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분구"
검색결과 총 10건
분구묘는 분구를 먼저 조성한 다음 그 안에 매장시설을 설치하는 무덤양식이다. 돌이나 흙으로 무덤의 외형을 구축하는 원리, 혹은 분구와 매장시설 관계의 측면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중부 이남의 서해안 일원에서 원삼국시대 말기에 등장하여 6세기까지 유행했던 묘제이다. 축조 재료에 따라 돌무지분구묘, 성토분구묘, 이음돌분구묘로 나눌 수 있는데 성토분구묘가 성행하였다. 성토분구묘는 호서와 호남지방에서 축조되었는데 방형이나 원형의 저분구묘(低墳丘墓)로 발전하였다. 저분구묘는 분구를 덧붙이는 중대형의 분구묘와 대형 독널과 돌방이 복합되는 대형 분구묘로 발전하였다.
분구묘 (墳丘墓)
분구묘는 분구를 먼저 조성한 다음 그 안에 매장시설을 설치하는 무덤양식이다. 돌이나 흙으로 무덤의 외형을 구축하는 원리, 혹은 분구와 매장시설 관계의 측면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중부 이남의 서해안 일원에서 원삼국시대 말기에 등장하여 6세기까지 유행했던 묘제이다. 축조 재료에 따라 돌무지분구묘, 성토분구묘, 이음돌분구묘로 나눌 수 있는데 성토분구묘가 성행하였다. 성토분구묘는 호서와 호남지방에서 축조되었는데 방형이나 원형의 저분구묘(低墳丘墓)로 발전하였다. 저분구묘는 분구를 덧붙이는 중대형의 분구묘와 대형 독널과 돌방이 복합되는 대형 분구묘로 발전하였다.
전라남도 나주시 반남면에 있는 초기국가시대 마한의 독널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나주 신촌리 고분군 (羅州 新村里 古墳群)
전라남도 나주시 반남면에 있는 초기국가시대 마한의 독널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고분은 사람의 시신을 매장한 시설물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후기 구석기시대에 인간의 지능 발달과 함께 무덤의 기념물화가 시작되면서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양한 형식의 무덤들이 만들어졌다. 무덤 중에서도 고대국가 형성 이후의 무덤을 고분이라 하여 역사를 연구하고 재구성하는 학술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고분에 대한 연구는 묘지와 그 분포, 봉토 및 묘역 시설, 매장주체시설 및 매장법, 껴묻거리(부장품) 등 4가지 요소로 나누어 진행되고 있다.
고분 (古墳)
고분은 사람의 시신을 매장한 시설물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후기 구석기시대에 인간의 지능 발달과 함께 무덤의 기념물화가 시작되면서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양한 형식의 무덤들이 만들어졌다. 무덤 중에서도 고대국가 형성 이후의 무덤을 고분이라 하여 역사를 연구하고 재구성하는 학술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고분에 대한 연구는 묘지와 그 분포, 봉토 및 묘역 시설, 매장주체시설 및 매장법, 껴묻거리(부장품) 등 4가지 요소로 나누어 진행되고 있다.
고성내산리고분군(固城內山里古墳群)은 경상남도 고성군 동해면에 있는 삼국시대 소가야의 유력 집단이 축조한 고분군이다. 5~6세기경 60여 기의 봉토분이 축조되었으며, 분구묘적 축조 방식과 여러덧널식 구조를 특징으로 한다. 장신구류, 마구류 같은 위세품이 부장되고, 특히 당시 신라, 일본, 마한, 대가야와의 교류를 짐작할 수 있는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를 통해 고성내산리고분군의 축조 집단은 해상을 무대로 주변 세력과 활발한 교역을 했던 소가야권의 유력 집단으로 볼 수 있다.
고성 내산리 고분군 (固城 內山里 古墳群)
고성내산리고분군(固城內山里古墳群)은 경상남도 고성군 동해면에 있는 삼국시대 소가야의 유력 집단이 축조한 고분군이다. 5~6세기경 60여 기의 봉토분이 축조되었으며, 분구묘적 축조 방식과 여러덧널식 구조를 특징으로 한다. 장신구류, 마구류 같은 위세품이 부장되고, 특히 당시 신라, 일본, 마한, 대가야와의 교류를 짐작할 수 있는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를 통해 고성내산리고분군의 축조 집단은 해상을 무대로 주변 세력과 활발한 교역을 했던 소가야권의 유력 집단으로 볼 수 있다.
둘 이상의 시신을 무덤 하나에 함께 묻는 무덤양식. 합장묘.
어울무덤
둘 이상의 시신을 무덤 하나에 함께 묻는 무덤양식. 합장묘.
