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용암서원"
검색결과 총 6건
조선 중기에, 운봉현감, 영광군수, 밀양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박광옥 (朴光玉)
조선 중기에, 운봉현감, 영광군수, 밀양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중기에, 경기전참봉 등을 역임하였으며,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병장으로 추대되어 전투에서 활약한 의병장.
변사정 (邊士貞)
조선 중기에, 경기전참봉 등을 역임하였으며,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병장으로 추대되어 전투에서 활약한 의병장.
조선 중기에, 정유재란과 이괄의 난이 발발하자 의병을 일으켰으며, 국난 이후 향토 부흥에 헌신한 의병장.
서식 (徐湜)
조선 중기에, 정유재란과 이괄의 난이 발발하자 의병을 일으켰으며, 국난 이후 향토 부흥에 헌신한 의병장.
윤증은 조선후기 『명재유고』, 『명재의례문답』, 『명재유서』 등을 저술한 학자이다. 1629년(인조 7)에 태어나 1714년(숙종 40)에 사망했다. 김집의 문하에서 주자에 관해 배웠고, 송시열에게서 『주자대전』을 배웠다. 효종 말년 학업과 행실이 뛰어난 인물로 조정에 천거되어 여러 관직이 제수되었으나 모두 사양하고 부임하지 않았다. 아버지 윤선거의 묘지명을 계기로 송시열과 사제간의 의리가 끊어졌다. 이후 윤증이 송시열을 배반하고 헐뜯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노론과 소론으로 갈라진 치열한 당쟁에서 소론의 영수로서 송시열과 대립했다.
윤증 (尹拯)
윤증은 조선후기 『명재유고』, 『명재의례문답』, 『명재유서』 등을 저술한 학자이다. 1629년(인조 7)에 태어나 1714년(숙종 40)에 사망했다. 김집의 문하에서 주자에 관해 배웠고, 송시열에게서 『주자대전』을 배웠다. 효종 말년 학업과 행실이 뛰어난 인물로 조정에 천거되어 여러 관직이 제수되었으나 모두 사양하고 부임하지 않았다. 아버지 윤선거의 묘지명을 계기로 송시열과 사제간의 의리가 끊어졌다. 이후 윤증이 송시열을 배반하고 헐뜯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노론과 소론으로 갈라진 치열한 당쟁에서 소론의 영수로서 송시열과 대립했다.
이흘은 조선 후기, 조식 학문인 남명학의 중심지인 삼가(三嘉)〔지금의 경남 합천〕에서 활동하던 문인 학자이다. 죽정(竹亭)과 비암서당(鼻巖書堂) 등을 세워 제자 교육에 힘썼다. 조식의 위패를 봉안한 용암서원(龍巖書院) 원장을 지냈다. 정인홍과 입재(立齋) 노흠(盧欽, 1527~1601)의 다음 세대에서 남명학파를 이끌면서 임곡(林谷) 임진부(林眞怤, 1586-1657)와 창주(滄洲) 허돈(許燉, 1586-1632) 등 다음 세대로 남명학을 계승하게 하였다.
이흘 (李屹)
이흘은 조선 후기, 조식 학문인 남명학의 중심지인 삼가(三嘉)〔지금의 경남 합천〕에서 활동하던 문인 학자이다. 죽정(竹亭)과 비암서당(鼻巖書堂) 등을 세워 제자 교육에 힘썼다. 조식의 위패를 봉안한 용암서원(龍巖書院) 원장을 지냈다. 정인홍과 입재(立齋) 노흠(盧欽, 1527~1601)의 다음 세대에서 남명학파를 이끌면서 임곡(林谷) 임진부(林眞怤, 1586-1657)와 창주(滄洲) 허돈(許燉, 1586-1632) 등 다음 세대로 남명학을 계승하게 하였다.
조선 후기에, 전주판관, 임천군수, 장령 등을 역임한 문신.
황일호 (黃一皓)
조선 후기에, 전주판관, 임천군수, 장령 등을 역임한 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