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박영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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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균은 우리나라 개화운동의 대표적 인물이자 갑신정변의 주모자이다. 1870년대 개화사상을 수용하였고 개화당을 조직하였다. 1884년 12월 우정국 준공 축하연 날에 갑신정변을 단행하였다. 청국으로부터의 독립과 양반 지배체제 청산 등의 정령을 반포하는 개혁을 진행하였지만, 46시간 만에 실패로 끝났다. 이후 일본으로 망명하였다가 1894년 다시 상하이로 망명하였으나 자객 홍종우에게 암살당하였다. 갑오개혁 시기에 사면 복권되었고, 1910년에 충달공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김옥균 (金玉均)
김옥균은 우리나라 개화운동의 대표적 인물이자 갑신정변의 주모자이다. 1870년대 개화사상을 수용하였고 개화당을 조직하였다. 1884년 12월 우정국 준공 축하연 날에 갑신정변을 단행하였다. 청국으로부터의 독립과 양반 지배체제 청산 등의 정령을 반포하는 개혁을 진행하였지만, 46시간 만에 실패로 끝났다. 이후 일본으로 망명하였다가 1894년 다시 상하이로 망명하였으나 자객 홍종우에게 암살당하였다. 갑오개혁 시기에 사면 복권되었고, 1910년에 충달공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개화당은 근대 개화기 독립과 개화를 기치로 조선 사회의 개혁을 위하여 1884년 갑신정변(甲申政變)을 일으킨 정치 집단이다. 1870년대 조선 후기 실학사상과 박규수, 오경석, 유홍기 등이 형성한 초기 개화사상, 중국을 통해 수용한 서구 문물 등을 공부한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홍영식 등이 현실 정치에서 개화사상을 실현하고 개화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형성한 정치 세력이다. 개화당은 급진적 개혁을 추진하고자 1884년 12월 갑신정변을 일으켰으나 실패하였다.
개화당 (開化黨)
개화당은 근대 개화기 독립과 개화를 기치로 조선 사회의 개혁을 위하여 1884년 갑신정변(甲申政變)을 일으킨 정치 집단이다. 1870년대 조선 후기 실학사상과 박규수, 오경석, 유홍기 등이 형성한 초기 개화사상, 중국을 통해 수용한 서구 문물 등을 공부한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홍영식 등이 현실 정치에서 개화사상을 실현하고 개화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형성한 정치 세력이다. 개화당은 급진적 개혁을 추진하고자 1884년 12월 갑신정변을 일으켰으나 실패하였다.
1883년(고종 20) 인쇄·출판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던 관서.
박문국 (博文局)
1883년(고종 20) 인쇄·출판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던 관서.
개항기 통리기무아문주사, 도승지 등을 역임한 관료.
박영교 (朴泳敎)
개항기 통리기무아문주사, 도승지 등을 역임한 관료.
개항기 때, 박영효, 김옥균, 서광범 등 개화파가 계획한 갑신정변을 도왔으며, 『근세조선정감』 등을 저술한 학자.
박제경 (朴齊絅)
개항기 때, 박영효, 김옥균, 서광범 등 개화파가 계획한 갑신정변을 도왔으며, 『근세조선정감』 등을 저술한 학자.
조선 후기에, 동부승지, 공조참의, 예조판서, 평안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김만식 (金晩植)
조선 후기에, 동부승지, 공조참의, 예조판서, 평안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항기 때, 갑신정변 당시의 궁녀.
고대수 (顧大嫂)
개항기 때, 갑신정변 당시의 궁녀.
수신사는 1876년, 조일수호조규 체결 이후부터 주일 조선공사가 파견되기 전까지 네 차례 일본에 파견한 사절단이다. 수신사란 ‘옛 우호를 닦고 신의를 두터이 하기 위해’ 파견된 사절을 의미한다. 처음에는 일본 사절 파견에 답례로 파견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통상 문제 협상, 정치적 사건 수습 등으로 사절 파견의 성격이 바뀌어 나갔다.
수신사 (修信使)
수신사는 1876년, 조일수호조규 체결 이후부터 주일 조선공사가 파견되기 전까지 네 차례 일본에 파견한 사절단이다. 수신사란 ‘옛 우호를 닦고 신의를 두터이 하기 위해’ 파견된 사절을 의미한다. 처음에는 일본 사절 파견에 답례로 파견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통상 문제 협상, 정치적 사건 수습 등으로 사절 파견의 성격이 바뀌어 나갔다.
조선 후기에, 박영효 암살미수사건과 관련된 정객.
권재수 (權在壽)
조선 후기에, 박영효 암살미수사건과 관련된 정객.
1919년 서울에서 조직되었던 일제강점기의 친일단체.
유민회 (維民會)
1919년 서울에서 조직되었던 일제강점기의 친일단체.
1884년(고종 21) 갑신정변의 시발점이 된 사건.
우정국사건 (郵政局事件)
1884년(고종 21) 갑신정변의 시발점이 된 사건.
개항기 김옥균암살사건의 주모자.
이일직 (李逸稙)
개항기 김옥균암살사건의 주모자.
개항기 경리국장, 군부협판, 군부대신서리 등을 역임한 관료.
이주회 (李周會)
개항기 경리국장, 군부협판, 군부대신서리 등을 역임한 관료.
해방 이후 『조선상고민족사』, 『한국기독교 선교의 신배경』 등을 저술한 학자. 법의학자, 병리학자, 역사학자.
최동 (崔棟)
해방 이후 『조선상고민족사』, 『한국기독교 선교의 신배경』 등을 저술한 학자. 법의학자, 병리학자, 역사학자.
전우는 조선 후기 『안자편』, 『연원정종』, 『간재집』 등을 저술한 학자이다. 1841년(헌종 7)에 출생하여 1922년 사망하였다. 자는 자명(子明), 호는 구산(臼山), 추담(秋潭), 간재(艮齋)이다. 이재-홍직필-임헌회-전우로 이어지는 낙론 계열의 학자로 분류된다. 1908년(순종 2)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왕등도, 군산도 등으로 들어가 나라는 망하더라도 도학을 일으켜 국권을 회복하겠다고 결심하였다. 1912년 계화도에 정착하여 계화도(繼華島: 중화를 잇는다는 뜻)라 부르면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저술과 제자 양성에 힘썼다.
전우 (田愚)
전우는 조선 후기 『안자편』, 『연원정종』, 『간재집』 등을 저술한 학자이다. 1841년(헌종 7)에 출생하여 1922년 사망하였다. 자는 자명(子明), 호는 구산(臼山), 추담(秋潭), 간재(艮齋)이다. 이재-홍직필-임헌회-전우로 이어지는 낙론 계열의 학자로 분류된다. 1908년(순종 2)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왕등도, 군산도 등으로 들어가 나라는 망하더라도 도학을 일으켜 국권을 회복하겠다고 결심하였다. 1912년 계화도에 정착하여 계화도(繼華島: 중화를 잇는다는 뜻)라 부르면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저술과 제자 양성에 힘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