장성 영천리 고분은 전라남도 장성군 장성읍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굴식돌방무덤이다. ‘말뫼(말무덤)’라고도 부른다. 원형의 봉토를 가진 고총 1기가 조사되었는데 봉분은 직경 17m에 높이가 3m 정도이다. 돌방 장축은 동-서 방향 구릉과 직교하도록 되어 있고 남쪽에 널길[羨道]이 달려 있는 굴식돌방이다. 유물은 대부분 도굴되었고 금제귀걸이, 접시, 그릇받침 편들, 뚜껑접시, 뚜껑 항아리 등이 발견되었다. 축조 연대는 주로 편평한 깬돌을 이용하여 돌방을 구축한 점 등으로 보아 늦어도 백제 웅진기(475∼538년)인 6세기 전반으로 보인다.
장성 영천리 고분 (長城 鈴泉里 古墳)
장성 영천리 고분은 전라남도 장성군 장성읍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굴식돌방무덤이다. ‘말뫼(말무덤)’라고도 부른다. 원형의 봉토를 가진 고총 1기가 조사되었는데 봉분은 직경 17m에 높이가 3m 정도이다. 돌방 장축은 동-서 방향 구릉과 직교하도록 되어 있고 남쪽에 널길[羨道]이 달려 있는 굴식돌방이다. 유물은 대부분 도굴되었고 금제귀걸이, 접시, 그릇받침 편들, 뚜껑접시, 뚜껑 항아리 등이 발견되었다. 축조 연대는 주로 편평한 깬돌을 이용하여 돌방을 구축한 점 등으로 보아 늦어도 백제 웅진기(475∼538년)인 6세기 전반으로 보인다.
봉분이나은 분구가 방추형 또는 방대형으로 축조된 무덤양식.
방형분 (方形墳)
봉분이나은 분구가 방추형 또는 방대형으로 축조된 무덤양식.
방형으로 에워싸는 주구를 돌리고 그 안에 매장시설을 설치하는 무덤양식.
방형주구묘 (方形周構墓)
방형으로 에워싸는 주구를 돌리고 그 안에 매장시설을 설치하는 무덤양식.
고창 봉덕리 고분군은 마한 분구묘 전통을 가진 백제시대 분구묘이다. 2호분을 제외한 3기의 고분은 평면 장방형에 분정부가 편평한 방대형을 띠며, 장변의 길이가 60m 이상, 높이 5m 내외의 대형 규모이다. 1호분 발굴조사 결과, 총 5기의 석축묘와 2기의 옹관묘가 확인되었고, 4호 석실에서는 금동신발을 비롯한 최상급 위세품이 출토되었다.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봉덕리에 있으며, 2015년 9월 24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고창 봉덕리 고분군 (高敞 鳳德里 古墳群)
고창 봉덕리 고분군은 마한 분구묘 전통을 가진 백제시대 분구묘이다. 2호분을 제외한 3기의 고분은 평면 장방형에 분정부가 편평한 방대형을 띠며, 장변의 길이가 60m 이상, 높이 5m 내외의 대형 규모이다. 1호분 발굴조사 결과, 총 5기의 석축묘와 2기의 옹관묘가 확인되었고, 4호 석실에서는 금동신발을 비롯한 최상급 위세품이 출토되었다.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봉덕리에 있으며, 2015년 9월 24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서산 부장리 고분군은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집터와 돌덧널무덤 관련 복합유적이다. 2004년 아파트 부지를 조성하기 위한 사전 문화재조사 과정에서 확인되었다. 청동시시대의 주거지와 백제시대의 분구묘를 비롯하여 조선시대 토광묘 등 260여 기가 출토되었다. 특히 백제의 분구묘와 주거지의 공간 배치가 구분되어 있어서 당시 묘장 풍습과 취락 구조를 연구할 수 있는 자료이다. 또한 5호 분구묘에서 출토된 금동관과 철제 초두는 최고 지배자의 무덤에서만 발굴되는 것으로 지방 세력과 중앙 세력의 정치적 관계 등 백제사 연구에 있어서 그 학술적 가치가 크다.
서산 부장리 고분군 (瑞山 副長里 古墳群)
서산 부장리 고분군은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집터와 돌덧널무덤 관련 복합유적이다. 2004년 아파트 부지를 조성하기 위한 사전 문화재조사 과정에서 확인되었다. 청동시시대의 주거지와 백제시대의 분구묘를 비롯하여 조선시대 토광묘 등 260여 기가 출토되었다. 특히 백제의 분구묘와 주거지의 공간 배치가 구분되어 있어서 당시 묘장 풍습과 취락 구조를 연구할 수 있는 자료이다. 또한 5호 분구묘에서 출토된 금동관과 철제 초두는 최고 지배자의 무덤에서만 발굴되는 것으로 지방 세력과 중앙 세력의 정치적 관계 등 백제사 연구에 있어서 그 학술적 가치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