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아우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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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은 일제강점기 아우내 3·1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02년에 태어나 1920년에 사망했다. 개신교 집안에서 태어나 1916년 선교사의 추천으로 이화학당에 편입했다. 3·1만세운동에 참여하여 붙잡혔으나 곧 석방되었다. 전국적으로 휴교령이 내리자 고향으로 돌아와 서울 소식을 전한 후 4월 1일 병천시장에서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했다. 검거되어 투옥 중에도 옥중만세운동을 벌였고, 오랫동안 계속된 고문과 영양실조로 18세의 나이로 순국했다.
유관순 (柳寬順)
유관순은 일제강점기 아우내 3·1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02년에 태어나 1920년에 사망했다. 개신교 집안에서 태어나 1916년 선교사의 추천으로 이화학당에 편입했다. 3·1만세운동에 참여하여 붙잡혔으나 곧 석방되었다. 전국적으로 휴교령이 내리자 고향으로 돌아와 서울 소식을 전한 후 4월 1일 병천시장에서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했다. 검거되어 투옥 중에도 옥중만세운동을 벌였고, 오랫동안 계속된 고문과 영양실조로 18세의 나이로 순국했다.
1919년 3·1운동 때 충청남도 천안시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
천안 3·1운동 (天安 三一運動)
1919년 3·1운동 때 충청남도 천안시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
아우내문화원 주관으로 음력 5월 5일 천안시 아우내장터에서 단오절을 기념하여 개최하는 문화축제이다. ‘병천 단오절 민속놀이 경연대회’ 혹은 ‘아우내 단오절 민속축제’라고도 부른다. 1974년 천안시동남구문화원에서 천안시청과 전국 문화원 연합회의 후원을 받아 아우내 장터에서 제1회 ‘단오절 그네대회’를 갖게 된 것이 효시이다. 1984년 제4회부터 행사 명칭을 ‘단오절 민속놀이 경연대회’로 바꾸고, 1990년 제9회 대회부터는 매년 행사를 개최하였다. 지역문화의 창달과 계승·발전에 크게 기여해왔다.
아우내 단오절 민속축제 (아우내 端午節 民俗祝祭)
아우내문화원 주관으로 음력 5월 5일 천안시 아우내장터에서 단오절을 기념하여 개최하는 문화축제이다. ‘병천 단오절 민속놀이 경연대회’ 혹은 ‘아우내 단오절 민속축제’라고도 부른다. 1974년 천안시동남구문화원에서 천안시청과 전국 문화원 연합회의 후원을 받아 아우내 장터에서 제1회 ‘단오절 그네대회’를 갖게 된 것이 효시이다. 1984년 제4회부터 행사 명칭을 ‘단오절 민속놀이 경연대회’로 바꾸고, 1990년 제9회 대회부터는 매년 행사를 개최하였다. 지역문화의 창달과 계승·발전에 크게 기여해왔다.
일제강점기 때, 충청남도 천안의 아우내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했다가 순국한 독립운동가.
박준규 (朴俊圭)
일제강점기 때, 충청남도 천안의 아우내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했다가 순국한 독립운동가.
박유복은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천안에서 일어난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4월 1일 충청남도 천안군 갈전면 병천리에서 일어난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수신면 복다회리에서 마을 주민과 함께 아우내 장터에 모여 독립만세를 외치다가 일본 헌병의 총격을 받아 다음날인 4월 2일 순국하였다.
박유복 (朴有福)
박유복은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천안에서 일어난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4월 1일 충청남도 천안군 갈전면 병천리에서 일어난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수신면 복다회리에서 마을 주민과 함께 아우내 장터에 모여 독립만세를 외치다가 일본 헌병의 총격을 받아 다음날인 4월 2일 순국하였다.
이소제는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천안에서 일어난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4월 1일 충청남도 천안군 갈전면 병천리에서 일어난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아우내 장터에 나가 독립만세를 외쳤고, 남편 유중권이 일본 헌병의 총탄에 맞아 순국하자 일본 헌병에게 항의하다가 역시 총탄에 맞아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이소제 (李少悌)
이소제는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천안에서 일어난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4월 1일 충청남도 천안군 갈전면 병천리에서 일어난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아우내 장터에 나가 독립만세를 외쳤고, 남편 유중권이 일본 헌병의 총탄에 맞아 순국하자 일본 헌병에게 항의하다가 역시 총탄에 맞아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최정철은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천안에서 일어난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4월 1일 충청남도 천안군 갈전면 병천리에서 일어난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만세시위를 주도한 아들 김구응의 순국을 일본 헌병들에게 항거하다가 총칼에 찔려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최정철 (崔貞徹)
최정철은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천안에서 일어난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4월 1일 충청남도 천안군 갈전면 병천리에서 일어난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만세시위를 주도한 아들 김구응의 순국을 일본 헌병들에게 항거하다가 총칼에 찔려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김구응은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천안에서 일어난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천안군 진명학교에서 교사로 활동하였다. 유관순을 만나 독립운동 상황을 전해 듣고 동지들과 독립만세운동을 추진하였다. 1919년 4월 1일 천안군 갈전면 병천리 아우내 장터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다가 헌병의 총격으로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아들의 순국 소식을 듣고 현장에 온 어머니 최정철까지 일본 헌병에게 죽음을 당하였다.
