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언론인"
검색결과 총 11건
문일평은 대한제국기와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사학자 겸 언론인이자 교육자, 독립운동가이다. 『조선일보』 편집고문 등으로 활약하였으며, 한국사 연구에도 노력을 기울여 많은 논문을 발표하였다. 일제에 의해 국학 연구의 기초가 흔들리던 시기에 역사 연구를 통해 언외(言外)의 의미를 강조하였다.
문일평 (文一平)
문일평은 대한제국기와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사학자 겸 언론인이자 교육자, 독립운동가이다. 『조선일보』 편집고문 등으로 활약하였으며, 한국사 연구에도 노력을 기울여 많은 논문을 발표하였다. 일제에 의해 국학 연구의 기초가 흔들리던 시기에 역사 연구를 통해 언외(言外)의 의미를 강조하였다.
대한제국기 황성신문을 창간하고 만민공동회 간부를 지낸 언론인. 애국계몽운동가.
유근 (柳瑾)
대한제국기 황성신문을 창간하고 만민공동회 간부를 지낸 언론인. 애국계몽운동가.
김명식은 일제강점기 활동한 사회주의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이다. 일본 와세다대학에 유학하며 유학생 운동에 참가하였다. 귀국 후 『동아일보』 주필과 논설반원으로 활약하였다. 사회주의 사상을 선전하다가 신생활사 필화사건으로 투옥되었다. 1920~1930년대 사회운동, 한국사, 문예운동 등에 관한 논설을 다수 발표하였다. 1928~1936년 일본 오사카에 체류하며 재일조선인 운동에 관여하였다. 중일전쟁기에는 일본의 정책에 기대를 걸고 조선의 지위 향상을 꾀하는 글을 발표하였다.
김명식 (金明植)
김명식은 일제강점기 활동한 사회주의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이다. 일본 와세다대학에 유학하며 유학생 운동에 참가하였다. 귀국 후 『동아일보』 주필과 논설반원으로 활약하였다. 사회주의 사상을 선전하다가 신생활사 필화사건으로 투옥되었다. 1920~1930년대 사회운동, 한국사, 문예운동 등에 관한 논설을 다수 발표하였다. 1928~1936년 일본 오사카에 체류하며 재일조선인 운동에 관여하였다. 중일전쟁기에는 일본의 정책에 기대를 걸고 조선의 지위 향상을 꾀하는 글을 발표하였다.
진학문은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 시기, 『요조한〔四畳半〕』, 『홍루(紅淚)』 등을 번역한 소설가이자 언론인,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1920년 『동아일보』 논설위원과 정치경제부장, 1924년 『시대일보』 편집인 겸 발행인을 지냈고, 1937년 만주국 내무국 참사관과 1945년 중추원참의로 임명되었으며, 8‧15광복 이후 경제계에 투신하여 1963년부터 한국경제인연합회 상임부회장으로 취임하였다.
진학문 (秦學文)
진학문은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 시기, 『요조한〔四畳半〕』, 『홍루(紅淚)』 등을 번역한 소설가이자 언론인,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1920년 『동아일보』 논설위원과 정치경제부장, 1924년 『시대일보』 편집인 겸 발행인을 지냈고, 1937년 만주국 내무국 참사관과 1945년 중추원참의로 임명되었으며, 8‧15광복 이후 경제계에 투신하여 1963년부터 한국경제인연합회 상임부회장으로 취임하였다.
신일용은 일제강점기 만주에서 민족유일당운동에 참여한 사회주의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 언론인이다. 8·15광복 후에는 정치인으로 활동하였다. 전라북도 부안 출신으로, 1916년 조선총독부의학교를 졸업하고 의사가 되었다. 1922년 잡지 『신생활』 기자로 많은 기사를 집필하였으며, 필화사건으로 징역 1년 6월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27~1928년에 걸쳐 민족통일론에 대해서 ML파와 논쟁을 벌였다. 만주 민족유일당운동에 참여하였다.
신일용 (辛日鎔)
신일용은 일제강점기 만주에서 민족유일당운동에 참여한 사회주의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 언론인이다. 8·15광복 후에는 정치인으로 활동하였다. 전라북도 부안 출신으로, 1916년 조선총독부의학교를 졸업하고 의사가 되었다. 1922년 잡지 『신생활』 기자로 많은 기사를 집필하였으며, 필화사건으로 징역 1년 6월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27~1928년에 걸쳐 민족통일론에 대해서 ML파와 논쟁을 벌였다. 만주 민족유일당운동에 참여하였다.
남공선은 고려공산청년회 집행위원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전로한족회 중앙총회의 기관지 『한족공보』의 주필과 하바롭스크에서 발행하던 한글 신문인 『선봉(先鋒)』의 주필을 역임하였다. 고려공산청년회 중앙총국 집행위원을 지낸 바 있다.
