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이승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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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에 있는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 이승만 관련 건물. 별장.
고 이승만 대통령 별장 및 정자 (故 李承晩 大統領 別莊 및 亭子)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에 있는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 이승만 관련 건물. 별장.
일제강점기 때, 대동단에서 의친왕 망명 계획에 가담하였으며, 한국노병회 이사, 교민단의사회 학무위원, 임시정부 경무국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나창헌 (羅昌憲)
일제강점기 때, 대동단에서 의친왕 망명 계획에 가담하였으며, 한국노병회 이사, 교민단의사회 학무위원, 임시정부 경무국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대한청년단연합회 교제부장, 광복군참리부 외무사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김두만 (金斗萬)
일제강점기 때, 대한청년단연합회 교제부장, 광복군참리부 외무사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임시의정원 의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민충식 (閔忠植)
일제강점기 때, 임시의정원 의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김병로는 해방 이후 남조선과도정부 사법부 부장, 대법원장 등을 역임한 법조인이자 정치인이다. 1887년(고종 24)에 태어나 1964년에 사망했다. 1910년 일본에 유학하여 법학을 전공했다. 귀국 후 형법과 소송법 강의를 하며 경성지방법원 소속 변호사로 개업했다. 독립운동 관련 사건을 무료 변론하며 다방면의 사회활동으로 독립운동에 공헌했다. 해방 후 한국민주당 창당에 참여했고, 남조선과도정부 사법부장, 초대 및 제2대 대법원장을 지냈다. 대법원장 재임 동안 사법부 밖에서 오는 온갖 압력과 간섭을 뿌리치고 사법권 독립의 기초를 다졌다.
김병로 (金炳魯)
김병로는 해방 이후 남조선과도정부 사법부 부장, 대법원장 등을 역임한 법조인이자 정치인이다. 1887년(고종 24)에 태어나 1964년에 사망했다. 1910년 일본에 유학하여 법학을 전공했다. 귀국 후 형법과 소송법 강의를 하며 경성지방법원 소속 변호사로 개업했다. 독립운동 관련 사건을 무료 변론하며 다방면의 사회활동으로 독립운동에 공헌했다. 해방 후 한국민주당 창당에 참여했고, 남조선과도정부 사법부장, 초대 및 제2대 대법원장을 지냈다. 대법원장 재임 동안 사법부 밖에서 오는 온갖 압력과 간섭을 뿌리치고 사법권 독립의 기초를 다졌다.
김성숙은 일제강점기 조선의용대 정치부장, 임시정부 국무위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정치인, 승려이다. 1898년 평안북도 철산 출신으로 호는 운암(雲巖), 성숙(星淑)은 법명이다. 1916년 독립군에 가담하기 위해 만주로 건너갔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용문사로 들어가 출가했다. 주요 독립운동 활동으로 3·1 운동 주도, 조선의열단 가담, 조선의용대 조직 및 정치부장, 임시정부 국무위원 역임 등이 있다. 광복 후 여운형과 좌우합작을 지지하였으며, 진보당사건(1955년)으로 큰 탄압을 받았다. 1969년 서거하였으며, 198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김성숙 (金星淑)
김성숙은 일제강점기 조선의용대 정치부장, 임시정부 국무위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정치인, 승려이다. 1898년 평안북도 철산 출신으로 호는 운암(雲巖), 성숙(星淑)은 법명이다. 1916년 독립군에 가담하기 위해 만주로 건너갔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용문사로 들어가 출가했다. 주요 독립운동 활동으로 3·1 운동 주도, 조선의열단 가담, 조선의용대 조직 및 정치부장, 임시정부 국무위원 역임 등이 있다. 광복 후 여운형과 좌우합작을 지지하였으며, 진보당사건(1955년)으로 큰 탄압을 받았다. 1969년 서거하였으며, 198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1921년 7월 미국 하와이에서 조직된 독립운동 단체.
동지회 (同志會)
1921년 7월 미국 하와이에서 조직된 독립운동 단체.
박용만은 해방 이후 9, 10, 12, 13대 국회의원, 국회행정위원장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924년에 태어나 1996년에 사망했다. 해방 직후 서울에서 유학생동맹위원장을 지낸 이래 우익 청년운동, 반동·반탁 투쟁에 앞장섰다. 1950년에 정계에 투신하여 1973년 9대 선거에서야 당선되어 ‘칠전팔기’의 주인공으로 회자된 인물이다. 자유당 내 족청계 제거에 앞장섰으나 이기붕과 결별하면서 탈당했다. 13대 총선 결과 여소야대로 야당에게 국회직이 배정되자 국회행정위원장에 선임되기도 했다. 말년에는 이승만의 건국 정통성 옹호운동을 벌였다.
박용만 (朴容萬)
박용만은 해방 이후 9, 10, 12, 13대 국회의원, 국회행정위원장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924년에 태어나 1996년에 사망했다. 해방 직후 서울에서 유학생동맹위원장을 지낸 이래 우익 청년운동, 반동·반탁 투쟁에 앞장섰다. 1950년에 정계에 투신하여 1973년 9대 선거에서야 당선되어 ‘칠전팔기’의 주인공으로 회자된 인물이다. 자유당 내 족청계 제거에 앞장섰으나 이기붕과 결별하면서 탈당했다. 13대 총선 결과 여소야대로 야당에게 국회직이 배정되자 국회행정위원장에 선임되기도 했다. 말년에는 이승만의 건국 정통성 옹호운동을 벌였다.
