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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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은 조선시대 『동의보감』·『언해태산집요』·『언해구급방』 등을 저술한 의관, 의학자이다. 1539년(중종 34)에 태어나 1615년(광해군 7)에 사망했다. 1571년(선조 4) 내의원이 된 후 왕세자의 천연두를 치료하여 정3품의 품계를 받았다. 임진왜란 때 선조의 피난길에 동행하여 생사를 같이했고 왕세자의 난치병을 고쳐 종1품에 올랐다. 선조가 승하하자 책임을 지고 귀양을 갔으며 풀려난 후 평범한 내의로 지내다 삶을 마쳤다. 어의로 재직하면서 내의원 의학서적 집필을 도맡았고, 유배생활 중에 역작 『동의보감』을 완성했다.
허준 (許浚)
허준은 조선시대 『동의보감』·『언해태산집요』·『언해구급방』 등을 저술한 의관, 의학자이다. 1539년(중종 34)에 태어나 1615년(광해군 7)에 사망했다. 1571년(선조 4) 내의원이 된 후 왕세자의 천연두를 치료하여 정3품의 품계를 받았다. 임진왜란 때 선조의 피난길에 동행하여 생사를 같이했고 왕세자의 난치병을 고쳐 종1품에 올랐다. 선조가 승하하자 책임을 지고 귀양을 갔으며 풀려난 후 평범한 내의로 지내다 삶을 마쳤다. 어의로 재직하면서 내의원 의학서적 집필을 도맡았고, 유배생활 중에 역작 『동의보감』을 완성했다.
홍정후는 대한제국기 중추원의관을 지낸 정치인이자 독립협회 회원이다. 1898년 만민공동회 청년 연사로 한로은행(韓露銀行) 내막을 폭로하고 재정 고문과 군사 교관의 부당성을 규탄하는 연설을 하였다. 중추원 관제개혁 때는 독립협회 대표의 한 사람으로 중추원의관이 되었다.
홍정후 (洪正厚)
홍정후는 대한제국기 중추원의관을 지낸 정치인이자 독립협회 회원이다. 1898년 만민공동회 청년 연사로 한로은행(韓露銀行) 내막을 폭로하고 재정 고문과 군사 교관의 부당성을 규탄하는 연설을 하였다. 중추원 관제개혁 때는 독립협회 대표의 한 사람으로 중추원의관이 되었다.
조선 중기에, 내의원 의관을 역임하였으며, 허준과 함께 선조를 치료한 의관·공신.
이공기 (李公沂)
조선 중기에, 내의원 의관을 역임하였으며, 허준과 함께 선조를 치료한 의관·공신.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사에 소장된 조선 말기의 치성광여래삼존도.
서울 도봉사 치성광여래삼존도 (서울 道峰寺 熾盛光如來三尊圖)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사에 소장된 조선 말기의 치성광여래삼존도.
남영은 1601년(선조 34)에 침의로 인정받아 등용되었고, 선조 말년부터 광해군대 중반까지 침의로서 국왕의 질병을 여러 차례 치료하였다. 그 공로로 장흥고 직장, 양성현감, 음죽현감에 제수되었다. 둘째 아들 남창조도 침의로 인조 말년부터 현종대까지 어전에서 활약하였다.
남영 (南嶸)
남영은 1601년(선조 34)에 침의로 인정받아 등용되었고, 선조 말년부터 광해군대 중반까지 침의로서 국왕의 질병을 여러 차례 치료하였다. 그 공로로 장흥고 직장, 양성현감, 음죽현감에 제수되었다. 둘째 아들 남창조도 침의로 인조 말년부터 현종대까지 어전에서 활약하였다.
고려시대 명법업(明法業)·명산업(明算業)·명서업(明書業)·의업(醫業)·주금업(呪噤業)·복업(卜業)·지리업(地理業) 등의 잡업(雜業)에 종사하던 사람.
잡업인 (雜業人)
고려시대 명법업(明法業)·명산업(明算業)·명서업(明書業)·의업(醫業)·주금업(呪噤業)·복업(卜業)·지리업(地理業) 등의 잡업(雜業)에 종사하던 사람.
개항기 합천 해인사 대광전 삼신불도, 부산 범어사 석가26보살도 등의 불화를 제작한 승려. 화승(畵僧).
기전 (琪銓)
개항기 합천 해인사 대광전 삼신불도, 부산 범어사 석가26보살도 등의 불화를 제작한 승려. 화승(畵僧).
삼국시대 나당연합군의 고구려 정벌 당시의 장수.
달관 (達官)
삼국시대 나당연합군의 고구려 정벌 당시의 장수.
육교시사(六橋詩社)는 1876년부터 1880년대 중반까지 약 10년간 한양의 육교(六橋)를 중심으로 중인 신분이었던 역관 동인들이 주축이 되어 활동한 시사이다. 특정 한 곳에서 모임이 이루어지지 않고 동인들의 거처를 돌아가면서 모임이 이루어졌다. 사행(使行)의 송별과 환영, 특별한 절기, 회갑 · 돌 등 경조사 등이 있을 때마다 모임을 가지고 시를 지었으며, 국내외 정세를 고민하며 담론을 나누었다. 관련 자료로 강위가 육교시사의 동인들과 함께하며 지은 시들을 모은 시집인 『육교연음집(六橋聯吟集)』이 전한다.
육교시사 (六橋詩社)
육교시사(六橋詩社)는 1876년부터 1880년대 중반까지 약 10년간 한양의 육교(六橋)를 중심으로 중인 신분이었던 역관 동인들이 주축이 되어 활동한 시사이다. 특정 한 곳에서 모임이 이루어지지 않고 동인들의 거처를 돌아가면서 모임이 이루어졌다. 사행(使行)의 송별과 환영, 특별한 절기, 회갑 · 돌 등 경조사 등이 있을 때마다 모임을 가지고 시를 지었으며, 국내외 정세를 고민하며 담론을 나누었다. 관련 자료로 강위가 육교시사의 동인들과 함께하며 지은 시들을 모은 시집인 『육교연음집(六橋聯吟集)』이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