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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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리는 데에 어떤 특정한 회화 표현 방식을 사용하는 미술유파. 화풍 · 화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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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화파는 그림을 그리는 데에 어떤 특정한 회화 표현 방식을 사용하는 미술유파로 화풍이라고도 한다. 화파의 이름은 사승관계나 지역적 연관성으로 붙여지기도 한다. 중국에서는 오대 이래 화파가 계속 형성되어 수많은 화파가 존재하였다. 조선시대에 나타난 화파는 안견파, 절파, 정선파, 추사파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는 중국에서 전래된 것도 있고 우리 화가들에 의해 새롭게 발전한 것도 있다. 우리나라 화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화파에 대한 이해가 선결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화파는 근, 현대기에도 계속 형성되고 또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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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그림을 그리는 데에 어떤 특정한 회화 표현 방식을 사용하는 미술유파. 화풍 · 화파.
개설

화파의 이름은 사승(師承) 관계나 지역적 연관성으로 붙여지기도 한다. 조선시대에는 여러 화풍과 화파가 있었는데, 이들은 중국에서 전래된 것도 있고 우리 화가들에 의해 새롭게 발전한 것도 있다. 화파는 중국에서는 대개 오대(五代) 이래 계속 형성되어 수많은 화파가 존재하였다. 따라서 우리나라 화파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화파에 대한 이해가 선결되어야 한다.

조선시대에 나타난 화파는 안견파(安堅派), 절파(浙派), 정선파(鄭敾派), 추사파(秋史派) 등을 꼽을 수 있다. 중국의 경우는 동거파(董巨派), 이곽파(李郭派), 마하파(馬夏派), 황산파(黃山派), 송강파(松江派), 정통파(正統派), 개성화파(個性畵派), 금릉화파(金陵畵派), 양주화파(揚州畵派), 해상화파(海上畵派) 등 보다 많은 화파가 있다.

연원 및 변천
  1. 중국

중국의 화파를 시대순으로 살펴보면, 먼저 오대에 등장하는 화파로 동거파(董巨派)가 있다. 동원(董源)과 거연(巨然)의 화풍을 말하는데, 주로 강남의 경치를 그리며, 기법상으로는 피마준(披麻皴)을 사용했다. 이 화풍은 원대(元代)에 들어와 원사대가(元四大家)가 많이 사용함으로써 중요한 화파가 되었다. 원사대가는 모두 피마준을 사용하여 각자의 화풍을 형성한 공통점을 갖고 있으며, 이로부터 절대준(折帶皴), 우모준(牛毛皴), 장피마준(長披麻皴)과 같은 변형이 생겨났다.

송대(宋代)의 화파로는 이곽파(李郭派)와 마하파(馬夏派)를 들 수 있다. 북송(北宋) 때는 이성(李成)과 곽희(郭熙)를 중심으로 이곽파가, 남송 때는 마원(馬遠)과 하규(夏珪)를 중심으로 마하파가 성립했다. 이곽파는 화북 지방의 경치를 그리는데 게 발톱 같은 나뭇가지 처리가 특징인데, 이를 해조묘(蟹爪描)라 한다. 또 중앙에 높은 산을 배치하고 우점준(雨點皴)을 즐겨 썼다. 마하파의 경우 강남의 경치를 강한 부벽준(斧劈皴)을 이용해 그리는 것이 특징이고 변각구도(邊角構圖)를 선호하여 자연의 일부를 그리는 소경산수화(小景山水畵)가 많다. 이 두 화파는 명대(明代) 절파의 모태가 되었다. 조선시대 전반기에 이 화파에 영향을 받은 그림이 그려져 우리와도 연관이 깊다.

명대(明代)에 등장하는 화파는 절파와 오파 그리고 송강파이다. 오파와 송강파는 문인화풍이며 절파는 직업화가풍이다. 절파는 명초(明初)에 대진(戴進)이 시작하고 오위(吳偉), 장로(張路) 등이 발전시킨 것이다. 이곽파와 마하파의 화풍을 바탕으로 하여 원대 문인화의 장점을 결합시킨 것으로 강렬한 붓질, 복잡한 구성, 후경의 중시 등을 특징으로 한다.

오파는 심주(沈周)와 문징명(文徵明)이 대표인데, 원사대가의 화풍을 기반으로 하여 발전한 것이다. 그림이 철학적이고 담백하며 고대 특정화가의 화풍을 모방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송강파는 오파가 점차 감각적이고 기교적으로 흐르는 데 반발해 나타난 것으로 보다 복고풍을 지향했다. 준법을 중시하고 고화(古畵)의 품격을 살리고자 했는데, 원사대가뿐 아니라 동원, 거연, 미불(米芾), 미우인(米友仁) 등의 화풍을 살리고자 하였다. 절파와 오파는 조선 중기와 후기에 각각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청대(淸代)의 화파로는 정통파, 개성화파, 양주화파, 해상화파 등을 꼽을 수 있다. 정통파는 동기창(董其昌)의 복고주의 이론을 신봉하며 방작(倣作)을 주로 했던 화파이다. 사왕오운(四王吳惲)으로 대표되는 이들은 너무 모방에 치우쳐 창의성이 결여된 그림을 그렸는데, 방작의 대상으로는 황공망(黃公望)을 특히 선호하였다.

