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수어청"
검색결과 총 6건
기패관(旗牌官)은 조선 후기, 중앙과 지방의 군문에 소속된 장교직 가운데 하나이다. 임진왜란 때 창설된 훈련도감에 처음 설치되었다. 그 뒤 여러 군문에 세워졌는데 일부 비중이 큰 군문에 설치되었다. 외방의 경우 수영까지 배정되었다. 항오(行伍)도 선발되어 임기를 마치면 6품을 제수 받게 되자 신분 이동의 통로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기패관 (旗牌官)
기패관(旗牌官)은 조선 후기, 중앙과 지방의 군문에 소속된 장교직 가운데 하나이다. 임진왜란 때 창설된 훈련도감에 처음 설치되었다. 그 뒤 여러 군문에 세워졌는데 일부 비중이 큰 군문에 설치되었다. 외방의 경우 수영까지 배정되었다. 항오(行伍)도 선발되어 임기를 마치면 6품을 제수 받게 되자 신분 이동의 통로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조선 후기 수어청(守御廳)에 편제되어 있던 관직.
겸별장 (兼別將)
조선 후기 수어청(守御廳)에 편제되어 있던 관직.
무반은 고려에서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지배계층인 양반 가운데 무관 반열이다. 전문 군사직은 삼국시대에도 있었지만, 관직제도상 문무반 중 하나라는 의미를 갖는 무반제도는 관료제가 정착되기 시작한 고려초에 도입돼 조선말까지 이어졌다. 고려와 조선의 관료체계는 문반 중심으로 운영되어 무반은 상대적으로 낮은 대우를 받았다. 고려 때는 노골적인 천대가 무신란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고려 때는 무예가 출중하거나 공로를 세운 군인·향리·일품군의 장교 등에서 선발하거나 문·무 양반의 자제가 문음으로 출사했고, 조선 때는 무과를 설치해 무과급제자로 충당했다.
무반 (武班)
무반은 고려에서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지배계층인 양반 가운데 무관 반열이다. 전문 군사직은 삼국시대에도 있었지만, 관직제도상 문무반 중 하나라는 의미를 갖는 무반제도는 관료제가 정착되기 시작한 고려초에 도입돼 조선말까지 이어졌다. 고려와 조선의 관료체계는 문반 중심으로 운영되어 무반은 상대적으로 낮은 대우를 받았다. 고려 때는 노골적인 천대가 무신란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고려 때는 무예가 출중하거나 공로를 세운 군인·향리·일품군의 장교 등에서 선발하거나 문·무 양반의 자제가 문음으로 출사했고, 조선 때는 무과를 설치해 무과급제자로 충당했다.
조선 인조 때 남한산성을 개축하고 이를 수어하기 위해 설치한 수어청(守禦廳)의 종2품직 장관.
수어사 (守禦使)
조선 인조 때 남한산성을 개축하고 이를 수어하기 위해 설치한 수어청(守禦廳)의 종2품직 장관.
인조는 조선 후기, 제16대(재위: 1623~1649) 국왕이다. 광해군과 북인(北人) 정권의 극단적인 정치에 반발하여 1623년 서인(西人)의 김류(金瑬) · 이귀(李貴) · 이괄(李适) 등과 '반정(反正)'을 일으킨 뒤 추대를 받아 왕위에 올랐다. 재위 기간 중에 ‘이괄의 난’, ‘정묘호란’, ‘병자호란’ 등 국내외에서 전쟁을 치루었다.
인조 (仁祖)
인조는 조선 후기, 제16대(재위: 1623~1649) 국왕이다. 광해군과 북인(北人) 정권의 극단적인 정치에 반발하여 1623년 서인(西人)의 김류(金瑬) · 이귀(李貴) · 이괄(李适) 등과 '반정(反正)'을 일으킨 뒤 추대를 받아 왕위에 올랐다. 재위 기간 중에 ‘이괄의 난’, ‘정묘호란’, ‘병자호란’ 등 국내외에서 전쟁을 치루었다.
파총은 조선 후기, 대부분 군영에 있었던 중간 지휘관으로, 종4품 무관직이다. 편제된 사라는 단위부대의 지휘관으로, 임진왜란 때 명나라의 속오법에 의거하여 군사 조직을 개편하면서 설치되었다. 사는 최상인 영 바로 아래에 위치하였다. 실제로는 변용되기도 하면서 일부 군영에서는 소속 고을의 수령이 겸직하였다.
파총 (把摠)
파총은 조선 후기, 대부분 군영에 있었던 중간 지휘관으로, 종4품 무관직이다. 편제된 사라는 단위부대의 지휘관으로, 임진왜란 때 명나라의 속오법에 의거하여 군사 조직을 개편하면서 설치되었다. 사는 최상인 영 바로 아래에 위치하였다. 실제로는 변용되기도 하면서 일부 군영에서는 소속 고을의 수령이 겸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