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고려 후기 탐라안무사로 탐라의 저항을 진압하고 이후 대사성까지 올랐던 문신.
가계 및 인적 사항
주요 활동
1198년(신종 원년)에 기거사인(起居舍人)으로 있었는데, 이때 문하녹사(門下錄事)와 당후관(堂後官)이 숙직하는 낭사(郞舍)와 승선(承宣)에게 음식을 준비하여 접대하는 관례가 있었다. 이들이 서로 다투어 풍족하고 사치스럽게 하여 결국에는 여러 폐단이 생기게 되었다. 이에 장윤문이 이를 없애자고 건의하였으나 채택되지 않았다.
1202년(신종 5) 탐라에서 민란이 일어나자 소부소감(小府少監)으로 있던 장윤문이 중랑장(中郎將) 이당적(李唐績)과 함께 탐라(耽羅) 안무사(按撫使)가 되어 저항의 주모자인 번석(煩石)과 번수(煩守) 등을 모두 처형하고 저항을 진압하였다. 이 공로로 시대부경(試大府卿) 우간의대부(右諫議大夫) 지제고(知制誥)로 승진하였다.
1207년(희종 3)에는 정3품의 대사성(大司成)으로서 과거의 시험관이 되어 시부(詩賦)로 김남석(金南石)을, 십운시(十韻試)로 권시위(權時偉) 등 90여 명을 선발하였다. 이는 그의 문신 관료로서의 위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장윤문의 묘지명(墓誌銘)에 보면, 말년에 통의대부(通議大夫) 국자감(國子監) 대사성(大司成) 지제고(知制誥)로 치사(致仕)하였고, 쌍명재(雙明齋) 최대사(崔大師) 최당(崔讜) 형제들과 기로회(耆老會)를 만들었다고 하였다. 1211년(희종 7) 73세로 사망하였다.
참고문헌
원전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장윤문묘지명(張允文墓誌銘)」
단행본
- 김용선 편, 「장윤문묘지명」(『역주 고려묘지명집성』, 한림대학교 출판부, 2006)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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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고려ㆍ조선 시대에, 병조에 속하여 싸움터로 나갈 때 필요한 장비나 옷가지 따위의 제조를 맡아보던 관아. 때에 따라 군기시로 이름을 고치다가 고종 21년(1884)에 기기국이 되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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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현명하고 사물의 이치에 통하여 있음. 또는 그런 사람.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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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고려 시대에, 상서도성에 속한 정이품 벼슬.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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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고려 시대에, 현령이 있는 고을에 배치되어 교육을 맡아보던 지방의 벼슬아치.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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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임금의 명령을 일반에게 알릴 목적으로 적은 문서.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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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고려시대, 소부감(少府監)의 종4품 벼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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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고려ㆍ조선 시대에 둔, 성균관의 으뜸 벼슬. 정삼품의 벼슬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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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8
: 나이가 많아 벼슬을 사양하고 물러남.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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