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벽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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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송산리 고분군 내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 제25대 무령왕과 왕비의 능.
무령왕릉 (武寧王陵)
충청남도 공주시 송산리 고분군 내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 제25대 무령왕과 왕비의 능.
지하에 묘광을 판 후 돌을 이용하여 무덤방을 만든 매장시설. 석실묘·석실분.
돌방무덤 (돌房무덤)
지하에 묘광을 판 후 돌을 이용하여 무덤방을 만든 매장시설. 석실묘·석실분.
벽돌무덤은 벽돌을 이용하여 일정한 양식으로 축조한 무덤양식이다. 벽돌을 재료로 하여 축조된 무덤으로 전축분이라고 부른다. 덧널무덤[木槨墓] 축조로 산림자원이 감소하여 제작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반도의 벽돌무덤은 낙랑과 백제에서만 발견되는데 낙랑은 중국 한나라의 양식이고 백제는 남조 양나라의 양식을 모방하였다. 낙랑의 벽돌무덤은 고구려 돌방무덤이 확산되면서 점차 소멸하였다. 백제의 벽돌무덤은 부여로 천도한 이후 완전히 사라졌다. 하지만 터널형의 널방 형식은 부여고분군 및 대가야세력권의 함안·고령 지역 고분군에 이어졌다.
벽돌무덤 (甓돌무덤)
벽돌무덤은 벽돌을 이용하여 일정한 양식으로 축조한 무덤양식이다. 벽돌을 재료로 하여 축조된 무덤으로 전축분이라고 부른다. 덧널무덤[木槨墓] 축조로 산림자원이 감소하여 제작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반도의 벽돌무덤은 낙랑과 백제에서만 발견되는데 낙랑은 중국 한나라의 양식이고 백제는 남조 양나라의 양식을 모방하였다. 낙랑의 벽돌무덤은 고구려 돌방무덤이 확산되면서 점차 소멸하였다. 백제의 벽돌무덤은 부여로 천도한 이후 완전히 사라졌다. 하지만 터널형의 널방 형식은 부여고분군 및 대가야세력권의 함안·고령 지역 고분군에 이어졌다.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벽돌무덤·굴식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公州 武寧王陵과 王陵園)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벽돌무덤·굴식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전탑은 점토를 장방형으로 빚어 말린 뒤 가마에서 구워 만든 벽돌로 쌓은 탑이다. 전탑(磚塔), 전탑(甎塔), 벽탑(甓塔) 등으로도 표기한다. 전탑 건립 시점은 분황사 모전석탑을 근거로 선덕여왕 때로 추정하고 있다. 모전석탑(模塼石塔)과 전탑은 축조 방식에서 유사점을 찾을 수 있으나 돌과 벽돌이라는 재료 차이가 분명하다. 전탑은 경주 석장사지 전탑 유적을 시작으로 울산 농소읍 중산리 사지 전탑, 청도 불영사 전탑, 대구 송림사 전탑, 청도 운문사 작압전, 창녕 전탑, 여주 신륵사 전탑 등을 제외하면 안동 지역에 밀집해 있다.
전탑 (塼塔)
전탑은 점토를 장방형으로 빚어 말린 뒤 가마에서 구워 만든 벽돌로 쌓은 탑이다. 전탑(磚塔), 전탑(甎塔), 벽탑(甓塔) 등으로도 표기한다. 전탑 건립 시점은 분황사 모전석탑을 근거로 선덕여왕 때로 추정하고 있다. 모전석탑(模塼石塔)과 전탑은 축조 방식에서 유사점을 찾을 수 있으나 돌과 벽돌이라는 재료 차이가 분명하다. 전탑은 경주 석장사지 전탑 유적을 시작으로 울산 농소읍 중산리 사지 전탑, 청도 불영사 전탑, 대구 송림사 전탑, 청도 운문사 작압전, 창녕 전탑, 여주 신륵사 전탑 등을 제외하면 안동 지역에 밀집해 있다.
