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여성_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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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창극단은 일제강점기, 일제가 시국 선전 및 조선인의 전시 동원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설립한 조선연극문화협회 산하의 창극 단체이다. 일제의 강압에 따라 시국 선전을 위한 목적극인 시국극, 일본어를 사용하는 일어극을 공연하기도 했으나, 이 시기 주요한 창극 단체로 활동을 지속하며 해방 이후 판소리, 창극, 여성국극 등 전통 공연 예술 갈래의 지속과 전승을 가능하게 하는 토대가 되었다는 의의가 인정된다.
동일창극단 (東一唱劇團)
동일창극단은 일제강점기, 일제가 시국 선전 및 조선인의 전시 동원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설립한 조선연극문화협회 산하의 창극 단체이다. 일제의 강압에 따라 시국 선전을 위한 목적극인 시국극, 일본어를 사용하는 일어극을 공연하기도 했으나, 이 시기 주요한 창극 단체로 활동을 지속하며 해방 이후 판소리, 창극, 여성국극 등 전통 공연 예술 갈래의 지속과 전승을 가능하게 하는 토대가 되었다는 의의가 인정된다.
근우회는 1927년에 조직되었던 독립운동 및 여성운동 단체이다. 3·1운동 후 일제의 탄압으로 해체된 항일여성단체들이 1927년 신간회의 탄생을 계기로 통합적인 여성운동을 전개하고자 조직하였다. 여성의 공고한 단결과 지위향상을 강령으로 삼았고 운동 목표로는 봉건적 굴레에서 벗어나는 여성 자신의 해방과 일제침략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양대 방향이 제시되었다. 1930년에는 전국에 60여 개의 지회를 설치하고 일본·만주 등 해외에 지부를 두는 등 활발하게 여성운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내부의 분열과 자금난 등으로 정식 해산 발표도 없이 1931년 이후 해체되었다.
근우회 (勤友會)
근우회는 1927년에 조직되었던 독립운동 및 여성운동 단체이다. 3·1운동 후 일제의 탄압으로 해체된 항일여성단체들이 1927년 신간회의 탄생을 계기로 통합적인 여성운동을 전개하고자 조직하였다. 여성의 공고한 단결과 지위향상을 강령으로 삼았고 운동 목표로는 봉건적 굴레에서 벗어나는 여성 자신의 해방과 일제침략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양대 방향이 제시되었다. 1930년에는 전국에 60여 개의 지회를 설치하고 일본·만주 등 해외에 지부를 두는 등 활발하게 여성운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내부의 분열과 자금난 등으로 정식 해산 발표도 없이 1931년 이후 해체되었다.
1925년 서울에서 조직되었던 여성 사회단체.
경성여자청년동맹 (京城女子靑年同盟)
1925년 서울에서 조직되었던 여성 사회단체.
대한민국애국부인회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후 이를 지원하면서 그 산하에서 독립운동을 추진하기 위해 조직된 항일여성단체이다. 국내에 서울 중심의 대한민국애국부인회, 평양 중심의 대한애국부인회, 상하이에 대한민국애국부인회가 별도로 조직되었다. 서울의 애국부인회 회원은 교회지도급 여성과 여교사·간호사 등이 주축을 이루었고 평양의 애국부인회는 평양장로교계 부인회와 감리교계 부인회가 통합·발전한 것이다. 이들은 군자금 모집에 주력하다가 많은 수난을 겪었다. 상하이 애국부인회는 일본패망 촉구방송, 일선군인 위문, 여성 계몽교육 등의 활동을 펼쳤다.
대한민국애국부인회 (大韓民國愛國婦人會)
대한민국애국부인회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후 이를 지원하면서 그 산하에서 독립운동을 추진하기 위해 조직된 항일여성단체이다. 국내에 서울 중심의 대한민국애국부인회, 평양 중심의 대한애국부인회, 상하이에 대한민국애국부인회가 별도로 조직되었다. 서울의 애국부인회 회원은 교회지도급 여성과 여교사·간호사 등이 주축을 이루었고 평양의 애국부인회는 평양장로교계 부인회와 감리교계 부인회가 통합·발전한 것이다. 이들은 군자금 모집에 주력하다가 많은 수난을 겪었다. 상하이 애국부인회는 일본패망 촉구방송, 일선군인 위문, 여성 계몽교육 등의 활동을 펼쳤다.
1913년경 평양에서 조직되었던 여성독립운동단체.
