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세종실록"
검색결과 총 14건
1429년(세종 11) 예조에서 지은 경기체가.
가성덕 (歌聖德)
1429년(세종 11) 예조에서 지은 경기체가.
조선 전기 문소전(文昭殿)의 제례의식에서 연주된 악장(樂章).
미미곡 (亹亹曲)
조선 전기 문소전(文昭殿)의 제례의식에서 연주된 악장(樂章).
향악·당악·아악의 율조, 악기와 보법 등을 그림과 함께 글로 설명한 악서(樂書). 예술서.
악서찬집 (樂書撰集)
향악·당악·아악의 율조, 악기와 보법 등을 그림과 함께 글로 설명한 악서(樂書). 예술서.
조선 전기 궁중에서 사용하던 당악기.
용관 (龍管)
조선 전기 궁중에서 사용하던 당악기.
<정세>는 조선 세종대에 회례연을 위해 창제된 ⟪정대업지무악⟫ 제5변의 2편 중 제1편의 정재와 음악이다. <정세>는 정몽주가 태조의 위엄과 덕행을 시기하여 해치려 하자, 태종이 이를 제거한 내용을 담고 있다. ⟪정대업지무악⟫은 회례연을 위해 창제되었으나, 1493년(세조 9)에 종묘제례악으로 채택되었다. <정세>의 명칭은 유지되었으나, 가사가 축소되고 ⟪정대업지무악⟫ 〈탁령〉 제13행~제24행의 선율을 발췌한 악곡으로 개편되어 종묘제례악 ⟪정대업⟫의 아홉 번째 음악이자 일무로 편입되었다.
정세 (靖世)
<정세>는 조선 세종대에 회례연을 위해 창제된 ⟪정대업지무악⟫ 제5변의 2편 중 제1편의 정재와 음악이다. <정세>는 정몽주가 태조의 위엄과 덕행을 시기하여 해치려 하자, 태종이 이를 제거한 내용을 담고 있다. ⟪정대업지무악⟫은 회례연을 위해 창제되었으나, 1493년(세조 9)에 종묘제례악으로 채택되었다. <정세>의 명칭은 유지되었으나, 가사가 축소되고 ⟪정대업지무악⟫ 〈탁령〉 제13행~제24행의 선율을 발췌한 악곡으로 개편되어 종묘제례악 ⟪정대업⟫의 아홉 번째 음악이자 일무로 편입되었다.
조선시대 타악기의 하나.
응 (應)
조선시대 타악기의 하나.
〈응명(凝命)〉은 조선 전기 세종 때 창제된 《발상》 11곡 중 아홉 번째 곡이다. 노랫말은 덕원(德源)에 큰 나무 하나가 말라 죽은 지 오래되었는데, 태조(太祖) 이성계가 개국하기 1년 전에 다시 잎이 피었다는 것을 노래한 내용으로 되어 있다. 악보는 《세종실록》 권 132에 전한다.
응명 (凝命)
〈응명(凝命)〉은 조선 전기 세종 때 창제된 《발상》 11곡 중 아홉 번째 곡이다. 노랫말은 덕원(德源)에 큰 나무 하나가 말라 죽은 지 오래되었는데, 태조(太祖) 이성계가 개국하기 1년 전에 다시 잎이 피었다는 것을 노래한 내용으로 되어 있다. 악보는 《세종실록》 권 132에 전한다.
<정희>는 조선 세종 때 창제된 ⟪발상(發祥)⟫ 아홉 개의 변(變) 중 제7변의 정재와 음악이다. 세종(재위: 1418-1450) 29년 이전에 창제되었다. 가사의 내용은 태조가 신령으로부터 금자[金尺]를 받는 꿈을 꾸어 조선을 개국할 정당성을 부여 받았다는 것이다. 『세종실록』에 악보와 가사가 전하며, 『세종실록』 이후에는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정희 (禎禧)
<정희>는 조선 세종 때 창제된 ⟪발상(發祥)⟫ 아홉 개의 변(變) 중 제7변의 정재와 음악이다. 세종(재위: 1418-1450) 29년 이전에 창제되었다. 가사의 내용은 태조가 신령으로부터 금자[金尺]를 받는 꿈을 꾸어 조선을 개국할 정당성을 부여 받았다는 것이다. 『세종실록』에 악보와 가사가 전하며, 『세종실록』 이후에는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지덕>은 1447년(세종 29) 이전에 회례에 사용하기 위해 창제된 ⟪정대업지무악(定大業之舞樂)⟫ 아홉 개 변(變) 가운데 제4변의 3편 중 제1편의 정재와 음으로서, 태조악이다. 1493년(세조 9) ⟪정대업지무악⟫이 종묘제례악으로 채택됨으로 인해 <지덕>의 일부 선율이 <순응>으로 수용되어, 종묘제례악 ⟪정대업⟫ 11곡 중 여덟 번째 일무이자 음악으로 채택되어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다. 연례에 사용한 <순응>의 정재와 음악은 중종(재위: 1506-1544) 때까지 전승되었으나, 현재는 전승이 단절되었다.
지덕 (至德)
<지덕>은 1447년(세종 29) 이전에 회례에 사용하기 위해 창제된 ⟪정대업지무악(定大業之舞樂)⟫ 아홉 개 변(變) 가운데 제4변의 3편 중 제1편의 정재와 음으로서, 태조악이다. 1493년(세조 9) ⟪정대업지무악⟫이 종묘제례악으로 채택됨으로 인해 <지덕>의 일부 선율이 <순응>으로 수용되어, 종묘제례악 ⟪정대업⟫ 11곡 중 여덟 번째 일무이자 음악으로 채택되어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다. 연례에 사용한 <순응>의 정재와 음악은 중종(재위: 1506-1544) 때까지 전승되었으나, 현재는 전승이 단절되었다.