대한제국기에 건립된 한식목구조 건물로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에 위치하는 성공회 성당건물.
강화 온수리 성공회성당 (江華 溫水里 聖公會聖堂)
대한제국기에 건립된 한식목구조 건물로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에 위치하는 성공회 성당건물.
발해고분(渤海古墳)은 고구려계의 돌무덤과 말갈계의 흙무덤을 중심으로 벽돌무덤, 탑무덤, 금당식무덤이 나타나는 발해 영역의 무덤이다. 돌무덤은 굴식과 구덩식의 돌방무덤 및 돌널무덤이 있고, 흙무덤도 널무덤, 돌깐무덤, 돌돌린무덤 등으로 다양하다. 장법도 단인장, 다인합장, 1차장, 2차장 등이 있다. 이는 발해 주민 구성이 단일하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탑무덤과 금당식무덤의 존재는 발해 왕실이 불교에 심취하였음을 말해 주며, 돌무덤과 흙무덤의 분포는 발해를 구성하였던 고구려계와 말갈계 주민들의 기본 거주 지역을 반영한다.
발해 고분 (渤海 古墳)
발해고분(渤海古墳)은 고구려계의 돌무덤과 말갈계의 흙무덤을 중심으로 벽돌무덤, 탑무덤, 금당식무덤이 나타나는 발해 영역의 무덤이다. 돌무덤은 굴식과 구덩식의 돌방무덤 및 돌널무덤이 있고, 흙무덤도 널무덤, 돌깐무덤, 돌돌린무덤 등으로 다양하다. 장법도 단인장, 다인합장, 1차장, 2차장 등이 있다. 이는 발해 주민 구성이 단일하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탑무덤과 금당식무덤의 존재는 발해 왕실이 불교에 심취하였음을 말해 주며, 돌무덤과 흙무덤의 분포는 발해를 구성하였던 고구려계와 말갈계 주민들의 기본 거주 지역을 반영한다.
서울특별시 중구에 있는 개항기 에 건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벽돌조의 고딕 성당. 천주교성당.
서울 약현성당 (서울 藥峴聖堂)
서울특별시 중구에 있는 개항기 에 건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벽돌조의 고딕 성당. 천주교성당.
장무이묘(張撫夷墓)는 황해북도 봉산군에 있는 대방군 태수 장무이의 벽돌방무덤이다. 봉산군에서 문자벽돌이 채집되면서 주민들 사이에서 도총이라고 불리던 무덤에 대하여 세키노 다다시〔關野貞〕가 1911년 최초로 조사를 실시하었다. 부장 유물은 이미 도굴되어 거의 남지 않았는데, 문자벽돌이 발견되어 무덤의 주인이 장무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피장자는 낙랑 · 대방군의 멸망과 함께 망명하여 허호를 받은 중국계 인물로 볼 수 있는데, 이와 같은 맥락에서 장무이묘는 고구려에 의해 4세기 중엽경에 축조된 무덤일 가능성이 크다.
장무이 묘 (張撫夷 墓)
장무이묘(張撫夷墓)는 황해북도 봉산군에 있는 대방군 태수 장무이의 벽돌방무덤이다. 봉산군에서 문자벽돌이 채집되면서 주민들 사이에서 도총이라고 불리던 무덤에 대하여 세키노 다다시〔關野貞〕가 1911년 최초로 조사를 실시하었다. 부장 유물은 이미 도굴되어 거의 남지 않았는데, 문자벽돌이 발견되어 무덤의 주인이 장무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피장자는 낙랑 · 대방군의 멸망과 함께 망명하여 허호를 받은 중국계 인물로 볼 수 있는데, 이와 같은 맥락에서 장무이묘는 고구려에 의해 4세기 중엽경에 축조된 무덤일 가능성이 크다.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왕실 제의 관련 사적지. 제사유적.