송죽회 (松竹會)
1913년경 평양에서 조직되었던 여성독립운동단체.
1955년 5월 25일에 결성된 친북성향의 재일동포 단체.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在日本朝鮮人總聯合會)
1955년 5월 25일에 결성된 친북성향의 재일동포 단체.
여성의 능력 개발 및 사회 활동을 위한 여성·소비자단체.
소비자교육중앙회 (消費者敎育中央會)
여성의 능력 개발 및 사회 활동을 위한 여성·소비자단체.
한국여성단체협의회는 1959년 12월 26일 결성된 한국의 대표적인 보수적 여성 운동 단체이다. 권위주의적인 군부 정권 하에서는 정권과의 긴밀한 협조를 바탕으로 온건적인 성향을 보였으나, 민주화 이후에는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때로는 진보 진영 여성 단체들과 협력하기도 했다. 세계여성단체협의회 회원 단체로서 다양한 국제 활동을 활발히 수행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 권익의 향상을 위해 오늘날까지 활발한 활동을 이어 오고 있으며 평화, 생협, 환경 등 다양한 민주주의 의제에도 적극 동참하고 있다.
한국여성단체협의회 (韓國女性團體協議會)
한국여성단체협의회는 1959년 12월 26일 결성된 한국의 대표적인 보수적 여성 운동 단체이다. 권위주의적인 군부 정권 하에서는 정권과의 긴밀한 협조를 바탕으로 온건적인 성향을 보였으나, 민주화 이후에는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때로는 진보 진영 여성 단체들과 협력하기도 했다. 세계여성단체협의회 회원 단체로서 다양한 국제 활동을 활발히 수행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 권익의 향상을 위해 오늘날까지 활발한 활동을 이어 오고 있으며 평화, 생협, 환경 등 다양한 민주주의 의제에도 적극 동참하고 있다.
조경희는 해방 이후 『낙엽의 침묵』, 『치자꽃』, 『하얀꽃들』 등을 저술한 수필가이자 언론인, 관료이다. 1918년 강화군 출생으로, 이화여자전문학교 재학 중(1938년) 『한글』에 수필 「측간단상」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졸업 후 조선일보 학예부 기자 및 다양한 신문사를 거쳤고, 1961년 한국여기자클럽 부회장직을 수행하였다. 한국여류문학인회 초대 회장,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회장 등 문인으로서도 활동하였고, 정무 제2장관 등 관료로서도 활발히 활동하였다. 상훈으로는 한국문학상, 프랑스 예술문학공로상, 대한민국 예술원상 등이 있으며, 2005년 사망했다.
조경희 (趙敬姬)
조경희는 해방 이후 『낙엽의 침묵』, 『치자꽃』, 『하얀꽃들』 등을 저술한 수필가이자 언론인, 관료이다. 1918년 강화군 출생으로, 이화여자전문학교 재학 중(1938년) 『한글』에 수필 「측간단상」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졸업 후 조선일보 학예부 기자 및 다양한 신문사를 거쳤고, 1961년 한국여기자클럽 부회장직을 수행하였다. 한국여류문학인회 초대 회장,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회장 등 문인으로서도 활동하였고, 정무 제2장관 등 관료로서도 활발히 활동하였다. 상훈으로는 한국문학상, 프랑스 예술문학공로상, 대한민국 예술원상 등이 있으며, 2005년 사망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지속가능한 성평등 사회를 만들고 여성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1987년 2월에 결성된 여성 단체들의 연합체이다. 미군정기와 한국전쟁을 지나며 유명무실화된 좌파 여성 운동은 1970년대 중반에 시작되어 1980년대에 조직화가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시기 결성된 진보적 여성 운동 단체들의 연합체가 바로 한국여성단체연합이다. 민주화 이후 여성 관련 법제화와 제도화에서 커다란 성과를 얻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韓國女性團體聯合)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지속가능한 성평등 사회를 만들고 여성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1987년 2월에 결성된 여성 단체들의 연합체이다. 미군정기와 한국전쟁을 지나며 유명무실화된 좌파 여성 운동은 1970년대 중반에 시작되어 1980년대에 조직화가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시기 결성된 진보적 여성 운동 단체들의 연합체가 바로 한국여성단체연합이다. 민주화 이후 여성 관련 법제화와 제도화에서 커다란 성과를 얻었다.
한국 여성문학 연구를 위해 설립된 학술단체.
한국여성문학학회 (韓國女性文學學會)
한국 여성문학 연구를 위해 설립된 학술단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