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왜성"
검색결과 총 10건
구포왜성은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왜장 코바야가와 타카카케 등이 부산광역시 북구 덕천동에 쌓은 왜성이다. 낙동강 수로의 요충지를 확보하기 위하여 김해 죽도왜성의 지성으로 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593년 7월 코바야가와 타카카게〔小早川隆景〕를 최고 책임자로 한 5명의 무장(武將)이 협력하여 2달 보름 정도 만에 완성하였다. 북쪽 해발 75.7m 야산의 정상부를 중심으로 9개의 곽(郭)으로 이루어진 내성과 내성의 남쪽 해발 36.5m 구릉 정상부를 장방형의 이중 해자로 둘러싸고 있는 외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구포왜성 (龜浦倭城)
구포왜성은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왜장 코바야가와 타카카케 등이 부산광역시 북구 덕천동에 쌓은 왜성이다. 낙동강 수로의 요충지를 확보하기 위하여 김해 죽도왜성의 지성으로 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593년 7월 코바야가와 타카카게〔小早川隆景〕를 최고 책임자로 한 5명의 무장(武將)이 협력하여 2달 보름 정도 만에 완성하였다. 북쪽 해발 75.7m 야산의 정상부를 중심으로 9개의 곽(郭)으로 이루어진 내성과 내성의 남쪽 해발 36.5m 구릉 정상부를 장방형의 이중 해자로 둘러싸고 있는 외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생포왜성은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왜장 가토 기요마사가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면 서생리에 쌓은 왜성이다. 이곳은 회야강과 포구를 접하고 있어 물자와 인력의 수송이 용이하여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기간 중 왜군의 중요 거점으로 사용되었다. 평산성(平山城)으로 1594년(선조 27) 사명대사가 4차례에 걸쳐 가토 기요마사와 강화 회담을 한 곳으로, 일본군이 물러간 뒤에 경상 좌수영 소속 서생포왜성으로 사용되었다. 남해안 각지에 산재하는 왜성 가운데 비교적 규모가 큰 왜성으로 16세기 말기의 일본 성곽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서생포왜성 (西生浦倭城)
서생포왜성은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왜장 가토 기요마사가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면 서생리에 쌓은 왜성이다. 이곳은 회야강과 포구를 접하고 있어 물자와 인력의 수송이 용이하여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기간 중 왜군의 중요 거점으로 사용되었다. 평산성(平山城)으로 1594년(선조 27) 사명대사가 4차례에 걸쳐 가토 기요마사와 강화 회담을 한 곳으로, 일본군이 물러간 뒤에 경상 좌수영 소속 서생포왜성으로 사용되었다. 남해안 각지에 산재하는 왜성 가운데 비교적 규모가 큰 왜성으로 16세기 말기의 일본 성곽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순천왜성은 조선시대 정유재란 때 왜장 고니시 유키나가가 전라남도 순천시 해룡면 신성리에 쌓은 왜성이다. 전라도를 공략하기 위한 거점으로 동서 900m, 남북 850m 범위에 걸쳐 본성(本城)과 내·외성의 구조로 쌓았다. 내성과 외성 사이에는 해자를 설치하고 성벽 바깥으로는 목책을 둘러 요새화하였다. 정유재란 때인 1598년 9월 말부터 10월 초에 걸쳐 왜군과 조명연합군이 전투를 벌인 곳으로 울산왜성전투·사천왜성전투와 더불어 정유재란 3대 전투의 현장이다. 정유재란 때 축조한 왜성의 축조 기법 및 변화 양상을 알 수 있는 유적이다.
순천왜성 (順天倭城)
순천왜성은 조선시대 정유재란 때 왜장 고니시 유키나가가 전라남도 순천시 해룡면 신성리에 쌓은 왜성이다. 전라도를 공략하기 위한 거점으로 동서 900m, 남북 850m 범위에 걸쳐 본성(本城)과 내·외성의 구조로 쌓았다. 내성과 외성 사이에는 해자를 설치하고 성벽 바깥으로는 목책을 둘러 요새화하였다. 정유재란 때인 1598년 9월 말부터 10월 초에 걸쳐 왜군과 조명연합군이 전투를 벌인 곳으로 울산왜성전투·사천왜성전투와 더불어 정유재란 3대 전투의 현장이다. 정유재란 때 축조한 왜성의 축조 기법 및 변화 양상을 알 수 있는 유적이다.