공주 정지산 유적 (公州 艇止山 遺蹟)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왕실 제의 관련 사적지. 제사유적.
벽돌을 장방형으로 쌓아서 만든 무덤양식. 전실분.
벽돌방무덤 (甓돌房무덤)
벽돌을 장방형으로 쌓아서 만든 무덤양식. 전실분.
일제강점기에 선교사 아담스가 건립한 근대 조적식 건물로 대구광역시 중구에 있는 학교건물.
계성학교 아담스관 (啓聖學校 Adams館)
일제강점기에 선교사 아담스가 건립한 근대 조적식 건물로 대구광역시 중구에 있는 학교건물.
북한 황해남도 배천군에 있는 고려전기 도기와 청자를 굽던 가마터.
원산리 청자가마터 (圓山里 靑磁가마터)
북한 황해남도 배천군에 있는 고려전기 도기와 청자를 굽던 가마터.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벽돌조 건물로서 대구광역시 중구에 위치한 학교건물.
구 대구상업학교 본관 (舊 大邱商業學校 本館)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벽돌조 건물로서 대구광역시 중구에 위치한 학교건물.
평양토성리고분군(平壤土城洞古墳群)은 평양직할시 락랑구역에 있는 낙랑군의 무덤군이다. 낙랑구역 내 다른 무덤군처럼 덧널무덤과 벽돌무덤이 중심을 이루고 있으며 그 이행 과정이 잘 나타나 있다. 특히 45호에서 출토된 후한 대의 시유도기는 낙랑군에 다양한 출신의 인물들이 거주하였으며 귀향하지 않고 현지에 묻힌 사례도 있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이 무덤군은 기년명과 청동거울, 그리고 상한연대가 알려진 토기류의 출토를 통해 이 시기에 축조된 고분들의 조영 시기를 가늠할 수 있는 자료가 확보되었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학술적 의의가 있다.
평양 토성리 고분군 (平壤 土城里 古墳群)
평양토성리고분군(平壤土城洞古墳群)은 평양직할시 락랑구역에 있는 낙랑군의 무덤군이다. 낙랑구역 내 다른 무덤군처럼 덧널무덤과 벽돌무덤이 중심을 이루고 있으며 그 이행 과정이 잘 나타나 있다. 특히 45호에서 출토된 후한 대의 시유도기는 낙랑군에 다양한 출신의 인물들이 거주하였으며 귀향하지 않고 현지에 묻힌 사례도 있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이 무덤군은 기년명과 청동거울, 그리고 상한연대가 알려진 토기류의 출토를 통해 이 시기에 축조된 고분들의 조영 시기를 가늠할 수 있는 자료가 확보되었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학술적 의의가 있다.
평양정오동고분군(平壤貞梧洞古墳群)은 평양직할시 락랑구역 정오동 일대에 있는 낙랑군의 무덤군이다. 일제강점기부터 조사가 되기 시작하였으나 발굴 내용이 구체적으로 알려진 무덤은 10여 기 정도로 덧널무덤이 대부분이다. 개별 무덤의 성격과 출토 유물은 기본적으로 평양정백동고분군과 비슷한 점이 많다. 특히 덧널 내 피장자의 성별을 구별할 수 있는 복식 유물이 등장하여 성별에 따라 부장품의 구성과 위계가 달라진 점은 주목할 만하다. 덧널무덤에서 벽돌무덤으로의 이행 과정이 잘 나타나 있는 무덤군이다.