<진요>는 세종(재위: 1418~1450) 29년 이전에 창제된 ⟪정대업지무악⟫ 제6변의 2편 중 제1편의 정재와 음악이다. 무보는 없고, 가사는 『세종실록』 권116에 수록되어 있으며, 악보는 『세종실록』 권139에 수록되어 있다. 노랫말은 대마도(對馬島) 왜적(倭賊)이 은덕을 배반하고 변경(邊境)을 소란하게 하므로 태종(太宗)이 장수를 명하여 정벌한 일에 관한 내용이다. 가사 일부는 종묘제례악 <혁정>으로 전승되었다.
진요 (震耀)
<진요>는 세종(재위: 1418~1450) 29년 이전에 창제된 ⟪정대업지무악⟫ 제6변의 2편 중 제1편의 정재와 음악이다. 무보는 없고, 가사는 『세종실록』 권116에 수록되어 있으며, 악보는 『세종실록』 권139에 수록되어 있다. 노랫말은 대마도(對馬島) 왜적(倭賊)이 은덕을 배반하고 변경(邊境)을 소란하게 하므로 태종(太宗)이 장수를 명하여 정벌한 일에 관한 내용이다. 가사 일부는 종묘제례악 <혁정>으로 전승되었다.
<창부>는 조선 세종(재위: 1418-1450) 29년 이전에 창제된 ⟪발상(發祥)⟫ 아홉 개의 변(變) 중 제3변의 정재와 음악이며, 노랫말은 도조가 쏜 한 화살에 까치 두 마리가 떨어진 것이 태조가 일어날 징조라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창부 (昌符)
<창부>는 조선 세종(재위: 1418-1450) 29년 이전에 창제된 ⟪발상(發祥)⟫ 아홉 개의 변(變) 중 제3변의 정재와 음악이며, 노랫말은 도조가 쏜 한 화살에 까치 두 마리가 떨어진 것이 태조가 일어날 징조라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창휘>는 1447년(세종 29) 이전에 회례에 사용하기 위해 창제된 ⟪보태평지무악⟫ 아홉 개의 변(變) 중 제7변의 정재이자 음악이다. <창휘>의 가사는 태종이 위태롭고 의심스러운 때를 당하여 명나라에 들어가 사실을 보고하니, 천자(天子)가 융숭한 예로 대우하였다는 내용이다. ⟪보태평지무악⟫을 종묘제례악으로 채택함으로 인해, <창휘>의 가사와 선율을 축소하고, 악곡명을 <용광>으로 바꾸어 종묘제례악 《보태평》의 여덟 번째 곡으로 편입하였다.
창휘 (昌徽)
<창휘>는 1447년(세종 29) 이전에 회례에 사용하기 위해 창제된 ⟪보태평지무악⟫ 아홉 개의 변(變) 중 제7변의 정재이자 음악이다. <창휘>의 가사는 태종이 위태롭고 의심스러운 때를 당하여 명나라에 들어가 사실을 보고하니, 천자(天子)가 융숭한 예로 대우하였다는 내용이다. ⟪보태평지무악⟫을 종묘제례악으로 채택함으로 인해, <창휘>의 가사와 선율을 축소하고, 악곡명을 <용광>으로 바꾸어 종묘제례악 《보태평》의 여덟 번째 곡으로 편입하였다.
「현휴」는 조선 시대 세종 때 창제된 「발상(發祥)」 11변(變) 중 제5변의 정재와 음악이다. 「현휴」의 노랫말은 태조가 위화도에 군사를 주둔시키고 있을 때, 여러 날 장마가 져도 물이 붇지 않다가, 군사를 돌려 언덕에 오르자 큰 물이 갑자기 불어서 온 섬이 잠기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현휴 (顯休)
「현휴」는 조선 시대 세종 때 창제된 「발상(發祥)」 11변(變) 중 제5변의 정재와 음악이다. 「현휴」의 노랫말은 태조가 위화도에 군사를 주둔시키고 있을 때, 여러 날 장마가 져도 물이 붇지 않다가, 군사를 돌려 언덕에 오르자 큰 물이 갑자기 불어서 온 섬이 잠기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형광(亨光)」은 조선 전기 세종 때 회례악으로 창작된 「보태평(保太平)」 중 네 번째 곡이다. 회례악이던 「정대업」과 「보태평」을 세조 때 종묘제례악으로 쓰기 위해 개작할 때 5행 중 3행을 취하여 길이를 축소하고 「형가」라고 하였다. 비록 곡명이 바뀌었지만, 그 선율은 세조 9년 이후 종묘제례악 「보태평」의 일부로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다, 후대로 오면서는 규칙적 리듬으로 바뀌고 음계에 변화가 있었으며, 연주하는 악대의 악기 편성에도 변화가 생겼다. 「형광」의 악보는 『세종실록』 권138에 전한다.
형광 (亨光)
「형광(亨光)」은 조선 전기 세종 때 회례악으로 창작된 「보태평(保太平)」 중 네 번째 곡이다. 회례악이던 「정대업」과 「보태평」을 세조 때 종묘제례악으로 쓰기 위해 개작할 때 5행 중 3행을 취하여 길이를 축소하고 「형가」라고 하였다. 비록 곡명이 바뀌었지만, 그 선율은 세조 9년 이후 종묘제례악 「보태평」의 일부로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다, 후대로 오면서는 규칙적 리듬으로 바뀌고 음계에 변화가 있었으며, 연주하는 악대의 악기 편성에도 변화가 생겼다. 「형광」의 악보는 『세종실록』 권138에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