년 학업과 행실이 뛰어난 인물로 조정에 천거되어 여러 관직이 제수되었으나 모두 사양하고 부임하지 않았다. 아버지 윤선거의 묘지명을 계기로 송시열과 사제간의 의리가 끊어졌다. 이후 윤증이 송시열을 배반하고 헐뜯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노론과 소론으로 갈라진 치열한 당쟁에서 소론의 영수로서 송시열과 대립했다.
윤증 (尹拯)
윤증은 조선후기 『명재유고』, 『명재의례문답』, 『명재유서』 등을 저술한 학자이다. 1629년(인조 7)에 태어나 1714년(숙종 40)에 사망했다. 김집의 문하에서 주자에 관해 배웠고, 송시열에게서 『주자대전』을 배웠다. 효종 말년 학업과 행실이 뛰어난 인물로 조정에 천거되어 여러 관직이 제수되었으나 모두 사양하고 부임하지 않았다. 아버지 윤선거의 묘지명을 계기로 송시열과 사제간의 의리가 끊어졌다. 이후 윤증이 송시열을 배반하고 헐뜯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노론과 소론으로 갈라진 치열한 당쟁에서 소론의 영수로서 송시열과 대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