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고려 후기 최씨 정권의 마지막 집정자 최의를 제거할 때 참여하여 위사보좌공신에 책봉된 무신.
가계 및 인적 사항
주요 활동
같은 해 12월에는 장군 박희실(朴希實)과 산원(散員) 박천식(朴天植) 등과 함께 몽골에 사신으로 가서 대몽 강화의 걸림돌이었던 최의를 제거함과 함께 출륙환도(出陸還都) 및 고려 태자의 입조(入朝)를 알리기도 하였다. 이에 몽골 황제는 조문주와 박희실에게 금부(金符)를 하사하여 만호(萬戶)로 삼았다. 이후 그의 벼슬이 내시(內侍) 대장군(大將軍)⋅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事)로 출세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조문주는 무신 집정자 김준(金俊)을 제거하고 집정자가 된 임연(林衍)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1269년(원종 10)에 임연이 원종을 폐위하고 안경공(安慶公) 왕창(王淐)을 옹립하자, 장군 김문비(金文庇)⋅윤수(尹秀)와 함께 임연을 제거하려다가 김문비의 밀고로 임연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조문주는 『고려사』 반역 열전 ‘임연전(林衍傳)’에 등장하는 조오(趙璈)라는 인물과 활동하다가 죽은 시기나 역임한 관직 및 관련 사건 등이 비슷하여 동일 인물로 추정하는 견해가 있다. 그는 견룡군(牽龍軍)의 행수(行首)와 내시 대장군 등 국왕과 친밀한 위치에 있었다. 조문주의 집안은 그의 관직과 더불어 자식 때에도 무반 관료로 진출하여 고위 관료까지 승진하면서 당대의 명문가로 성장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원전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상서도관첩(尙書都官貼)」(『문화유씨가정보(文化柳氏嘉靖譜)』)
논문
- 강재광, 「1258~1259년 장군 박희실·조문주의 대몽외교와 대몽강화」(『한국중세사연구』 34, 한국중세사학회, 2012)
- 최영호, 「13세기 중엽 조문주의 활동과 정치적 성향」(『한국중세사연구』16, 한국중세사학회, 2004)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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