남공선 (南公善)
남공선은 고려공산청년회 집행위원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전로한족회 중앙총회의 기관지 『한족공보』의 주필과 하바롭스크에서 발행하던 한글 신문인 『선봉(先鋒)』의 주필을 역임하였다. 고려공산청년회 중앙총국 집행위원을 지낸 바 있다.
현진건은 일제강점기에 「빈처」·「고향」·『적도』 등을 발표한 소설가이자 ‘일장기 말소 사건’에 관여한 언론인이다. 한국 근대문학 초창기에 완미한 단편소설 형식을 선보였고, 일제 말기에 민족주의적인 역사소설을 시도하였다. 『적도』·『무영탑』 등 장편소설 네 편과 「빈처」·「고향」 등 단편소설 30여 편 외에 번역소설 10편, 평론과 수필 40여 편을 발표했다.
현진건 (玄鎭健)
현진건은 일제강점기에 「빈처」·「고향」·『적도』 등을 발표한 소설가이자 ‘일장기 말소 사건’에 관여한 언론인이다. 한국 근대문학 초창기에 완미한 단편소설 형식을 선보였고, 일제 말기에 민족주의적인 역사소설을 시도하였다. 『적도』·『무영탑』 등 장편소설 네 편과 「빈처」·「고향」 등 단편소설 30여 편 외에 번역소설 10편, 평론과 수필 40여 편을 발표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1984년 12월 19일 동아투위 사태 이후 해직된 기자들과 전두환 정권의 언론 통폐합으로 인해 해직된 언론인, 출판인들이 주축이 되어 창립된 시민단체이다. 언론의 민주화를 주장하는 시민단체인 민주언론운동협의회를 모체로 하고 있다. 민주언론운동협의회는 1998년 3월 27일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으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2006년 3월 24일 민주언론시민연협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민주언론시민연합 (民主言論市民連合)
민주언론시민연합은 1984년 12월 19일 동아투위 사태 이후 해직된 기자들과 전두환 정권의 언론 통폐합으로 인해 해직된 언론인, 출판인들이 주축이 되어 창립된 시민단체이다. 언론의 민주화를 주장하는 시민단체인 민주언론운동협의회를 모체로 하고 있다. 민주언론운동협의회는 1998년 3월 27일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으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2006년 3월 24일 민주언론시민연협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이만섭은 대한민국 언론인 출신의 8선 국회의원으로, 국회의장 등을 지낸 정치인이다. 제6, 7, 10, 11, 12, 14, 15, 16대 총선에서 당선되었으며, 제14대와 제16대 국회의장을 역임하였다. 한국국민당과 국민신당을 창당하였고, 새정치국민회의 총재 권한대행을 지냈다.
이만섭 (李萬燮)
이만섭은 대한민국 언론인 출신의 8선 국회의원으로, 국회의장 등을 지낸 정치인이다. 제6, 7, 10, 11, 12, 14, 15, 16대 총선에서 당선되었으며, 제14대와 제16대 국회의장을 역임하였다. 한국국민당과 국민신당을 창당하였고, 새정치국민회의 총재 권한대행을 지냈다.
리영희는 언론인과 대학교수를 지낸 진보적 사회운동가이다. 한국해양대학교를 졸업하고 통역장교로 복무한 뒤 예편하여 조선일보사 등에서 외신부 기자로 일하며 논설을 집필하였다. 한양대학교 교수로 있으면서 반유신 운동에 동참하였고, 『우상과 이성』, 『전환시대의 논리』 등 다수의 저서를 남겼다.
리영희 (李泳禧)
리영희는 언론인과 대학교수를 지낸 진보적 사회운동가이다. 한국해양대학교를 졸업하고 통역장교로 복무한 뒤 예편하여 조선일보사 등에서 외신부 기자로 일하며 논설을 집필하였다. 한양대학교 교수로 있으면서 반유신 운동에 동참하였고, 『우상과 이성』, 『전환시대의 논리』 등 다수의 저서를 남겼다.
송건호는 대한민국의 언론인으로, 국민주 방식의 모금 운동을 토대로 1988년 일간신문 『한겨레』의 창간을 이끌었다. 『한국일보』, 『경향신문』,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을 두루 거친 언론인으로, 『동아일보』 편집국장 재직 중인 1975년 박정희 정권의 언론 탄압과 기자 대량 해임 사태의 해결을 촉구하며 자진 사임하였다. 1984년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초대 의장을 맡아 해직 기자들과 함께 1985년 월간지 『말』을 중심으로 민주언론운동을 펼쳤다.
송건호 (宋建鎬)
송건호는 대한민국의 언론인으로, 국민주 방식의 모금 운동을 토대로 1988년 일간신문 『한겨레』의 창간을 이끌었다. 『한국일보』, 『경향신문』,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을 두루 거친 언론인으로, 『동아일보』 편집국장 재직 중인 1975년 박정희 정권의 언론 탄압과 기자 대량 해임 사태의 해결을 촉구하며 자진 사임하였다. 1984년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초대 의장을 맡아 해직 기자들과 함께 1985년 월간지 『말』을 중심으로 민주언론운동을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