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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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대에 발해만(渤海灣) 북안(北岸)에 있던 나라.
고죽국 (孤竹國)
중국 고대에 발해만(渤海灣) 북안(北岸)에 있던 나라.
신식화폐조례는 1892년(고종 29)에 은화(銀貨)를 본위화로 하고 동화(銅貨)를 보조화로 채택한 근대식 화폐제도이다. 당백전의 남발 등으로 화폐제도의 혼란이 초래되자 조선정부는 근대식 화폐제도를 도입하고자 하였다. 묄렌도르프가 담당한 서양식 근대화폐 주조가 실패한 후, 일본정부와 대판제동회사장의 자금 지원을 받아 신식화폐를 발행하기로 하였다. 일본에서 실시되고 있던 은본위제도를 채용하는 조례를 제정하였고, 각종 신식화폐를 주조하였다. 그러나 일본이 화폐발행에 필요한 자금을 양도하지 않아 화폐주조가 중지되었고, 조례도 폐지되었다.
신식화폐조례 (新式貨幣條例)
신식화폐조례는 1892년(고종 29)에 은화(銀貨)를 본위화로 하고 동화(銅貨)를 보조화로 채택한 근대식 화폐제도이다. 당백전의 남발 등으로 화폐제도의 혼란이 초래되자 조선정부는 근대식 화폐제도를 도입하고자 하였다. 묄렌도르프가 담당한 서양식 근대화폐 주조가 실패한 후, 일본정부와 대판제동회사장의 자금 지원을 받아 신식화폐를 발행하기로 하였다. 일본에서 실시되고 있던 은본위제도를 채용하는 조례를 제정하였고, 각종 신식화폐를 주조하였다. 그러나 일본이 화폐발행에 필요한 자금을 양도하지 않아 화폐주조가 중지되었고, 조례도 폐지되었다.
조선시대 일본에서 들어 온 은화 혹은 은괴.
왜은 (倭銀)
조선시대 일본에서 들어 온 은화 혹은 은괴.
지원보초는 1287년(충렬왕 13, 지원 24)에 원(元) 세조가 발행한 원나라의 지폐이다. 원 정부는 재정적 압박으로 기존에 발행하던 중통보초(中統寶鈔)의 발행량이 늘고 가치가 하락하자 새로운 지폐의 발행을 모색하였다. 1287년에는 남송(南宋) 정벌로 인해 재정 압박이 더욱 커지자 새로운 보초의 발행을 결정하였다.
지원보초 (至元寶鈔)
지원보초는 1287년(충렬왕 13, 지원 24)에 원(元) 세조가 발행한 원나라의 지폐이다. 원 정부는 재정적 압박으로 기존에 발행하던 중통보초(中統寶鈔)의 발행량이 늘고 가치가 하락하자 새로운 지폐의 발행을 모색하였다. 1287년에는 남송(南宋) 정벌로 인해 재정 압박이 더욱 커지자 새로운 보초의 발행을 결정하였다.
중통보초는 1260년(원종 1), 원 세조 때 발행한 원나라의 지폐이다. 가치 하락으로 1287년에 발행이 중지되었다가, 1311년 원 무종에 의해 소액권으로 재발행되기도 하였다. 원 말기에는 사회의 혼란 등으로 제도가 무너졌다.
중통보초 (中統寶鈔)
중통보초는 1260년(원종 1), 원 세조 때 발행한 원나라의 지폐이다. 가치 하락으로 1287년에 발행이 중지되었다가, 1311년 원 무종에 의해 소액권으로 재발행되기도 하였다. 원 말기에는 사회의 혼란 등으로 제도가 무너졌다.
조선전기 동지총제, 이조참판, 도총부부총관 등을 역임한 무신.
박성양 (朴成陽)
조선전기 동지총제, 이조참판, 도총부부총관 등을 역임한 무신.
경상남도 진주시 은열사(殷烈祠)에 소장된 고려시대의 명장 강민첨(姜民瞻, ?∼1021)의 이모본(移模本) 초상화.
강민첨 초상 (姜民瞻 肖像)
경상남도 진주시 은열사(殷烈祠)에 소장된 고려시대의 명장 강민첨(姜民瞻, ?∼1021)의 이모본(移模本) 초상화.
