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운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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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도소리」는 무거운 나무나 돌을 옮길 때, 양쪽에서 두 사람이나 네 사람 등이 짝을 지어서 물건을 어깨에 메고 발을 맞추며 운반하면서 부르는 노동요 또는 운반노동요이다. 여러 사람이 함께 무거운 짐을 옮기기 위해 발걸음을 맞추어야 하므로, 「목도소리」는 주로 2소박의 빠르고 경쾌한 리듬으로 소리를 메기고 받아 부르며, 이를 통해 일의 고됨과 힘듦을 덜고 일의 능률을 높이고자 하였다. 함경도, 황해도, 강원도, 경상도, 전라북도 등의 산간 지역에 많이 분포되어 있으며 대부분 메나리토리로 이루어져 있다.
목도소리
「목도소리」는 무거운 나무나 돌을 옮길 때, 양쪽에서 두 사람이나 네 사람 등이 짝을 지어서 물건을 어깨에 메고 발을 맞추며 운반하면서 부르는 노동요 또는 운반노동요이다. 여러 사람이 함께 무거운 짐을 옮기기 위해 발걸음을 맞추어야 하므로, 「목도소리」는 주로 2소박의 빠르고 경쾌한 리듬으로 소리를 메기고 받아 부르며, 이를 통해 일의 고됨과 힘듦을 덜고 일의 능률을 높이고자 하였다. 함경도, 황해도, 강원도, 경상도, 전라북도 등의 산간 지역에 많이 분포되어 있으며 대부분 메나리토리로 이루어져 있다.
발해시대의 관부.
대농시 (大農寺)
발해시대의 관부.
안흥창은 고려시대에 전라도(현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지역에 설치되었던 조창(漕倉)이다. 고려시대에는 전국에 13조창을 설치하고 조운을 통하여 각 지방의 세곡을 개경으로 운반하였다. 안흥창은 부안의 곰소만 연안에 위치하여 전라도 고부와 그 주변 지역의 세곡을 모아 서해안을 따라 개경의 경창으로 운송하는 기능을 담당했다. 『고려사』에 따르면 1척당 1000석의 곡식을 실을 수 있는 초마선 6척을 두었다고 한다. 판관이 세곡 운송과 보관을 관리, 감독하였는데 녹봉이 20석 지급되었다. 안흥창의 폐쇄 시기는 분명하지 않지만 고려 말기로 추정된다.
안흥창 (安興倉)
안흥창은 고려시대에 전라도(현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지역에 설치되었던 조창(漕倉)이다. 고려시대에는 전국에 13조창을 설치하고 조운을 통하여 각 지방의 세곡을 개경으로 운반하였다. 안흥창은 부안의 곰소만 연안에 위치하여 전라도 고부와 그 주변 지역의 세곡을 모아 서해안을 따라 개경의 경창으로 운송하는 기능을 담당했다. 『고려사』에 따르면 1척당 1000석의 곡식을 실을 수 있는 초마선 6척을 두었다고 한다. 판관이 세곡 운송과 보관을 관리, 감독하였는데 녹봉이 20석 지급되었다. 안흥창의 폐쇄 시기는 분명하지 않지만 고려 말기로 추정된다.
영산창은 조선 초기 현 전라남도 나주시의 영산강변에 설치되었던 조창이다. 조선시대에 전국의 주요 지점에 조창을 설치하고 조운을 통하여 각 지방의 세곡을 경창으로 운반하였다. 영산창은 고려시대에 운영된 해릉창의 역할을 계승하여 나주 등 남부 지역 17개 고을의 세곡을 수납하여 조운선으로 경창으로 운송하였다. 조운선 53척이 배치되었으며 세곡 조운을 감독하는 해운판관이 임명되었다. 1512년 험난한 해로에서 해난 사고가 발생하여 세곡이 손실되는 것을 방비한다는 이유로 폐쇄되었고, 그 기능은 영광 법성포창에 통합되었다.
