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고려 전기에, 태자사부, 대상 원봉대학사 한림원령 평장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935년(태조 18)에 신라 경순왕이 고려에 투항하자, 고려에 가서 태자사부(太子師傅)가 되었고 문한(文翰)을 위임받았으며, 벼슬이 대상 원봉대학사 한림원령 평장사(大相元鳳大學士翰林院令平章事)에 이르렀다. 본래 성품이 너그럽고 글을 잘해 태자사부로 있을 때 궁원(宮院)의 액호(額號)는 모두 최언위가 찬정(撰定)한 것이었으며 섬기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최언위는 최치원 · 최승우(崔承祐)와 함께 일대삼최(一代三崔)라 불리었는데, 최치원은 끝까지 신라를 섬겼고 최승우는 후백제 견훤의 책사가 된 반면에 최언위는 고려의 문한관이 된 것으로 보아 최언위의 문명이 짐작된다. 또한 서법(書法)도 남달리 아름다웠기 때문에,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朗慧和尙白月葆光塔碑)」(충청남도 보령시 성주사(聖住寺) 소재)의 비문을 찬술한 최치원의 부탁으로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의 글씨를 쓰기도 했으며, 「낭원대사오진탑비명(朗圓大師悟眞塔碑銘)」 · 「법경대사자등지탑비명(法鏡大師慈燈之塔碑銘)」 등을 찬하기도 하였다.
아들로는 최광윤(崔光胤) · 최행귀(崔行歸) · 최광원(崔光遠) · 최행종(崔行宗) 등이 있다. 이들 중에서 최광윤은 진(晋)에 유학을 가던 중 거란에게 붙잡혀 갔으나 재주를 인정받아 오히려 관직에 등용되어 구성(龜城)에서 근무하였다. 그러던 중 거란군이 고려를 침범하리라는 것을 알게 되자 고려에 서신으로 알려와 광군(光軍) 30만을 설치하는 데 일조하였다. 최행귀는 오월국(吳越國)에 유학하여 비서랑(秘書郎)이 되었다.
참고문헌
- 『삼국사기(三國史記)』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한국사: 중세편』(진단학회, 을유문화사, 1961)
- 「나말여초 지식인의 정체성: 최언위를 중심으로」(김대식, 『신라사학보』, 2007)
- 「신라말·고려초 정치질서의 재편연구」(김상돈, 서강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6)
- 「나말여초 최언위의 현실인식」(김영미, 『사학연구』50,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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