중국인 예수회 신부 은정형이 샤를르 달레 신부가 편찬한 『한국천주교회사』 중 일부를 한문으로 번역하여 편집한 천주교서. 역사서.
고려주증 (高麗主證)
중국인 예수회 신부 은정형이 샤를르 달레 신부가 편찬한 『한국천주교회사』 중 일부를 한문으로 번역하여 편집한 천주교서. 역사서.
1628년 제12대 왕 인조가 19공신 및 그 자손들과 함께 회맹하여 천지산천과 종묘사직에 고하고 연명한 것을 모아 엮은 관찬서.
십구공신회맹록 (十九功臣會盟錄)
1628년 제12대 왕 인조가 19공신 및 그 자손들과 함께 회맹하여 천지산천과 종묘사직에 고하고 연명한 것을 모아 엮은 관찬서.
사경원은 사경(寫經)을 실시한 장소이자 기관이다. 사경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경전을 베껴 적는 것을 말한다. 승려나 재가 신도들에 의해 많은 사경이 이루어졌고, 이를 전문적으로 하는 승려인 사경승(寫經僧)이 등장하였다. 고려시대에 이르러 사경원 또는 사경소(寫經所)가 설치되어 전문 사경승들이 경전을 서사하였다. 무신집권기 중기 이후부터는 국가에서 사경원을 설치하였다. 충렬왕과 충숙왕 및 충선왕 때에 금자원(金字院)과 은자원(銀字院)이라는 사경소가 있었다.
사경원 (寫經院)
사경원은 사경(寫經)을 실시한 장소이자 기관이다. 사경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경전을 베껴 적는 것을 말한다. 승려나 재가 신도들에 의해 많은 사경이 이루어졌고, 이를 전문적으로 하는 승려인 사경승(寫經僧)이 등장하였다. 고려시대에 이르러 사경원 또는 사경소(寫經所)가 설치되어 전문 사경승들이 경전을 서사하였다. 무신집권기 중기 이후부터는 국가에서 사경원을 설치하였다. 충렬왕과 충숙왕 및 충선왕 때에 금자원(金字院)과 은자원(銀字院)이라는 사경소가 있었다.
다리는 백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왕비의 은팔찌를 제작한 장인이다. 출토된 두 개의 은팔찌 안쪽 면에 팔찌의 제작 시기, 만든 장인의 이름과 무게 등이 기록되어 있어 '다리'라는 백제 공예가의 이름을 알 수 있게 되었다.
다리 (多利)
다리는 백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왕비의 은팔찌를 제작한 장인이다. 출토된 두 개의 은팔찌 안쪽 면에 팔찌의 제작 시기, 만든 장인의 이름과 무게 등이 기록되어 있어 '다리'라는 백제 공예가의 이름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양산 금조총 출토 유물 일괄은 경상남도 양산 북정리 고분군 금조총에서 출토된 신라의 금속공예 유물 일괄이다. 돌방[石室] 내부에서 출토된 금제 굵은고리 귀걸이 2쌍. 금팔찌 1쌍, 은허리띠 1점, 청동다리미 1점으로 구성된다. 6세기 초에 신라의 왕도인 경주 소재 귀금속 공방에서 제작된 것이며, 신라의 왕이 양산 지역 유력자에게 신임의 징표로 사여한 물품이다. 2016년 11월 16일 보물로 지정되었고,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양산 금조총 출토 유물 일괄 (梁山 金鳥塚 出土 遺物 一括)
양산 금조총 출토 유물 일괄은 경상남도 양산 북정리 고분군 금조총에서 출토된 신라의 금속공예 유물 일괄이다. 돌방[石室] 내부에서 출토된 금제 굵은고리 귀걸이 2쌍. 금팔찌 1쌍, 은허리띠 1점, 청동다리미 1점으로 구성된다. 6세기 초에 신라의 왕도인 경주 소재 귀금속 공방에서 제작된 것이며, 신라의 왕이 양산 지역 유력자에게 신임의 징표로 사여한 물품이다. 2016년 11월 16일 보물로 지정되었고,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