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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자의 정실부인의 위호(位號), 또는 왕의 후궁 가운데 가장 높은 자리에 대한 위호.
빈궁 (嬪宮)
세자의 정실부인의 위호(位號), 또는 왕의 후궁 가운데 가장 높은 자리에 대한 위호.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에 있는 조선후기 제17대 효종의 후궁 안빈이씨의 무덤. 묘.
남양주 안빈묘 (南楊州 安嬪墓)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에 있는 조선후기 제17대 효종의 후궁 안빈이씨의 무덤. 묘.
고려·조선시대 왕이나 왕세자의 후궁 및 궁중 여관(女官 : 궁녀)들의 내명부 직함.
궁인직 (宮人職)
고려·조선시대 왕이나 왕세자의 후궁 및 궁중 여관(女官 : 궁녀)들의 내명부 직함.
성복은 사망한 지 3일이 되는 날에 망자의 친족들이 친소 관계에 따라 정해진 상복(喪服)으로 갈아입는 상례(喪禮)의 절차이다. 소렴을 마친 뒤에 먼저 수질, 요질, 교대를 착용하므로, 성복을 하는 날에는 상복과 상관 그리고 지팡이 등을 착용함으로써 상복의 전체 구성 요소를 갖춘다는 의미가 있다. 성복을 마친 뒤에는 죽을 먹기 시작하고 아침저녁 정해진 시간에 곡을 한다.
성복 (成服)
성복은 사망한 지 3일이 되는 날에 망자의 친족들이 친소 관계에 따라 정해진 상복(喪服)으로 갈아입는 상례(喪禮)의 절차이다. 소렴을 마친 뒤에 먼저 수질, 요질, 교대를 착용하므로, 성복을 하는 날에는 상복과 상관 그리고 지팡이 등을 착용함으로써 상복의 전체 구성 요소를 갖춘다는 의미가 있다. 성복을 마친 뒤에는 죽을 먹기 시작하고 아침저녁 정해진 시간에 곡을 한다.
조선 전기에, 판돈령부사, 예조판서, 영돈령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권홍 (權弘)
조선 전기에, 판돈령부사, 예조판서, 영돈령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아시아 중앙부에 있는 공화국.
아프가니스탄 (Afghanistan)
아시아 중앙부에 있는 공화국.
유럽 중부에 있는 공화국.
오스트리아 (Austria)
유럽 중부에 있는 공화국.
조선 후기에, 광주부윤, 장단부사, 경상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태영 (李泰永)
조선 후기에, 광주부윤, 장단부사, 경상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치외법권은 외국인이 자신이 체류하고 있는 국가의 국내법 적용을 면제받고 자기 국가의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이다. 외국인 중 국제기구 직원이나 외교사절 등은 일정 범위의 예외가 허용되는데 치외법권이 이에 해당한다. 프랑스의 법학자 피에르 에로가 치외법권의 원리를 창안하였고 18세기 말부터 통용되었다. 치외법권의 대상은 외국원수에서 점차 확대되어 공화국 대통령, 외교사절, 재외공관 등에 적용되었다. 치외법권의 내용은 크게 재판권 적용의 면제, 행정권 적용의 면제, 통신과 이동의 자유로 구분된다.
치외법권 (治外法權)
치외법권은 외국인이 자신이 체류하고 있는 국가의 국내법 적용을 면제받고 자기 국가의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이다. 외국인 중 국제기구 직원이나 외교사절 등은 일정 범위의 예외가 허용되는데 치외법권이 이에 해당한다. 프랑스의 법학자 피에르 에로가 치외법권의 원리를 창안하였고 18세기 말부터 통용되었다. 치외법권의 대상은 외국원수에서 점차 확대되어 공화국 대통령, 외교사절, 재외공관 등에 적용되었다. 치외법권의 내용은 크게 재판권 적용의 면제, 행정권 적용의 면제, 통신과 이동의 자유로 구분된다.
황후는 중국 고대에 동아시아 군주의 최고 칭호인 ‘황제(皇帝)’의 정실 부인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황제'보다 '후(后)'가 먼저 출현한 뒤 '황'과 '후'가 결합하여 성립하였다. 조선에서는 '왕(王)'과 '후'가 결합한 '왕후(王后)'라고 표현하여 왕비 사후에 추증하는 시호로 오랫동안 사용되었으며, 1894년 청일전쟁 이후 청나라와의 사대 관계를 단절하기 위해 의례가 격상되면서 생존 시의 왕비 또한 '왕후'로 부르게 되었다. 이후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고종이 황제에 즉위하면서 사망한 왕후 민씨는 '명성황후(明成皇后)'로 추존되었다.
황후 (皇后)
황후는 중국 고대에 동아시아 군주의 최고 칭호인 ‘황제(皇帝)’의 정실 부인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황제'보다 '후(后)'가 먼저 출현한 뒤 '황'과 '후'가 결합하여 성립하였다. 조선에서는 '왕(王)'과 '후'가 결합한 '왕후(王后)'라고 표현하여 왕비 사후에 추증하는 시호로 오랫동안 사용되었으며, 1894년 청일전쟁 이후 청나라와의 사대 관계를 단절하기 위해 의례가 격상되면서 생존 시의 왕비 또한 '왕후'로 부르게 되었다. 이후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고종이 황제에 즉위하면서 사망한 왕후 민씨는 '명성황후(明成皇后)'로 추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