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속악"
검색결과 총 10건
고려후기에 발생하여 조선전기까지 약 350년간 지속된 장형의 교술시가. 경기하여가·속악가사·별곡체.
경기체가 (景幾體歌)
고려후기에 발생하여 조선전기까지 약 350년간 지속된 장형의 교술시가. 경기하여가·속악가사·별곡체.
고려 충렬왕 때 지어진 작자 미상의 가요.
사룡 (蛇龍)
고려 충렬왕 때 지어진 작자 미상의 가요.
고구려시대에 지어진 작자 미상의 가요.
내원성 (來遠城)
고구려시대에 지어진 작자 미상의 가요.
신라시대에 지어진 작자 미상의 가요.
이견대가 (利見臺歌)
신라시대에 지어진 작자 미상의 가요.
「금강성」은 조선 초에 기악곡으로 전하던 작자 미상의 고려시대 속악곡이다. 『고려사』 「악지」에 따르면, 1029년 무렵 나성 축성 기념으로 만들어졌으며, 나라 사람들이 기뻐하며 이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가사는 상실한 채 기악곡으로 전하여 조선 초기 왕실 연회에서 꽃을 올릴 때 「금강성」 가락에 맞춰 노래 불렀으나 태종대 이후로 실전된 것으로 보인다.
금강성 (金剛城)
「금강성」은 조선 초에 기악곡으로 전하던 작자 미상의 고려시대 속악곡이다. 『고려사』 「악지」에 따르면, 1029년 무렵 나성 축성 기념으로 만들어졌으며, 나라 사람들이 기뻐하며 이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가사는 상실한 채 기악곡으로 전하여 조선 초기 왕실 연회에서 꽃을 올릴 때 「금강성」 가락에 맞춰 노래 불렀으나 태종대 이후로 실전된 것으로 보인다.
악생은 조선시대 아악 연주, 노래, 일무를 담당한 악인이다. 조선 초 ‘악공’은 아악·속악 연주자를 통칭하였다. 세조의 악제 개혁 후 궁중음악 기관이 장악원으로 일원화되며 양인 아악 연주자는 ‘악생’, 천인 속악 연주자는 ‘악공’으로 구분되었으나 두 부류 모두 아악·속악을 같이 연습해야 하였다. 악생은 주로 국가 제례에서 아악 연주, 악장 노래, 일무를 담당했지만 둑제 등 속악 의식도 맡았다. 한편, 일본 왕립 음악기관인 아악료에서 음악을 전수한 고구려·백제·신라 출신의 악인을 악생이라고 했으나 장악원의 악생과는 다른 개념이다.
악생 (樂生)
악생은 조선시대 아악 연주, 노래, 일무를 담당한 악인이다. 조선 초 ‘악공’은 아악·속악 연주자를 통칭하였다. 세조의 악제 개혁 후 궁중음악 기관이 장악원으로 일원화되며 양인 아악 연주자는 ‘악생’, 천인 속악 연주자는 ‘악공’으로 구분되었으나 두 부류 모두 아악·속악을 같이 연습해야 하였다. 악생은 주로 국가 제례에서 아악 연주, 악장 노래, 일무를 담당했지만 둑제 등 속악 의식도 맡았다. 한편, 일본 왕립 음악기관인 아악료에서 음악을 전수한 고구려·백제·신라 출신의 악인을 악생이라고 했으나 장악원의 악생과는 다른 개념이다.
당악은 중국 전래의 속악과 그 체제에 의하여 창작된 악곡을 포괄한 궁정음악의 한 갈래이다. 통일신라시대에는 당나라의 속악으로 한정되었지만, 고려시대 이후로는 중국 속악을 지칭하는 의미로 바뀌었다. 통일신라시대에 성행하였으며, 고려시대에는 통일신라의 당악을 바탕으로 송조의 속악을 수용하면서 전개되었다. 광종대를 시작으로 문종대에 활발해졌으며, 예종대에 절정을 이루었다. 조선시대에는 고려 전래 당악 외에 새로운 당악을 창제하였으나, 양란 이후로 쇠퇴일로로 치달아 현재 「보허자」와 「낙양춘」을 비롯한 일부 창작곡들만 연주되고 있다.