울산왜성(蔚山倭城)은 조선시대 정유재란 때 왜장 가토 기요마사가 울산시 중구 학성동에 쌓은 왜성이다. 1597년(선조 30)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설계하고, 아사노 유키나가[淺野幸長]가 16,000명을 동원하여 40여 일만에 쌓은 왜성이다. 서쪽으로 언양 방면의 방어를 위한 태화루 부근, 북쪽으로 경주 방면의 방어를 위한 학성산의 성황당, 동쪽으로 동천(東川)과 이어진 반구정(伴鷗亭)의 구릉지 등에 지성(支城)이 있었다. 1597년 12월과 1598년 9월 사이 이곳에서 왜군과 조 · 명연합군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울산왜성 (蔚山倭城)
울산왜성(蔚山倭城)은 조선시대 정유재란 때 왜장 가토 기요마사가 울산시 중구 학성동에 쌓은 왜성이다. 1597년(선조 30)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설계하고, 아사노 유키나가[淺野幸長]가 16,000명을 동원하여 40여 일만에 쌓은 왜성이다. 서쪽으로 언양 방면의 방어를 위한 태화루 부근, 북쪽으로 경주 방면의 방어를 위한 학성산의 성황당, 동쪽으로 동천(東川)과 이어진 반구정(伴鷗亭)의 구릉지 등에 지성(支城)이 있었다. 1597년 12월과 1598년 9월 사이 이곳에서 왜군과 조 · 명연합군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에 있는 조선후기 왜장 모리와 등이 축조한 성곽. 산성.
물금 증산성 (勿禁 甑山城)
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에 있는 조선후기 왜장 모리와 등이 축조한 성곽. 산성.
기장읍성(機張邑城)은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의 동부리, 서부리, 대라리 일대에 걸쳐 있는 조선 전기의 석축 읍성이다. 현재 둘레 약 1000m, 높이 최고 약 4m 정도의 돌로 된 성벽이 남아 있으며, 성문 2개소, 치성 2개소, 서벽과 남벽을 둘러싼 해자가 확인된다. 주형의 평산성으로 북쪽은 낮은 동산을 끼고 있고 남쪽은 평지이다. 성내 동헌 및 객사지 등이 일부 확인되었고 장관청은 복원되었다. 부산광역시 기념물이다.
기장읍성 (機張邑城)
기장읍성(機張邑城)은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의 동부리, 서부리, 대라리 일대에 걸쳐 있는 조선 전기의 석축 읍성이다. 현재 둘레 약 1000m, 높이 최고 약 4m 정도의 돌로 된 성벽이 남아 있으며, 성문 2개소, 치성 2개소, 서벽과 남벽을 둘러싼 해자가 확인된다. 주형의 평산성으로 북쪽은 낮은 동산을 끼고 있고 남쪽은 평지이다. 성내 동헌 및 객사지 등이 일부 확인되었고 장관청은 복원되었다. 부산광역시 기념물이다.
기장 죽성리성은 임진왜란 때 왜장 쿠로다 나가마사〔黑田長政〕가 부산광역시 기장군 죽성리에 쌓은 왜성이다. 서생포왜성과 연결되는 병참상의 거점으로 죽성만의 서쪽에 있는 남쪽 구릉에 6개의 곽(郭)으로 구성된 내성(內城)과 북쪽 구릉에 5개의 곽으로 구성된 외성(支城)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쪽 내성과 외성을 연결하는 해자와 북쪽의 청강천을 자연 해자로 삼아 두모포만 전체를 방어할 수 있도록 설계하였다. 석축 둘레 약 960m, 잔존 성벽 높이는 약 4∼5m 정도이며, 성벽은 왜성의 특징인 약 60∼70도 정도의 경사를 보이고 있다.
