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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문인·학자 김려의 「이안민전」·「포수이사룡전」·「안황중전」 등 8편의 전 등이 수록된 전집(傳集).
단량패사 (丹良稗史)
조선후기 문인·학자 김려의 「이안민전」·「포수이사룡전」·「안황중전」 등 8편의 전 등이 수록된 전집(傳集).
빈객(賓客)은 조선시대,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에 소속된 정2품 관직이다. 세자시강원은 세자의 교육을 담당하여 서연(書筵)을 전담하였다. 빈객은 시강관의 임무를 맡아 세자에게 학문을 가르치는 업무를 담당하였다. 주로 겸직으로 임명되었으며, 세자의 스승이었다. 시강원의 고위직으로 운영과 관원 임용에 참여할 수 있었다.
빈객 (賓客)
빈객(賓客)은 조선시대,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에 소속된 정2품 관직이다. 세자시강원은 세자의 교육을 담당하여 서연(書筵)을 전담하였다. 빈객은 시강관의 임무를 맡아 세자에게 학문을 가르치는 업무를 담당하였다. 주로 겸직으로 임명되었으며, 세자의 스승이었다. 시강원의 고위직으로 운영과 관원 임용에 참여할 수 있었다.
사(師)는 조선시대에 유교적 이념에 기초한 정치구조에서 왕위 계승자의 교육을 담당하는 스승을 상징하는 직책이다. 조선시대에는 왕세자 교육을 담당하는 관서인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의 정1품 관직으로 영의정이 겸직하였다. 사는 정1품 부(傅)와 종1품 이사(貳師)와 함께 시강원의 운영과 시강관의 임용에 관여하였고, 정기적으로 회강의 진행 상황과 세자의 학습 정도를 살피는 감독관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사 (師)
사(師)는 조선시대에 유교적 이념에 기초한 정치구조에서 왕위 계승자의 교육을 담당하는 스승을 상징하는 직책이다. 조선시대에는 왕세자 교육을 담당하는 관서인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의 정1품 관직으로 영의정이 겸직하였다. 사는 정1품 부(傅)와 종1품 이사(貳師)와 함께 시강원의 운영과 시강관의 임용에 관여하였고, 정기적으로 회강의 진행 상황과 세자의 학습 정도를 살피는 감독관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고려 후기에, 호군, 밀직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김문귀 (金文貴)
고려 후기에, 호군, 밀직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의 학자, 이사안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37년에 간행한 시문집.
완가정문집 (玩稼亭文集)
조선 후기의 학자, 이사안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37년에 간행한 시문집.
고려 후기에, 찬성사, 도첨의정승, 태자좌찬선 등을 역임한 문신.
권한공 (權漢功)
고려 후기에, 찬성사, 도첨의정승, 태자좌찬선 등을 역임한 문신.
성주이씨 영정은 나라에 공을 세운 성주 이씨 집안의 인물 10명을 그린 영정이다. 1989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이씨 대종회에서 소장하고 있다. 고려부터 조선 초기까지 나라에 공이 있는 10명의 초상화 13점이다. 원래 22점이 있었는데 일부를 임진왜란 때 도난당하여 13점이 남게 되었다. 이 영정들은 조선 후기에 여러 차례 중모·개모를 거친 것이다. 영정들은 대부분 공신도상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장경, 이조년, 이숭인 등의 영정은 고흥 성산사의 것과 같은 상용 형식을 취하고 있다.
성주이씨 영정 (星州李氏 影幀)
성주이씨 영정은 나라에 공을 세운 성주 이씨 집안의 인물 10명을 그린 영정이다. 1989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이씨 대종회에서 소장하고 있다. 고려부터 조선 초기까지 나라에 공이 있는 10명의 초상화 13점이다. 원래 22점이 있었는데 일부를 임진왜란 때 도난당하여 13점이 남게 되었다. 이 영정들은 조선 후기에 여러 차례 중모·개모를 거친 것이다. 영정들은 대부분 공신도상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장경, 이조년, 이숭인 등의 영정은 고흥 성산사의 것과 같은 상용 형식을 취하고 있다.
조선 후기에, 병조참판, 대사간, 함경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명곤 (李命坤)
조선 후기에, 병조참판, 대사간, 함경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부춘당북천록』 등을 저술한 학자.
이병 (李炳)
조선 후기에, 『부춘당북천록』 등을 저술한 학자.
안견은 조선 전기 「팔준도」, 「몽유도원도」, 「대소가의장도」 등을 그린 화가이다. 생몰년은 미상이다. 세종 대에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고 문종과 단종을 거쳐 세조 대까지도 화원으로 활약했다. 안평대군을 가까이 섬기면서 그가 소장하고 있던 고화들을 섭렵하여 자신의 화풍을 형성하는 토대로 삼았다. 북송 때의 화원 곽희의 화풍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다른 화풍의 요소를 수용하여 자기 나름의 독특한 양식을 이룩하여 조선 중기까지 화단에 큰 영향을 끼쳤다. 산수화에 가장 뛰어났지만 초상·화훼·매죽·노안·누각·말·의장도 등 다양한 소재를 그렸다.