당악 (唐樂)
당악은 중국 전래의 속악과 그 체제에 의하여 창작된 악곡을 포괄한 궁정음악의 한 갈래이다. 통일신라시대에는 당나라의 속악으로 한정되었지만, 고려시대 이후로는 중국 속악을 지칭하는 의미로 바뀌었다. 통일신라시대에 성행하였으며, 고려시대에는 통일신라의 당악을 바탕으로 송조의 속악을 수용하면서 전개되었다. 광종대를 시작으로 문종대에 활발해졌으며, 예종대에 절정을 이루었다. 조선시대에는 고려 전래 당악 외에 새로운 당악을 창제하였으나, 양란 이후로 쇠퇴일로로 치달아 현재 「보허자」와 「낙양춘」을 비롯한 일부 창작곡들만 연주되고 있다.
「야심사(夜深詞)」는 『고려사』 제71권의 속악 항목에 소개된 한문 가요이다. 3절로 구성된 노랫말이 『고려사』 「악지」, 『악장가사』, 『악학편고』에 전하고, 『시용향악보』에는 노랫말 1절과 선율이 기록되어 있다. 노랫말은 임금과 신하가 태평 시절을 즐기는 내용으로 되어 있고, 『고려사』에 의하면 연회가 끝날 무렵 노래하는 곡이라 한다. 「야심사」의 선율은 조선시대에 창제된 「정세」, 「보예」, 「집녕」의 선율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
야심사 (夜心詞)
「야심사(夜深詞)」는 『고려사』 제71권의 속악 항목에 소개된 한문 가요이다. 3절로 구성된 노랫말이 『고려사』 「악지」, 『악장가사』, 『악학편고』에 전하고, 『시용향악보』에는 노랫말 1절과 선율이 기록되어 있다. 노랫말은 임금과 신하가 태평 시절을 즐기는 내용으로 되어 있고, 『고려사』에 의하면 연회가 끝날 무렵 노래하는 곡이라 한다. 「야심사」의 선율은 조선시대에 창제된 「정세」, 「보예」, 「집녕」의 선율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
〈자하동(紫霞洞)〉은 고려 후기에 문신 채홍철(1262~1340)이 지은 한문과 이어(俚語)로 된 노래이다. 《고려사》 제71권의 속악 항목에 한문 노랫말과 내용이 소개되어 있다. 노랫말은 채홍철이 자하동 중화당에서 기로(耆老)들과 더불어 펼친 연회의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선 후기에 편찬된 《대악후보》 권7에 〈자하동〉의 악보가 전한다.
자하동 (紫霞洞)
〈자하동(紫霞洞)〉은 고려 후기에 문신 채홍철(1262~1340)이 지은 한문과 이어(俚語)로 된 노래이다. 《고려사》 제71권의 속악 항목에 한문 노랫말과 내용이 소개되어 있다. 노랫말은 채홍철이 자하동 중화당에서 기로(耆老)들과 더불어 펼친 연회의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선 후기에 편찬된 《대악후보》 권7에 〈자하동〉의 악보가 전한다.
회례는 군신동연의 의미를 담아 진행되는 의례이자 잔치이다. 정삭과 동지, 국왕 탄일에 가장 큰 규모로 시행하였었다. 국왕과 왕세자, 문무관원, 일본, 여진 등의 외방객사가 참석 대상자였다. 회례는 조정에서 시행되는데, 네 번 절하는 배례를 앞뒤로 시행하고, 본격적인 절차는 왕세자와 관원의 대표자가 각각 헌수례(獻壽禮)를 행하고, 참석자가 연회석으로 이동하여 아홉 차례에 걸쳐 술을 마시는 행주로 진행되었다. 각 절차에는 정제된 음악과 춤이 더해져서 군신이 음악을 통해 하나가 될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회례 (會禮)
회례는 군신동연의 의미를 담아 진행되는 의례이자 잔치이다. 정삭과 동지, 국왕 탄일에 가장 큰 규모로 시행하였었다. 국왕과 왕세자, 문무관원, 일본, 여진 등의 외방객사가 참석 대상자였다. 회례는 조정에서 시행되는데, 네 번 절하는 배례를 앞뒤로 시행하고, 본격적인 절차는 왕세자와 관원의 대표자가 각각 헌수례(獻壽禮)를 행하고, 참석자가 연회석으로 이동하여 아홉 차례에 걸쳐 술을 마시는 행주로 진행되었다. 각 절차에는 정제된 음악과 춤이 더해져서 군신이 음악을 통해 하나가 될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