개성화파는 정통파의 복고주의에 반발하면서 개성을 존중한 화가들인데, 팔대산인(八大山人), 석도(石濤) 등이 대표적인 화가이다. 이들은 참신한 소재의 발굴과 새로운 표현법으로 양주의 화가들에게 강한 자극을 주어 이후 양주화파와 해상화파가 출현하는 바탕이 되었다.

청대 중기에 등장하는 양주화파는 상업의 중심지인 양주를 중심으로 활동하였는데, 대중들의 기호에 맞는 작품들을 만들어 내었다. 금농(金農), 정섭(鄭燮), 이선(李鱓), 화암(華嵒), 나빙(羅聘) 등이 대표적인 화가들인데 양주팔괴(揚州八怪)라고도 부른다. 이들은 방작보다 대중들이 좋아하는 화조화를 많이 그렸으며 강렬한 채색을 즐겨 사용하였다.

양주화파의 상업적인 경향은 해상화파에서 더욱 심해지는데, 상해를 중심으로 하는 해상화파는 아편전쟁 이후 새로운 국제도시인 상해에 모여든 화가들로 이루어졌다. 조지겸(趙之謙), 오창석(吳昌碩), 임백년(任伯年) 등이 유명하며 이들은 상해에 망명하고 있던 조선 화가 민영익(閔泳翊)과 교유한 바 있다. 두 화파의 인물들은 조선의 화가들에 이름이 잘 알려져 있었으며 사행원들에 의해 이들의 그림이 국내로 반입되기도 하였다.

  1. 한국

조선시대에 먼저 등장하는 화파로는 안견파를 들 수 있다. 조선 전기의 가장 뛰어난 화가인 안견의 화풍을 따르는 화가들이 이후 많이 나타나 붙여진 이름이다. 화풍은 안견의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나 전칭작인 「사시팔경도(四時八景圖)」와 같은 작품에 보이는 화풍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한쪽으로 치우치게 그리는 편파구도(偏頗構圖)와 경물이 흩어진 듯 조화를 이루는 것이 화풍상의 특징인데, 양팽손(梁彭孫), 이정근(李正根), 이흥효(李興孝), 이징(李澄) 등이 이러한 표현을 나름대로 변형시키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중국화의 유기적이고 치밀한 산수 표현과 대비되는 한국적 분위기의 조선 전기 산수화의 특징은 대개 안견파 화풍에서 찾아볼 수 있다.

조선 중기에는 절파 화풍이 성행하는데 이것은 중국의 절파 화풍이 소개되어 한국화된 것이다. 강희안(姜希顔), 김시(金禔), 이경윤(李慶胤), 김명국(金命國) 등을 꼽을 수 있는데 해학적인 표현, 한국적 소재 발굴 등에서 중국과는 다른 취향을 느낄 수 있다.

조선 후기에는 한국의 산수를 그리는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가 등장하는데, 여기에는 정선(鄭敾)의 선구적인 업적이 크다. 그의 표현은 강렬하고 독특한데, 그의 화풍을 따르는 이들을 정선파 또는 겸재파라고 한다. 수직준(垂直皴)과 미점(米點)을 기초로 한 정형화된 금강산의 표현, 거칠게 그리는 소나무와 바위의 표현, 강력한 부벽준 등이 특징이다. 대표적 화가로는 강희언(姜希彦), 김윤겸(金允謙), 최북(崔北), 김응환(金應煥), 정수영(鄭遂榮) 등을 꼽을 수 있다.

후기에는 중국 황산파의 영향도 나타난다. 황산파는 안휘파(安徽派)라고도 하는데, 황산을 중심으로 한 실경산수화를 주로 그리는 화파이다. 산을 기하학적인 윤곽선으로 그리는 것이 특징이며, 홍인(弘仁)과 소운종(蕭雲從)이 대표적인 중국 화가이다. 이들의 화법이 목판화집 등을 통하여 조선에 전해진 것으로 보이는데, 이인상(李麟祥), 강세황(姜世晃), 이윤영(李胤永), 정수영(鄭遂榮) 등의 작품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바위 처리가 각지고 윤곽선 위주이며 전체적으로 정갈한 느낌을 주는 것이 특징이다.

조선 말기에는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를 따르는 화가들이 많이 나타나는데, 이들을 추사파라 부른다. 중국의 전형적인 문인화풍에 보다 가깝게 그리고자 노력한 김정희의 뜻을 따랐으며, 그의 독특한 서체도 모방하는 것이 특색이다. 조희룡(趙熙龍), 전기(田琦), 허유(許維) 등의 중인계급(中人階級) 화가들이 대표적이며, 허유의 뒤를 이어서 근대기에 허백련(許百鍊), 허건(許楗) 등이 그 정신을 계승하였다.

이상에서 살펴본 중국과 한국의 화파 외에도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은 화파들이 존재하였다. 그리고 이와 같은 화파는 고대뿐 아니라 근, 현대기에도 계속 형성되고 또 사라지고 있다.

참고문헌

『중국회화사삼천년』(양신·리처드 반하트·섭숭정·제임스캐힐·낭소군·무홍/정형민 역, 학고재, 1999)
『한국회화사』(안휘준, 일지사,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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