김구응 (金球應)
김구응은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천안에서 일어난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천안군 진명학교에서 교사로 활동하였다. 유관순을 만나 독립운동 상황을 전해 듣고 동지들과 독립만세운동을 추진하였다. 1919년 4월 1일 천안군 갈전면 병천리 아우내 장터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다가 헌병의 총격으로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아들의 순국 소식을 듣고 현장에 온 어머니 최정철까지 일본 헌병에게 죽음을 당하였다.
김상헌은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천안에서 일어난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4월 1일 충청남도 천안군 갈전면 병천리 아우내 시장터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서울에서 귀가한 유관순 일가가 중심이 되어 갈전면과 수신면 주민들이 참여해 아우내 장터로 모여 대규모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김상헌은 수신면 복다회리 주민들과 함께 참가하였으나 시위가 격렬해지자 일본 헌병들의 사격으로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김상헌 (金尙憲)
김상헌은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천안에서 일어난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4월 1일 충청남도 천안군 갈전면 병천리 아우내 시장터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서울에서 귀가한 유관순 일가가 중심이 되어 갈전면과 수신면 주민들이 참여해 아우내 장터로 모여 대규모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김상헌은 수신면 복다회리 주민들과 함께 참가하였으나 시위가 격렬해지자 일본 헌병들의 사격으로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박병호는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천안에서 일어난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4월 1일 천안군 갈전면 병천리 아우내 장터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동면 화계리 주민들과 함께 참가하였다. 약 3,000명의 군중들이 시장 일대를 활보하며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는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일본 헌병들과 대치하며 시위에 참여하다가 헌병의 총격으로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박병호 (朴炳好)
박병호는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천안에서 일어난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4월 1일 천안군 갈전면 병천리 아우내 장터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동면 화계리 주민들과 함께 참가하였다. 약 3,000명의 군중들이 시장 일대를 활보하며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는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일본 헌병들과 대치하며 시위에 참여하다가 헌병의 총격으로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박상규는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천안에서 일어난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4월 1일 천안군 갈전면 병천 아우내 장터에서 '대한독립'이라고 쓴 큰 깃발을 세운 후,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장터를 누비고 시위하였다. 일본군의 총격을 당해 4월 2일에 순국하였다.
박상규 (朴相圭)
박상규는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천안에서 일어난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4월 1일 천안군 갈전면 병천 아우내 장터에서 '대한독립'이라고 쓴 큰 깃발을 세운 후,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장터를 누비고 시위하였다. 일본군의 총격을 당해 4월 2일에 순국하였다.
방치성은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천안에서 일어난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4월 1일 충청남도 천안군 갈전면 병천리의 아우내 장터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아우내 시장에 모여 시위를 전개하였고, 면사무소를 파괴하는 데 참여하다가 일본 군경의 총격을 받아 다음날인 4월 2일 순국하였다.
방치성 (方致成)
방치성은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천안에서 일어난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4월 1일 충청남도 천안군 갈전면 병천리의 아우내 장터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아우내 시장에 모여 시위를 전개하였고, 면사무소를 파괴하는 데 참여하다가 일본 군경의 총격을 받아 다음날인 4월 2일 순국하였다.
서병순은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천안에서 일어난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4월 1일 충청남도 천안군 갈전면 병천리에서 일어난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아우내 시장에 모인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일본 군경의 발포로 총상을 입었고 1920년 8월 11일 순국하였다.
서병순 (徐秉舜)
서병순은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천안에서 일어난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4월 1일 충청남도 천안군 갈전면 병천리에서 일어난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아우내 시장에 모인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일본 군경의 발포로 총상을 입었고 1920년 8월 11일 순국하였다.
이성하는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천안군 갈전면 병천리 아우내 장터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4월 1일 천안군 갈전면 병천리 아우내 장터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아우내 만세운동은 아우내 장날을 거사일로 정하고 아우내 장터에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작되었다. 시위가 격렬하게 전개되자 일제 군경은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 총격을 가하였고, 이성하도 이때 시위 현장에서 총에 맞아 순국하였다.
이성하 (李星夏)
이성하는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천안군 갈전면 병천리 아우내 장터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4월 1일 천안군 갈전면 병천리 아우내 장터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아우내 만세운동은 아우내 장날을 거사일로 정하고 아우내 장터에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작되었다. 시위가 격렬하게 전개되자 일제 군경은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 총격을 가하였고, 이성하도 이때 시위 현장에서 총에 맞아 순국하였다.
유예도는 1919년 천안 아우내장터 3·1운동을 이끈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이화학당에 재학 중이던 1919년에 3·1운동이 일어나자, 학교 선배로부터 고향으로 내려가 독립운동 자금을 모아 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3월 13일에 사촌 동생 유관순과 함께 독립선언서를 지니고 귀향하였다. 4월 1일, 3,000여 명이 운집한 아우내장터에서 유관순과 함께 직접 만든 태극기를 나누어 주고 만세시위를 이끌었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유예도 (柳禮道)
유예도는 1919년 천안 아우내장터 3·1운동을 이끈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이화학당에 재학 중이던 1919년에 3·1운동이 일어나자, 학교 선배로부터 고향으로 내려가 독립운동 자금을 모아 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3월 13일에 사촌 동생 유관순과 함께 독립선언서를 지니고 귀향하였다. 4월 1일, 3,000여 명이 운집한 아우내장터에서 유관순과 함께 직접 만든 태극기를 나누어 주고 만세시위를 이끌었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