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애국부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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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중국 상해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의 연합체.
상해한인각단체연합회 (上海韓人各團體聯合會)
1931년 중국 상해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의 연합체.
권애라는 일제강점기 경기도 개성군 송도면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고 중국 상하이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 · 1운동 때 경기도 개성군 송도면에서 독립만세운동을 하였다. 그 후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애국부인회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1922년 1월 극동인민대표회의 한민족여성대표로 참석하였다. 상하이를 중심으로 여성지위 향상과 조국 광복운동에 활약하였고, 이후 동삼성에서 지하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권애라 (權愛羅)
권애라는 일제강점기 경기도 개성군 송도면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고 중국 상하이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 · 1운동 때 경기도 개성군 송도면에서 독립만세운동을 하였다. 그 후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애국부인회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1922년 1월 극동인민대표회의 한민족여성대표로 참석하였다. 상하이를 중심으로 여성지위 향상과 조국 광복운동에 활약하였고, 이후 동삼성에서 지하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박신애는 일제강점기 하와이에서 애국부인회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지원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889년 황해도 봉산군에서 태어났다. 교사 출신 엘리트 여성으로, 사진신부가 되어 하와이로 이주하였다. 하와이 애국부인회에 가입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위한 자금을 모금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1937년에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한국국민당, 한국독립당, 조선혁명당 등 중국 내 독립운동 단체들이 중심이 되어 한국광복진선을 결성하였다. 박신애도 애국부인회 대표로 한국광복진선 구축에 참여하였다. 199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박신애 (朴信愛)
박신애는 일제강점기 하와이에서 애국부인회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지원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889년 황해도 봉산군에서 태어났다. 교사 출신 엘리트 여성으로, 사진신부가 되어 하와이로 이주하였다. 하와이 애국부인회에 가입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위한 자금을 모금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1937년에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한국국민당, 한국독립당, 조선혁명당 등 중국 내 독립운동 단체들이 중심이 되어 한국광복진선을 결성하였다. 박신애도 애국부인회 대표로 한국광복진선 구축에 참여하였다. 199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최순덕은 일제강점기 대한애국부인회 교통부장을 역임하며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897년경 평양에서 태어났으며, 이명은 최신덕이다. 1919년 3·1운동의 영향으로 평양 감리교파 애국부인회를 조직하였다. 이후 장로교파 애국부인회와 통합하여 대한애국부인회로 조직이 확대되자, 교통부장으로 임명되었다. 군자금을 모금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하는 활동 등을 하다가 조직이 발각되어 1920년 만주로 망명하였다. 이후 병환으로 귀향하였으며, 1926년 사망하였다.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최순덕 (崔順德)
최순덕은 일제강점기 대한애국부인회 교통부장을 역임하며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897년경 평양에서 태어났으며, 이명은 최신덕이다. 1919년 3·1운동의 영향으로 평양 감리교파 애국부인회를 조직하였다. 이후 장로교파 애국부인회와 통합하여 대한애국부인회로 조직이 확대되자, 교통부장으로 임명되었다. 군자금을 모금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하는 활동 등을 하다가 조직이 발각되어 1920년 만주로 망명하였다. 이후 병환으로 귀향하였으며, 1926년 사망하였다.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최혜순은 일제강점기 상해한인각단체연합회, 대한민국임시의정원 등에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00년 전라남도 광주군에서 태어났으며, 전남도립광주의원에서 일하다 중국으로 건너갔다. 남편은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 김철이다. 1931년 상해한인각단체연합회 회계 책임자를 맡았으며, 같은 해 12월 대한민국임시의정원에서 전라도 의원으로 선출되어 1933년까지 활동하였다. 1934년 남편이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한 뒤에도 상하이에서 조산병원을 운영하며 독립운동 지원을 계속하였다.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최혜순 (崔惠淳)
최혜순은 일제강점기 상해한인각단체연합회, 대한민국임시의정원 등에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00년 전라남도 광주군에서 태어났으며, 전남도립광주의원에서 일하다 중국으로 건너갔다. 남편은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 김철이다. 1931년 상해한인각단체연합회 회계 책임자를 맡았으며, 같은 해 12월 대한민국임시의정원에서 전라도 의원으로 선출되어 1933년까지 활동하였다. 1934년 남편이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한 뒤에도 상하이에서 조산병원을 운영하며 독립운동 지원을 계속하였다.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한영신은 일제강점기 평양에서 대한애국부인회 부회장 등을 맡은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887년 경기도 인천부에서 태어났으며, 14세 때 평안북도 의주로 이주하였다. 30세 때 평양으로 이주하였으며, 1919년 6월 기독교계 장로교파 애국부인회를 결성하고 회장을 맡았다. 같은 해 11월 타 교파의 애국부인회와 통합해 대한애국부인회가 조직되자 부회장을 맡았으며, 군자금을 모금해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전달하였다. 그 외, 평양 조선물산장려회 이사, 조선예수교장로회 여전도회전국연합회 회장 등을 맡았다.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한영신 (韓永信)
한영신은 일제강점기 평양에서 대한애국부인회 부회장 등을 맡은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887년 경기도 인천부에서 태어났으며, 14세 때 평안북도 의주로 이주하였다. 30세 때 평양으로 이주하였으며, 1919년 6월 기독교계 장로교파 애국부인회를 결성하고 회장을 맡았다. 같은 해 11월 타 교파의 애국부인회와 통합해 대한애국부인회가 조직되자 부회장을 맡았으며, 군자금을 모금해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전달하였다. 그 외, 평양 조선물산장려회 이사, 조선예수교장로회 여전도회전국연합회 회장 등을 맡았다.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최서경은 일제강점기 중국 상하이에서 상해한인애국부인회 집사를 맡아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활동을 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02년 평안북도 운산군에서 태어났으며, 남편은 이봉창과 윤봉길의 의거에 조력한 김홍일이다. 1932년부터 1934년까지 상해한인애국부인회 집사로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3·1운동 기념일, 8·29 경술국치 기념일에 전단을 배포하며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1932년 2월 상하이사변으로 일본군과 교전하던 중국군 부상 병사에게 위문품을 보내기도 하였다. 1955년 사망하였으며,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최서경 (崔曙卿)
최서경은 일제강점기 중국 상하이에서 상해한인애국부인회 집사를 맡아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활동을 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02년 평안북도 운산군에서 태어났으며, 남편은 이봉창과 윤봉길의 의거에 조력한 김홍일이다. 1932년부터 1934년까지 상해한인애국부인회 집사로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3·1운동 기념일, 8·29 경술국치 기념일에 전단을 배포하며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1932년 2월 상하이사변으로 일본군과 교전하던 중국군 부상 병사에게 위문품을 보내기도 하였다. 1955년 사망하였으며,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