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고려 후기 서경에서 고구려부흥운동을 일으켰던 군졸.
가계 및 인적 사항
주요 활동
명종 대의 김보당 · 조위총 등과 같은 자들이 서경 권역을 근거지로 저항을 일으켰지만 곧 실패하였다. 그에 따라 무신정권은 대대적으로 지방관을 파견하고, 서경의 공해전(公廨田)을 재편하는 등 이 지역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였다. 그리고 재지 세력 내의 대립과 갈등으로 인하여 상대적으로 몰락한 자들의 불만도 누적되었을 것이다. 특히, 최충헌 정권의 전횡, 지방관의 폐단, 거란유종의 침입에 따른 가혹한 역(役)의 동원 등은 지역 사회의 불만이 고조되기에 충분한 조건이었다.
최광수를 따랐던 군사들이 어느 정도의 규모였는지도 알 수 없지만, 서경을 큰 마찰 없이 장악할 수 있었던 점에서 일정 규모를 이루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장차 큰일을 일으키려고 여러 신사(神祠)에 기도하였다.”라는 자료에서 서경 권역의 지역적 집단성을 이용하려는 측면도 엿보인다. 이는 곧 서경 권역의 현실성과 역사성이 결합할 수 있는 조건이 되었을 것이고, 최광수 등이 고구려부흥운동을 표방할 수 있는 토대였을 것으로도 판단된다.
이런 점은 다분히 앞서 동경(東京) 권역의 신라부흥운동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여겨지는데, 최광수의 재지 세력으로서의 역량과 전쟁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이 그 계기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고구려부흥운동은 여타 재지 세력들의 호응을 받지 못한 한계가 있었으며, 재지 세력 내의 배타성으로 인하여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참고문헌
원전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정씨가전(鄭氏家傳)」(『동문선(東文選)』 권 100)
단행본
- 노명호, 『고려국가와 집단의식』(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09)
- 신안식, 『고려 무인정권과 지방사회』(경인문화사, 2002)
- 이정신, 『고려 무신정권기 농민⋅천민항쟁 연구』(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1991)
논문
- 신안식, 「고려중기 삼국부흥운동의 ‘지역성’과 ‘저항성’」(『한국중세사연구』 47, 한국중세사학회, 2016)
- 이정신, 「12⋅13세기의 삼국부흥운동」(『한신인문학연구』 1, 한신대학교 출판부, 2000)
- 박종기, 「12,13세기 농민항쟁의 원인에 대한 고찰」(『동방학지』 69,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1990)
주석
-
주1
: 고려시대 몽골에 의해 멸망당한 요(遼)의 잔당인 거란(契丹) 부족. 고종 초에 고려에 침입하였음.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