기장 죽성리성 (機張 竹城里城)
기장 죽성리성은 임진왜란 때 왜장 쿠로다 나가마사〔黑田長政〕가 부산광역시 기장군 죽성리에 쌓은 왜성이다. 서생포왜성과 연결되는 병참상의 거점으로 죽성만의 서쪽에 있는 남쪽 구릉에 6개의 곽(郭)으로 구성된 내성(內城)과 북쪽 구릉에 5개의 곽으로 구성된 외성(支城)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쪽 내성과 외성을 연결하는 해자와 북쪽의 청강천을 자연 해자로 삼아 두모포만 전체를 방어할 수 있도록 설계하였다. 석축 둘레 약 960m, 잔존 성벽 높이는 약 4∼5m 정도이며, 성벽은 왜성의 특징인 약 60∼70도 정도의 경사를 보이고 있다.
김해 죽도성은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왜장 나베시마 나오시게가 부산광역시 강서구 죽림동에 쌓은 왜성이다. 성은 녹산 방향의 바다 쪽에서 서낙동강으로 이어지는 수로와 김해로 연결되는 육로가 만나는 전략적 요충지로서 김해로 들어오는 길목에 해당하는 오봉산에 위치한다. 왜성의 중심부인 내성과 현재 부산 신항만과 대동IC 간 도로가 난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제1외성, 그리고 내성 동남쪽 제2외성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방어하는 구조이다. 김해 부읍성과 김해시 주촌면 신답왜성(新畓倭城)이 죽도왜성의 지성(支城)으로 기록되어 있다.
김해 죽도성 (金海 竹島城)
김해 죽도성은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왜장 나베시마 나오시게가 부산광역시 강서구 죽림동에 쌓은 왜성이다. 성은 녹산 방향의 바다 쪽에서 서낙동강으로 이어지는 수로와 김해로 연결되는 육로가 만나는 전략적 요충지로서 김해로 들어오는 길목에 해당하는 오봉산에 위치한다. 왜성의 중심부인 내성과 현재 부산 신항만과 대동IC 간 도로가 난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제1외성, 그리고 내성 동남쪽 제2외성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방어하는 구조이다. 김해 부읍성과 김해시 주촌면 신답왜성(新畓倭城)이 죽도왜성의 지성(支城)으로 기록되어 있다.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죽성리 지역에 있었던 조선시대의 어촌(漁村).
사야촌 (沙也村)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죽성리 지역에 있었던 조선시대의 어촌(漁村).
사천 선진리성은 조선시대 정유재란 때 왜장 모리 요시나리(毛利吉城)가 경상남도 사천시 용현면 선진리에 쌓은 왜성이다. 해안에 위치한 평산성으로 표고 30m인 북쪽 정상부를 석성으로 두른 내성과 내성의 동쪽과 남쪽을 토성으로 두른 외성으로 구분된다. 1597년(선조 30) 10월 하순 왜군의 철수 거점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왜장 모리 요시나리 부자(父子)를 비롯한 여러 왜장들이 협력하여 12월 26일 단기간에 준공하였다. 이듬해 왜장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가 수비하면서 수축하였으며, 사천읍성을 지성(支城)으로 두었다.
사천 선진리성 (泗川 船津里城)
사천 선진리성은 조선시대 정유재란 때 왜장 모리 요시나리(毛利吉城)가 경상남도 사천시 용현면 선진리에 쌓은 왜성이다. 해안에 위치한 평산성으로 표고 30m인 북쪽 정상부를 석성으로 두른 내성과 내성의 동쪽과 남쪽을 토성으로 두른 외성으로 구분된다. 1597년(선조 30) 10월 하순 왜군의 철수 거점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왜장 모리 요시나리 부자(父子)를 비롯한 여러 왜장들이 협력하여 12월 26일 단기간에 준공하였다. 이듬해 왜장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가 수비하면서 수축하였으며, 사천읍성을 지성(支城)으로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