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성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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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성주면 성주사터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3층 석조 불탑.
보령 성주사지 중앙 삼층석탑 (保寧 聖住寺址 中央 三層石塔)
충청남도 보령시 성주면 성주사터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3층 석조 불탑.
경상남도 창원시 성주사 영산전에 있는 조선후기에 조성된 석조 불상.
창원 성주사 석조 석가삼존십육나한상 (昌原 聖住寺 石造 釋迦三尊十六羅漢像)
경상남도 창원시 성주사 영산전에 있는 조선후기에 조성된 석조 불상.
경상남도 창원시 성주사에 있는 조선후기 승호 등 18명의 조각승들이 조성한 석조 불상.
창원 성주사 석조 지장시왕상 (昌原 聖住寺 石造 地藏十王像)
경상남도 창원시 성주사에 있는 조선후기 승호 등 18명의 조각승들이 조성한 석조 불상.
창원 성주사 지장보살상 복장물 전적류는 창원시 성주사 지장전의 지장보살상 복장에서 수습된 복장유물이다. 이 지장보살상은 1681년 승호 등 18인이 제작했으며, 2010년 경남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 보살상에는 1497년 간행된 『몽산화상육도보설』 등 400년 넘은 전적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하다. 특히 『몽산화상육도보설』은 역사적 가치가 인정되어 2011년 보물로 승격 지정되었다. 『불정관세음보살대다라니경』은 한글 발음 연구에, 『예수천왕통의』는 복장물과 예배존상의 관계를 설명해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창원 성주사 지장보살상 복장물 전적류 (昌原 聖住寺 地藏菩薩像 腹藏物 典籍類)
창원 성주사 지장보살상 복장물 전적류는 창원시 성주사 지장전의 지장보살상 복장에서 수습된 복장유물이다. 이 지장보살상은 1681년 승호 등 18인이 제작했으며, 2010년 경남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 보살상에는 1497년 간행된 『몽산화상육도보설』 등 400년 넘은 전적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하다. 특히 『몽산화상육도보설』은 역사적 가치가 인정되어 2011년 보물로 승격 지정되었다. 『불정관세음보살대다라니경』은 한글 발음 연구에, 『예수천왕통의』는 복장물과 예배존상의 관계를 설명해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선문구산의 하나인 성주산문을 개산한 승려.
무염 (無染)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선문구산의 하나인 성주산문을 개산한 승려.
신라말에 형성된 선문구산(禪門九山)의 한 문파.
성주산파 (聖住山派)
신라말에 형성된 선문구산(禪門九山)의 한 문파.
고려 전기에, 태자사부, 대상 원봉대학사 한림원령 평장사 등을 역임한 문신.
최언위 (崔彦撝)
고려 전기에, 태자사부, 대상 원봉대학사 한림원령 평장사 등을 역임한 문신.
경상남도 창원시 불모산 일대의 사찰에서 범패와 작법으로 구성하여 행하는 종교의례. 불교의식.
불모산 영산재 (佛母山 靈山齋)
경상남도 창원시 불모산 일대의 사찰에서 범패와 작법으로 구성하여 행하는 종교의례. 불교의식.
진해 정암사 「아미타후불탱」 및 초본은 1905년 화승 일인이 그린 불화 및 그 초본이다. 부산 범어사 청련암에서 조성하여 창원 성주사에 봉안하였던 작품인데, 1923년에 현재의 정암사인 진해 포교당으로 옮겨 봉안하였다. 현재는 각각 목제 틀로 마감되어 있다. 2005년 10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진해 정암사 아미타후불탱 및 초본 (鎭海 淨岩寺 阿彌陀後佛幀 및 草本)
진해 정암사 「아미타후불탱」 및 초본은 1905년 화승 일인이 그린 불화 및 그 초본이다. 부산 범어사 청련암에서 조성하여 창원 성주사에 봉안하였던 작품인데, 1923년에 현재의 정암사인 진해 포교당으로 옮겨 봉안하였다. 현재는 각각 목제 틀로 마감되어 있다. 2005년 10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헌안왕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47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857~861년이다. 문성왕 대에 상대등에 있다가 조카인 문성왕의 유언으로 즉위했다. 즉위 초에 비가 오지 않고 흉년이 들어 굶주리는 사람이 많자, 제방을 수리하게 하고 농사를 권장했다. 성주사 시주인 낭혜화상 무염에게 도움이 될 말을 청하여 생활과 통치의 철학으로 삼을 정도로 불교를 적극 활용했다. 또 가지산파의 개창을 후원하여 무진주 지역의 불만세력을 회유하기도 했다. 병이 들어 자리에 누운 지 오래되자 861년 1월에 사위인 응렴에게 왕위를 선위하고 사망했다.
헌안왕 (憲安王)
헌안왕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47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857~861년이다. 문성왕 대에 상대등에 있다가 조카인 문성왕의 유언으로 즉위했다. 즉위 초에 비가 오지 않고 흉년이 들어 굶주리는 사람이 많자, 제방을 수리하게 하고 농사를 권장했다. 성주사 시주인 낭혜화상 무염에게 도움이 될 말을 청하여 생활과 통치의 철학으로 삼을 정도로 불교를 적극 활용했다. 또 가지산파의 개창을 후원하여 무진주 지역의 불만세력을 회유하기도 했다. 병이 들어 자리에 누운 지 오래되자 861년 1월에 사위인 응렴에게 왕위를 선위하고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