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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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은 고려시대 옛 도읍지 평양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 구역이다. 태조 때 황폐해진 평양을 복구하고 서경을 설치하였다. 근본의 땅으로 인식되면서 개경과 함께 양경(兩京)을 구성하였다. 역대 국왕이 자주 순행(巡幸)하였으며, 이곳에서 정사를 볼 수 있도록 분사(分司)가 설치되었다. 인종 때 서경의 반란이 진압된 후 그 위상이 하락하여 지방 도시로 정착하였다.
서경 (西京)
서경은 고려시대 옛 도읍지 평양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 구역이다. 태조 때 황폐해진 평양을 복구하고 서경을 설치하였다. 근본의 땅으로 인식되면서 개경과 함께 양경(兩京)을 구성하였다. 역대 국왕이 자주 순행(巡幸)하였으며, 이곳에서 정사를 볼 수 있도록 분사(分司)가 설치되었다. 인종 때 서경의 반란이 진압된 후 그 위상이 하락하여 지방 도시로 정착하였다.
서경은 고려·조선 시대 관리의 임명이나 법령의 제정 등에 있어 대간(臺諫)의 서명을 거치는 제도이다. 대관과 간관이 문무 관리를 임명할 때 수직자(守職者)에게 발급하는 고신(告身) 서경과 중대 사안에 대해 서명하는 의첩(依牒) 서경으로 구분된다. 관리 임명이나 법령의 제정과 개정 등이 국왕의 의사에 의해 결정되지 않고 반드시 대간이 동의하는 서명을 거치도록 하였다. 국왕이나 정조(政曹)에 의해 결정된 사항을 대간에서 다시 심사함으로써 왕권을 견제하여 부당한 인사나 업무 처리를 막는 기능을 하였다.
서경 (署經)
서경은 고려·조선 시대 관리의 임명이나 법령의 제정 등에 있어 대간(臺諫)의 서명을 거치는 제도이다. 대관과 간관이 문무 관리를 임명할 때 수직자(守職者)에게 발급하는 고신(告身) 서경과 중대 사안에 대해 서명하는 의첩(依牒) 서경으로 구분된다. 관리 임명이나 법령의 제정과 개정 등이 국왕의 의사에 의해 결정되지 않고 반드시 대간이 동의하는 서명을 거치도록 하였다. 국왕이나 정조(政曹)에 의해 결정된 사항을 대간에서 다시 심사함으로써 왕권을 견제하여 부당한 인사나 업무 처리를 막는 기능을 하였다.
서경천도론은 고려 시기 서경(지금의 평양)으로 수도를 옮기자고 한 논의이다. 고려를 건국한 태조는 고구려의 옛 수도였던 평양을 서경이라고 칭하고 백성들을 이주시켰다. 서경 세력을 기반으로 왕위에 오른 정종이 서경천도를 시도하였으나 무산되었다. 인종대에 요나라가 멸망하고 금나라가 성장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묘청과 정지상 등이 도참설에 기반하여 서경천도를 주도하였다. 고려 주변의 국제정세와 왕권의 위상을 둘러싼 국내정세 등과도 밀접한 관련을 맺고 전개되었다. 서경천도는 평양이 고려의 확실한 영역이자 북방의 주요 거점으로서 개발되는 계기가 되었다.
서경천도론 (西京遷都論)
서경천도론은 고려 시기 서경(지금의 평양)으로 수도를 옮기자고 한 논의이다. 고려를 건국한 태조는 고구려의 옛 수도였던 평양을 서경이라고 칭하고 백성들을 이주시켰다. 서경 세력을 기반으로 왕위에 오른 정종이 서경천도를 시도하였으나 무산되었다. 인종대에 요나라가 멸망하고 금나라가 성장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묘청과 정지상 등이 도참설에 기반하여 서경천도를 주도하였다. 고려 주변의 국제정세와 왕권의 위상을 둘러싼 국내정세 등과도 밀접한 관련을 맺고 전개되었다. 서경천도는 평양이 고려의 확실한 영역이자 북방의 주요 거점으로서 개발되는 계기가 되었다.
