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서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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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천문·지리·역수(曆數)·점산(占算)·측후(測候)·각루(刻漏) 등에 관한 일을 담당하기 위해 설치했던 관서.
관상감 (觀象監)
조선시대 천문·지리·역수(曆數)·점산(占算)·측후(測候)·각루(刻漏) 등에 관한 일을 담당하기 위해 설치했던 관서.
고려 후기의 4품 관직.
부정 (副正)
고려 후기의 4품 관직.
조선시대 관상감 소속의 정1품 관직.
영관상감사 (領觀象監事)
조선시대 관상감 소속의 정1품 관직.
사천대는 고려시대 천문 관측을 담당하던 관서이다. 태조 대부터 관련 관서가 존재하였으며, 고려 말까지 존속하였다. 천문 관측 외에 역법(曆法), 측후(測候), 각루(刻漏) 등의 일도 관장하였다. 군주는 끊임없이 천문 현상을 관찰하여 하늘의 의지를 파악하고 이에 따라 선정을 베풀어야 한다는 관념에서 이 관서가 중요시되었다.
사천대 (司天臺)
사천대는 고려시대 천문 관측을 담당하던 관서이다. 태조 대부터 관련 관서가 존재하였으며, 고려 말까지 존속하였다. 천문 관측 외에 역법(曆法), 측후(測候), 각루(刻漏) 등의 일도 관장하였다. 군주는 끊임없이 천문 현상을 관찰하여 하늘의 의지를 파악하고 이에 따라 선정을 베풀어야 한다는 관념에서 이 관서가 중요시되었다.
고려시대 천문(天文)·역수(曆數)·측후(測候)·각루(刻漏) 등의 일을 관장하던 관청.
태사국 (太史局)
고려시대 천문(天文)·역수(曆數)·측후(測候)·각루(刻漏) 등의 일을 관장하던 관청.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은 1395년(태조 4)에 권근 등 12명의 천문학자들이 만든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석각천문도이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석각천문도이다. 대리석의 앞면 윗부분에는 길이 141㎝, 폭 85㎝로 직사각형의 테두리가 있고 그 속에 지름 76㎝의 천문도 원이 그려져 있다. 상단의 천문도 원 안에는 1,467개의 별이 기록되어 있다. 하단에는 천문도의 명칭, 권근의 발문, 우주론, 제작 참여자들의 이름과 관직명 등이 기록되어 있다. 천상열차분야지도는 동아시아의 전통 시대에 제작된 석각천문도를 대표한다.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 (天象列次分野之圖 刻石)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은 1395년(태조 4)에 권근 등 12명의 천문학자들이 만든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석각천문도이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석각천문도이다. 대리석의 앞면 윗부분에는 길이 141㎝, 폭 85㎝로 직사각형의 테두리가 있고 그 속에 지름 76㎝의 천문도 원이 그려져 있다. 상단의 천문도 원 안에는 1,467개의 별이 기록되어 있다. 하단에는 천문도의 명칭, 권근의 발문, 우주론, 제작 참여자들의 이름과 관직명 등이 기록되어 있다. 천상열차분야지도는 동아시아의 전통 시대에 제작된 석각천문도를 대표한다.
운명, 길흉, 화복 따위에 관한 문제를 판단하는 학문.
명과학교육 (命課學敎育)
운명, 길흉, 화복 따위에 관한 문제를 판단하는 학문.
류방택은 고려 후기에 서운관의 판사를 역임하고 조선 초기에 권근과 함께 천상열차분야지도를 제작한 천문학자이다. 천문도(天文圖) 제작 당시에 천문 계산을 담당하였으며 직함은 가정대부(嘉靖大夫) 검교중추원부사(檢校中樞院副使) 겸 판서운관사(判書雲觀事)였다. 천문도 제작의 공로로 좌명공신(佐命功臣)으로 녹훈(錄勳)되었다.
류방택 (柳方澤)
류방택은 고려 후기에 서운관의 판사를 역임하고 조선 초기에 권근과 함께 천상열차분야지도를 제작한 천문학자이다. 천문도(天文圖) 제작 당시에 천문 계산을 담당하였으며 직함은 가정대부(嘉靖大夫) 검교중추원부사(檢校中樞院副使) 겸 판서운관사(判書雲觀事)였다. 천문도 제작의 공로로 좌명공신(佐命功臣)으로 녹훈(錄勳)되었다.
금루청은 조선시대, 궁중의 물시계인 금루(禁漏)를 관장하던 관상감의 하부 부서이다. 조선 왕조의 공식적 기록물을 통해 그 명칭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18세기 초반인 영조 대 이후지만 그 이전부터 금루관들이 업무를 보던 기구는 존재했을 터이고 그것이 바로 ‘금루청’이었을 것이다.
금루청 (禁漏廳)
금루청은 조선시대, 궁중의 물시계인 금루(禁漏)를 관장하던 관상감의 하부 부서이다. 조선 왕조의 공식적 기록물을 통해 그 명칭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18세기 초반인 영조 대 이후지만 그 이전부터 금루관들이 업무를 보던 기구는 존재했을 터이고 그것이 바로 ‘금루청’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