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여관"
검색결과 총 8건
대한제국기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한국 최초의 여의사의료인. 여의사.
박에스더 (朴Esther)
대한제국기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한국 최초의 여의사의료인. 여의사.
세자궁은 조선시대 왕세자의 처소, 혹은 세자의 여관이다. 세자궁은 동궁 · 동궁전이라 칭했으며, 세자가 거처하던 활동 권역이다. 이곳에는 세자의 관속으로 세자시강원과 세자익위사를 배치하였다. 한편, 세자궁은 이곳에 소속된 여관을 지칭하기도 한다. 여관은 종2품 양제 이하 종5품 소훈까지 내궁과 종6품 수규 · 수칙 이하 궁관으로 구성되었다.
세자궁 (世子宮)
세자궁은 조선시대 왕세자의 처소, 혹은 세자의 여관이다. 세자궁은 동궁 · 동궁전이라 칭했으며, 세자가 거처하던 활동 권역이다. 이곳에는 세자의 관속으로 세자시강원과 세자익위사를 배치하였다. 한편, 세자궁은 이곳에 소속된 여관을 지칭하기도 한다. 여관은 종2품 양제 이하 종5품 소훈까지 내궁과 종6품 수규 · 수칙 이하 궁관으로 구성되었다.
여메례는 일제강점기 청주교회 전도사, 조치원교회 전도사로 시무한 개신교인이자 교육자이다. 1872년 경상남도 마산에서 태어났다. 이화학당에서 공부하며 ‘메리’라는 세례명을 받았는데 메례는 메리의 한자 음역이다. 진명여학교에서 학감을 맡았고 영어가 능통해 어전통역관 등으로 활동했다. 1923년에 경성성서학원(현 서울신학대학교)을 졸업했다. 1925년부터 성서학원 교수가 되어 학생들을 가르쳤고 1929년에는 여자부 사감이 되었다. 1931년 사감직을 사임하고 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하였다. 1933년 조치원교회에서 전도사로 시무하던 중 사망하였다.
여메례 (余袂禮)
여메례는 일제강점기 청주교회 전도사, 조치원교회 전도사로 시무한 개신교인이자 교육자이다. 1872년 경상남도 마산에서 태어났다. 이화학당에서 공부하며 ‘메리’라는 세례명을 받았는데 메례는 메리의 한자 음역이다. 진명여학교에서 학감을 맡았고 영어가 능통해 어전통역관 등으로 활동했다. 1923년에 경성성서학원(현 서울신학대학교)을 졸업했다. 1925년부터 성서학원 교수가 되어 학생들을 가르쳤고 1929년에는 여자부 사감이 되었다. 1931년 사감직을 사임하고 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하였다. 1933년 조치원교회에서 전도사로 시무하던 중 사망하였다.
양제는 조선시대에 세자궁(世子宮)의 종2품 내관(內官)으로 위상이 제일 높은 세자의 후실이다. 세자에게도 첩을 두어 내덕(內德)을 돕고 후사(後嗣)를 많이 보려고 하였다. 인원은 세종 대에 2명으로 정하기도 하였지만 일정하지 않았다.
양제 (良悌)
양제는 조선시대에 세자궁(世子宮)의 종2품 내관(內官)으로 위상이 제일 높은 세자의 후실이다. 세자에게도 첩을 두어 내덕(內德)을 돕고 후사(後嗣)를 많이 보려고 하였다. 인원은 세종 대에 2명으로 정하기도 하였지만 일정하지 않았다.
전라남도 무안군 해제면 강산(糠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의상이 창건한 사찰.
강산 원갑사 (糠山 圓甲寺)
전라남도 무안군 해제면 강산(糠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의상이 창건한 사찰.
양원은 조선시대에 세자궁(世子宮)의 종3품 내관(內官)으로 세자의 후실 중 하나이다. 특별히 임무와 직능이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가장 큰 임무는 후손을 많이 낳는 것이었다. 좋은 집안에서 간택하여 들였으며, 그 수는 일정하지 않았다.
양원 (良媛)
양원은 조선시대에 세자궁(世子宮)의 종3품 내관(內官)으로 세자의 후실 중 하나이다. 특별히 임무와 직능이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가장 큰 임무는 후손을 많이 낳는 것이었다. 좋은 집안에서 간택하여 들였으며, 그 수는 일정하지 않았다.
김마르다는 1908년 한국 최초의 간호학교인 보구여관 간호원양성소를 제1회로 졸업한 간호사이다. 1893년 보구여관에 환자로 입원하였다가, 회복 이후에도 보구여관에서 생활하며 기독교 세례를 받고 읽기와 쓰기를 배웠다. 1903년 한국 최초의 간호학교로 설립된 보구여관 간호원양성소에서 간호 교육을 받을 여성을 모집할 때 입학하였다. 1908년 보구여관 간호원양성소를 제1회로 졸업하고 보구여관, 평양 광혜여원, 동대문부인병원에서 근무하였으며, 후배 교육에도 힘썼다.
김마르다 (金마르다)
김마르다는 1908년 한국 최초의 간호학교인 보구여관 간호원양성소를 제1회로 졸업한 간호사이다. 1893년 보구여관에 환자로 입원하였다가, 회복 이후에도 보구여관에서 생활하며 기독교 세례를 받고 읽기와 쓰기를 배웠다. 1903년 한국 최초의 간호학교로 설립된 보구여관 간호원양성소에서 간호 교육을 받을 여성을 모집할 때 입학하였다. 1908년 보구여관 간호원양성소를 제1회로 졸업하고 보구여관, 평양 광혜여원, 동대문부인병원에서 근무하였으며, 후배 교육에도 힘썼다.
이그레이스는 1908년 우리나라 최초의 간호학교인 보구여관 간호원양성소를 제1회로 졸업한 간호사이다. 주인집에서 버려진 사노비 출신으로, 보구여관에서 치료받은 뒤 그곳에서 일하며 학교에 다녔다. 1903년 보구여관에 마가렛 에드먼즈가 부임하여 간호원양성소를 시작할 때 제1회 학생으로 입학하였다. 졸업 후 평양 광혜여원에서 마취 간호사이자 수간호사로 활동하였다. 1914년에는 의생 면허를 받아 독립적인 진료와 처치 활동을 하였다. 1930년대에 수원에서 의원을 개원하고 활동하다가 1947년 사망하였다.
이그레이스 (李그레이스)
이그레이스는 1908년 우리나라 최초의 간호학교인 보구여관 간호원양성소를 제1회로 졸업한 간호사이다. 주인집에서 버려진 사노비 출신으로, 보구여관에서 치료받은 뒤 그곳에서 일하며 학교에 다녔다. 1903년 보구여관에 마가렛 에드먼즈가 부임하여 간호원양성소를 시작할 때 제1회 학생으로 입학하였다. 졸업 후 평양 광혜여원에서 마취 간호사이자 수간호사로 활동하였다. 1914년에는 의생 면허를 받아 독립적인 진료와 처치 활동을 하였다. 1930년대에 수원에서 의원을 개원하고 활동하다가 1947년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