고려시대 서경유수관(西京留守官)의 산하 관서.
동남면서북면도감 (東南面西北面都監)
고려시대 서경유수관(西京留守官)의 산하 관서.
고려시대에 서경에 설치된 원나라 통치기관.
동녕부 (東寧府)
고려시대에 서경에 설치된 원나라 통치기관.
민희는 고려 후기에 북계분대어사·감찰어사·지추밀원사 등을 역임한 무신이다. 몽골과의 화의 교섭 등에 활약한 인물이다. 몽골의 첫 번째 침입 당시 민희는 몽골 원수 살리타이를 만나 그들의 의도를 살폈다. 이후 몽골군이 개경을 포위하자 화친을 위해 몽골군의 진영을 오갔다. 또한 두 번째 침입 시기에 왕명으로 구주에 가서 몽골에 항복하도록 권유하였다. 서경에 파견되어 몽골의 다루가치를 죽이려는 일로 반란을 겪었다. 홍복원과 필현보 등의 반란을 진압하였지만, 이후 집권자 최항에 의해 유배를 갔다. 그의 사후에 공로를 인정받았다.
민희 (閔曦)
민희는 고려 후기에 북계분대어사·감찰어사·지추밀원사 등을 역임한 무신이다. 몽골과의 화의 교섭 등에 활약한 인물이다. 몽골의 첫 번째 침입 당시 민희는 몽골 원수 살리타이를 만나 그들의 의도를 살폈다. 이후 몽골군이 개경을 포위하자 화친을 위해 몽골군의 진영을 오갔다. 또한 두 번째 침입 시기에 왕명으로 구주에 가서 몽골에 항복하도록 권유하였다. 서경에 파견되어 몽골의 다루가치를 죽이려는 일로 반란을 겪었다. 홍복원과 필현보 등의 반란을 진압하였지만, 이후 집권자 최항에 의해 유배를 갔다. 그의 사후에 공로를 인정받았다.
고려시대 서경유수관(西京留守官)의 육조(六曹) 가운데 창조(倉曹)의 관직.
대관 (大官)
고려시대 서경유수관(西京留守官)의 육조(六曹) 가운데 창조(倉曹)의 관직.
평안남도 북동부 낭림산맥의 서쪽에서 발원하여 남서류하다가 남포특별시 부근에서 황해로 흘러드는 강.
대동강 (大同江)
평안남도 북동부 낭림산맥의 서쪽에서 발원하여 남서류하다가 남포특별시 부근에서 황해로 흘러드는 강.
고려시대에 지어진 작자 미상의 속악가사(俗樂歌詞).
대동강 (大同江)
고려시대에 지어진 작자 미상의 속악가사(俗樂歌詞).
묘청은 고려전기 정지상, 백수한 등의 지지로 서경천도론을 제기한 승려이다. 출생일은 미상이며 1135년(인종 13)에 사망했다. 풍수지리와 도참사상을 익힌 후 이를 바탕으로 상경은 이미 기운이 쇠했고 서경에는 왕기가 있으니 그곳으로 천도하자고 주장했다. 이자겸의 난으로 왕궁이 불타고 민심이 동요하던 상황에서 인종의 호응을 얻어 천도 준비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문신들의 강한 반대에 부딪혀 실제 천도 가능성이 희박해지자 조광·유참 등과 함께 국호를 대위라 하고 연호를 천개라 하여 난을 일으켰다가 부하들의 배신으로 죽임을 당했다.
묘청 (妙淸)
묘청은 고려전기 정지상, 백수한 등의 지지로 서경천도론을 제기한 승려이다. 출생일은 미상이며 1135년(인종 13)에 사망했다. 풍수지리와 도참사상을 익힌 후 이를 바탕으로 상경은 이미 기운이 쇠했고 서경에는 왕기가 있으니 그곳으로 천도하자고 주장했다. 이자겸의 난으로 왕궁이 불타고 민심이 동요하던 상황에서 인종의 호응을 얻어 천도 준비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문신들의 강한 반대에 부딪혀 실제 천도 가능성이 희박해지자 조광·유참 등과 함께 국호를 대위라 하고 연호를 천개라 하여 난을 일으켰다가 부하들의 배신으로 죽임을 당했다.