영산창 (榮山倉)
영산창은 조선 초기 현 전라남도 나주시의 영산강변에 설치되었던 조창이다. 조선시대에 전국의 주요 지점에 조창을 설치하고 조운을 통하여 각 지방의 세곡을 경창으로 운반하였다. 영산창은 고려시대에 운영된 해릉창의 역할을 계승하여 나주 등 남부 지역 17개 고을의 세곡을 수납하여 조운선으로 경창으로 운송하였다. 조운선 53척이 배치되었으며 세곡 조운을 감독하는 해운판관이 임명되었다. 1512년 험난한 해로에서 해난 사고가 발생하여 세곡이 손실되는 것을 방비한다는 이유로 폐쇄되었고, 그 기능은 영광 법성포창에 통합되었다.
고려시대에 충청도 서산시 지역에 설치되었던 조창(漕倉). 양광도(楊廣道) 부성(현 서산) · 홍주(현 홍성) 및 그 주변 지역의 세곡(稅穀)을 모아 개경의 경창(京倉)으로 운송하는 기능을 담당하였다. 고려 초기에 설치한 전국 12조창 중 하나로, 현 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어송리 지역에 위치하였다. 창개 혹은 창포라는 옛 지명이 남아 있으며, 근래까지도 옛 창고와 관련된 유물들이 주변 일대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고려시대 태안반도 지역의 유일한 조창으로서 충청도 서부 지역에서 산출되었던 세곡의 경창 운송에 주요한 역할을 담당한 조창이었다.
영풍창 (永豊倉)
고려시대에 충청도 서산시 지역에 설치되었던 조창(漕倉). 양광도(楊廣道) 부성(현 서산) · 홍주(현 홍성) 및 그 주변 지역의 세곡(稅穀)을 모아 개경의 경창(京倉)으로 운송하는 기능을 담당하였다. 고려 초기에 설치한 전국 12조창 중 하나로, 현 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어송리 지역에 위치하였다. 창개 혹은 창포라는 옛 지명이 남아 있으며, 근래까지도 옛 창고와 관련된 유물들이 주변 일대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고려시대 태안반도 지역의 유일한 조창으로서 충청도 서부 지역에서 산출되었던 세곡의 경창 운송에 주요한 역할을 담당한 조창이었다.
진성창은 현재의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지역에 설치되었던 고려시대의 조창(漕倉)이다. 고려시대에는 전국에 13조창을 설치하고 각 지방의 세곡을 개경으로 운반하였다. 금강 하구 연안에 위치한 진성창은 전라도 전주와 임피, 진례 등 주변 지역의 세곡을 모아 경창으로 운송하였다. 세곡 운송과 보관을 관리하는 판관이 임명되었으며, 1척 당 1000석의 곡식을 실을 수 있는 초마선 6척을 배치되었다. 1358년 왜구의 침략으로 큰 피해를 입으면서 폐쇄 또는 이전한 것으로 추정된다. 1390년에 내륙에 가까운 용안에 득성창이 설치되면서 역할이 크게 위축되었다.
진성창 (鎭成倉)
진성창은 현재의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지역에 설치되었던 고려시대의 조창(漕倉)이다. 고려시대에는 전국에 13조창을 설치하고 각 지방의 세곡을 개경으로 운반하였다. 금강 하구 연안에 위치한 진성창은 전라도 전주와 임피, 진례 등 주변 지역의 세곡을 모아 경창으로 운송하였다. 세곡 운송과 보관을 관리하는 판관이 임명되었으며, 1척 당 1000석의 곡식을 실을 수 있는 초마선 6척을 배치되었다. 1358년 왜구의 침략으로 큰 피해를 입으면서 폐쇄 또는 이전한 것으로 추정된다. 1390년에 내륙에 가까운 용안에 득성창이 설치되면서 역할이 크게 위축되었다.
고려 전기 전국의 주요 해변과 강가에 위치해 수로교통의 요충지로 이용되었던 촌락.
포 (浦)
고려 전기 전국의 주요 해변과 강가에 위치해 수로교통의 요충지로 이용되었던 촌락.
볏단를 지게에 지고 나르면서 부르는 소리. 벼등짐소리·나락등짐소리·볏짐나르는소리.
볏단 나르는 소리
볏단를 지게에 지고 나르면서 부르는 소리. 벼등짐소리·나락등짐소리·볏짐나르는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