평양 정오동 고분군 (平壤 貞梧洞 古墳群)
평양정오동고분군(平壤貞梧洞古墳群)은 평양직할시 락랑구역 정오동 일대에 있는 낙랑군의 무덤군이다. 일제강점기부터 조사가 되기 시작하였으나 발굴 내용이 구체적으로 알려진 무덤은 10여 기 정도로 덧널무덤이 대부분이다. 개별 무덤의 성격과 출토 유물은 기본적으로 평양정백동고분군과 비슷한 점이 많다. 특히 덧널 내 피장자의 성별을 구별할 수 있는 복식 유물이 등장하여 성별에 따라 부장품의 구성과 위계가 달라진 점은 주목할 만하다. 덧널무덤에서 벽돌무덤으로의 이행 과정이 잘 나타나 있는 무덤군이다.
봉산양동리고분군(鳳山養洞里古墳群)은 북한 황해북도 봉산군에 있는 낙랑군의 무덤군이다. 1917년과 1922년에 발굴 조사가 실시되었으나 전모가 알려진 것은 양동리 3 · 5호분이다. 양동리 3 · 5호분은 방대형 분구와 궁륭형 천장의 전형적인 낙랑계 벽돌무덤이다. 출토된 각종 유물의 성격으로 보아 피장자는 군현에서 활동한 인물로 추정된다. 무덤의 구조나 토기의 양상으로 보아 양동리 3 · 5호분의 추정 연대는 3세기 전반으로 볼 수 있으며, 이 지역에 축조된 벽돌무덤의 연대를 가늠할 수 있는 기준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봉산 양동리 고분군 (鳳山 養洞里 古墳群)
봉산양동리고분군(鳳山養洞里古墳群)은 북한 황해북도 봉산군에 있는 낙랑군의 무덤군이다. 1917년과 1922년에 발굴 조사가 실시되었으나 전모가 알려진 것은 양동리 3 · 5호분이다. 양동리 3 · 5호분은 방대형 분구와 궁륭형 천장의 전형적인 낙랑계 벽돌무덤이다. 출토된 각종 유물의 성격으로 보아 피장자는 군현에서 활동한 인물로 추정된다. 무덤의 구조나 토기의 양상으로 보아 양동리 3 · 5호분의 추정 연대는 3세기 전반으로 볼 수 있으며, 이 지역에 축조된 벽돌무덤의 연대를 가늠할 수 있는 기준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화룡시(和龍市) 하남촌에 있는 남북국시대 발해의 벽돌무덤. 전축분.
화룡 하남둔 고분 (和龍 河南屯 古墳)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화룡시(和龍市) 하남촌에 있는 남북국시대 발해의 벽돌무덤. 전축분.
부여 정동리 고분군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이다. 정동리 와요지 뒷산 주장산 남쪽 사면에 분포하는데 괴임식 돌방무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축조 시기는 대략 웅진시대보다 늦은 사비천도 이후인 6세기 후반 정도로 보인다. 지표 아래에서 문양전(무늬벽돌) 조각 18개를 발견하였고 서쪽으로 50∼70㎝ 떨어진 곳에서 괴석 4개가 열을 이루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벽돌의 무늬는 무문전, 연화문전, 대방명문전, 중방명문전 등이다. 벽돌 조각은 무덤 내부 바닥에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부여 정동리 고분군 (扶餘 井洞里 古墳群)
부여 정동리 고분군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이다. 정동리 와요지 뒷산 주장산 남쪽 사면에 분포하는데 괴임식 돌방무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축조 시기는 대략 웅진시대보다 늦은 사비천도 이후인 6세기 후반 정도로 보인다. 지표 아래에서 문양전(무늬벽돌) 조각 18개를 발견하였고 서쪽으로 50∼70㎝ 떨어진 곳에서 괴석 4개가 열을 이루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벽돌의 무늬는 무문전, 연화문전, 대방명문전, 중방명문전 등이다. 벽돌 조각은 무덤 내부 바닥에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 남포특별시에 있는 청동기시대 이후 집터와 고인돌·돌방무덤 관련 생활유적.
대안 태성리 고분군 (大安 台城里 古墳群)
북한 남포특별시에 있는 청동기시대 이후 집터와 고인돌·돌방무덤 관련 생활유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