묘청의 난은 1135년(인종 13), 묘청 등이 서경(西京: 지금의 평양)에서 일으킨 반란이다. 승려 묘청을 비롯하여 문신 정지상(鄭知常), 일자(日者)인 백수한(白壽翰) 등 서경인들을 주축으로 하는 일군의 세력이 당시 이자겸(李資謙)의 난으로 야기된 정치적 혼란을 틈타 지리 도참설을 근거로 삼아 개경에서 서경으로의 천도를 주장하고 칭제건원(稱帝建元), 금국정벌(金國征伐)까지 주장하였다. 그러나 개경 조정의 반대에 부딪치자 서경을 중심으로 반란을 일으켰다. 묘청 등의 반란은 김부식이 이끄는 개경 토벌군에 의해 진압되었다.
묘청의 난 (妙淸의 亂)
묘청의 난은 1135년(인종 13), 묘청 등이 서경(西京: 지금의 평양)에서 일으킨 반란이다. 승려 묘청을 비롯하여 문신 정지상(鄭知常), 일자(日者)인 백수한(白壽翰) 등 서경인들을 주축으로 하는 일군의 세력이 당시 이자겸(李資謙)의 난으로 야기된 정치적 혼란을 틈타 지리 도참설을 근거로 삼아 개경에서 서경으로의 천도를 주장하고 칭제건원(稱帝建元), 금국정벌(金國征伐)까지 주장하였다. 그러나 개경 조정의 반대에 부딪치자 서경을 중심으로 반란을 일으켰다. 묘청 등의 반란은 김부식이 이끄는 개경 토벌군에 의해 진압되었다.
고려시대의 구호기관.
대비원 (大悲院)
고려시대의 구호기관.
고려전기 묘청의 난 과 관련된 관리. 역신.
김신 (金信)
고려전기 묘청의 난 과 관련된 관리. 역신.
고려전기 제1대 태조의 제19왕비.
대서원부인 (大西院夫人)
고려전기 제1대 태조의 제19왕비.
고려 후기 어사대의 기능을 이어받아 설치되었던 관청.
감찰사 (監察司)
고려 후기 어사대의 기능을 이어받아 설치되었던 관청.
고려시대 서경(西京)의 행정을 총괄하는 사무를 맡았던 것으로 믿어지는 관청.
낭관 (廊官)
고려시대 서경(西京)의 행정을 총괄하는 사무를 맡았던 것으로 믿어지는 관청.
고려전기 서경유수관(西京留守官)의 산하 관서.
대어부 (大馭府)
고려전기 서경유수관(西京留守官)의 산하 관서.
고려 중기에 김부식(金富軾)이 지은 한시.
결기궁 (結綺宮)
고려 중기에 김부식(金富軾)이 지은 한시.
일제강점기 때, 조선 유학자로서 유일하게 당시 일본의 석학들과 교류하였으며, 『해동춘추』, 『반도서경』 등을 편찬한 학자.
박장현 (朴章鉉)
일제강점기 때, 조선 유학자로서 유일하게 당시 일본의 석학들과 교류하였으며, 『해동춘추』, 『반도서경』 등을 편찬한 학자.
대위(大爲)는 1135년(인종 13)에 묘청(妙淸)이 반란을 일으킨 뒤 서경에 도읍하고 세운 나라의 국호이다. 고려의 금에 대한 사대정책을 반대하던 묘청이 서경에서 반란을 일으킨 뒤 선언한 국호이다. 연호는 ‘천개(天開)’라고 하였다. 금에 맞서는 자주독립국으로서의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대위국 (大爲國)
대위(大爲)는 1135년(인종 13)에 묘청(妙淸)이 반란을 일으킨 뒤 서경에 도읍하고 세운 나라의 국호이다. 고려의 금에 대한 사대정책을 반대하던 묘청이 서경에서 반란을 일으킨 뒤 선언한 국호이다. 연호는 ‘천개(天開)’라고 하였다. 금에 맞서는 자주독립국으로서의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