안견 (安堅)
안견은 조선 전기 「팔준도」, 「몽유도원도」, 「대소가의장도」 등을 그린 화가이다. 생몰년은 미상이다. 세종 대에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고 문종과 단종을 거쳐 세조 대까지도 화원으로 활약했다. 안평대군을 가까이 섬기면서 그가 소장하고 있던 고화들을 섭렵하여 자신의 화풍을 형성하는 토대로 삼았다. 북송 때의 화원 곽희의 화풍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다른 화풍의 요소를 수용하여 자기 나름의 독특한 양식을 이룩하여 조선 중기까지 화단에 큰 영향을 끼쳤다. 산수화에 가장 뛰어났지만 초상·화훼·매죽·노안·누각·말·의장도 등 다양한 소재를 그렸다.
조선후기 우포도대장, 충청도병마절도사, 병조판서 등을 역임한 무신.
이삼 (李森)
조선후기 우포도대장, 충청도병마절도사, 병조판서 등을 역임한 무신.
「옥린몽」은 조선 후기에 이정작(李庭綽, 1678-1758)이 쓴 고전소설이다. 국문으로 창작한 회장소설(回章小說)로, 송나라를 배경으로 범경문과 그의 두 아내인 유씨와 여씨 사이의 갈등을 다룬 쟁총형 가정소설이다. 이정작은 조선 숙종 및 영조 연간에 활동했던 문장가로, 호가 회헌(晦軒)이다.
옥린몽 (玉麟夢)
「옥린몽」은 조선 후기에 이정작(李庭綽, 1678-1758)이 쓴 고전소설이다. 국문으로 창작한 회장소설(回章小說)로, 송나라를 배경으로 범경문과 그의 두 아내인 유씨와 여씨 사이의 갈등을 다룬 쟁총형 가정소설이다. 이정작은 조선 숙종 및 영조 연간에 활동했던 문장가로, 호가 회헌(晦軒)이다.
조선 전기에, 장령 등을 역임한 문신.
이인석 (李仁錫)
조선 전기에, 장령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전기에, 대사헌, 예조판서, 우찬성 등을 역임한 문신.
이승손 (李承孫)
조선 전기에, 대사헌, 예조판서, 우찬성 등을 역임한 문신.
이정기는 남북국시대 당나라에서 평로치청절도관찰사를 역임한 고구려의 유민이다. 732년에 태어나 781년에 사망했다. 본명은 회옥(懷玉)인데 당에서 ‘정기’라는 이름을 하사하였다. 안녹산의 난 이후 당이 지방 절도사 세력을 통제할 수 없게 되자, 산동 지역을 장악하여 세력을 키웠다. 해상교통의 독점권을 장악하고 이윤을 축적하여 강력한 절도사 세력으로 성장하였다. 낙양을 공격할 계획을 세웠으나 악성 종양으로 사망한 후 아들 이납이 통치권을 장악하였다. 중앙 조정의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60여 년 동안 독자적인 세력을 유지하며 국왕처럼 행세하였다.
이정기 (李正己)
이정기는 남북국시대 당나라에서 평로치청절도관찰사를 역임한 고구려의 유민이다. 732년에 태어나 781년에 사망했다. 본명은 회옥(懷玉)인데 당에서 ‘정기’라는 이름을 하사하였다. 안녹산의 난 이후 당이 지방 절도사 세력을 통제할 수 없게 되자, 산동 지역을 장악하여 세력을 키웠다. 해상교통의 독점권을 장악하고 이윤을 축적하여 강력한 절도사 세력으로 성장하였다. 낙양을 공격할 계획을 세웠으나 악성 종양으로 사망한 후 아들 이납이 통치권을 장악하였다. 중앙 조정의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60여 년 동안 독자적인 세력을 유지하며 국왕처럼 행세하였다.
조선 전기에, 성균관직강, 의금부제조, 충청도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정녕 (李正寧)
조선 전기에, 성균관직강, 의금부제조, 충청도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전기에, 예조정랑, 호조참판, 이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이집 (李諿)
조선 전기에, 예조정랑, 호조참판, 이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전기에, 예조정랑, 봉상시소윤, 첨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원효 (李元孝)
조선 전기에, 예조정랑, 봉상시소윤, 첨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신라의 제3대 왕, 유리이사금의 장인으로 추정되는 귀족.
일지갈문왕 (日知葛文王)
신라의 제3대 왕, 유리이사금의 장인으로 추정되는 귀족.
헌덕왕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41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809~826년이다. 할아버지인 원성왕 대부터 주요 관직을 거치면서 정치적 기반을 다졌다. 형인 소성왕이 즉위 2년 만에 죽고 어린 조카 애장왕이 즉위하자 섭정을 하다가 난을 일으켜 애장왕을 살해하고 왕위에 올랐다. 관제개혁을 통해 왕권강화를 도모했고, 불사를 금하여 귀족세력을 억압했으며, 일가가 정치권력을 독점하자 반발한 구귀족들이 김헌창의 난을 일으켰다. 819년에 당의 요청으로 군사 3만을 보내 절도사의 반란진압을 도왔고, 826년에는 패강에 300리 장성을 쌓았다.
헌덕왕 (憲德王)
헌덕왕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41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809~826년이다. 할아버지인 원성왕 대부터 주요 관직을 거치면서 정치적 기반을 다졌다. 형인 소성왕이 즉위 2년 만에 죽고 어린 조카 애장왕이 즉위하자 섭정을 하다가 난을 일으켜 애장왕을 살해하고 왕위에 올랐다. 관제개혁을 통해 왕권강화를 도모했고, 불사를 금하여 귀족세력을 억압했으며, 일가가 정치권력을 독점하자 반발한 구귀족들이 김헌창의 난을 일으켰다. 819년에 당의 요청으로 군사 3만을 보내 절도사의 반란진압을 도왔고, 826년에는 패강에 300리 장성을 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