일제강점기 때, 대한적십자회 상의원, 대한민국임시정부 교민단 총무, 한국유일독립당 집행위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강경선 (姜景善)
일제강점기 때, 대한적십자회 상의원, 대한민국임시정부 교민단 총무, 한국유일독립당 집행위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1919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
노동사회개진당 (勞動社會改進黨)
1919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
대한민국임시정부는 1919년부터 1945년까지 27년간 중국에서 민주공화제의 독립 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주권 자치를 실현하였던 임시정부이다.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하이에 수립된 이후 1945년 11월 김구 등이 환국할 때까지 민주공화제의 독립 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주권 자치를 실현하였다. 임시정부 수립일은 기념일 제정 시에는 4월 13일이라고 여겨 왔으나 근거 자료의 확대와 이에 대한 역사학적 분석에 따라 2019년부터 4월 11일로 바로잡게 되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大韓民國 臨時政府)
대한민국임시정부는 1919년부터 1945년까지 27년간 중국에서 민주공화제의 독립 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주권 자치를 실현하였던 임시정부이다.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하이에 수립된 이후 1945년 11월 김구 등이 환국할 때까지 민주공화제의 독립 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주권 자치를 실현하였다. 임시정부 수립일은 기념일 제정 시에는 4월 13일이라고 여겨 왔으나 근거 자료의 확대와 이에 대한 역사학적 분석에 따라 2019년부터 4월 11일로 바로잡게 되었다.
4·19혁명의 사망자·부상자·공로자를 안장한 국립묘지.
국립4·19민주묘지 (國立四一九民主墓地)
4·19혁명의 사망자·부상자·공로자를 안장한 국립묘지.
안두희는 해방 이후 현역 육군 소위로 김구를 암살한 군인이다. 1917년 평북 용천 출생으로 해방 후 월남해 서북청년회에 단원으로 활동했으며, 1948년 육군사관학교 8기에 입교했다. 1949년 6월 26일 백범 김구의 저택인 경교장에서 4발의 총탄으로 김구를 살해하였다. 이후 종신형을 선고받았으나 15년으로 감형되었다가 6·25전쟁 당시 형집행정지로 가석방되었다. 김구 선생을 존경한다는 시민 박기서에게 1996년 10월 피살되었다. 김구 암살의 일차적 배후는 군부였고, 이승만은 직접 개입의 증거는 없으나 사건의 뒤처리에는 개입하였던 것으로 확인된다.
안두희 (安斗熙)
안두희는 해방 이후 현역 육군 소위로 김구를 암살한 군인이다. 1917년 평북 용천 출생으로 해방 후 월남해 서북청년회에 단원으로 활동했으며, 1948년 육군사관학교 8기에 입교했다. 1949년 6월 26일 백범 김구의 저택인 경교장에서 4발의 총탄으로 김구를 살해하였다. 이후 종신형을 선고받았으나 15년으로 감형되었다가 6·25전쟁 당시 형집행정지로 가석방되었다. 김구 선생을 존경한다는 시민 박기서에게 1996년 10월 피살되었다. 김구 암살의 일차적 배후는 군부였고, 이승만은 직접 개입의 증거는 없으나 사건의 뒤처리에는 개입하였던 것으로 확인된다.
일제강점기 때, 임시의정원 의원, 한국노병회 비서부장, 한국독립당 중앙집행위원, 민족혁명당 감찰위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김기형 (金基瀅)
일제강점기 때, 임시의정원 의원, 한국노병회 비서부장, 한국독립당 중앙집행위원, 민족혁명당 감찰위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안재홍은 해방 이후 민정장관,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자 사학자이다. 1891년(고종 28)에 태어나 1965년에 사망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유학중 대한민국청년외교단에 가담하여 활동하다 옥고를 치렀다. 귀국 후 언론인으로 활동하며 신간회사건, 조선어학회사건, 임시정부 활동 등으로 여러 차례 옥고를 겪었다. 광복 후 조선건국준비위원회 부위원장이 되었으나 결별하고 국민당을 결성하여 당수가 되었다. 독립촉성중앙협의회에 참가하여 이승만을 회장으로 추대했고 과도입법의원, 미군정청 민정장관을 역임했다. 1950년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나 납북되었다.
안재홍 (安在鴻)
안재홍은 해방 이후 민정장관,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자 사학자이다. 1891년(고종 28)에 태어나 1965년에 사망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유학중 대한민국청년외교단에 가담하여 활동하다 옥고를 치렀다. 귀국 후 언론인으로 활동하며 신간회사건, 조선어학회사건, 임시정부 활동 등으로 여러 차례 옥고를 겪었다. 광복 후 조선건국준비위원회 부위원장이 되었으나 결별하고 국민당을 결성하여 당수가 되었다. 독립촉성중앙협의회에 참가하여 이승만을 회장으로 추대했고 과도입법의원, 미군정청 민정장관을 역임했다. 1950년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나 납북되었다.
신익희는 일제강점기 임시정부 내무총장, 국회의장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자 독립운동가이다. 1894년(고종 31)에 태어나 1956년에 사망했다. 미국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원칙이 발표되자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3·1운동 후 상해로 떠나 26년간 망명생활을 했다. 대한민국임시헌법을 기초하고 임시정부의 중책을 맡았다. 귀국 후 임시정부 계통과 노선을 달리했고, 이승만의 뒤를 이어 국회의장이 되었다. 이승만의 장기집권에 반대하여 장면·조병옥 등과 민주당을 창당하고 1956년 야당의 대통령후보로 출마했다. 유세활동 중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신익희 (申翼熙)
신익희는 일제강점기 임시정부 내무총장, 국회의장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자 독립운동가이다. 1894년(고종 31)에 태어나 1956년에 사망했다. 미국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원칙이 발표되자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3·1운동 후 상해로 떠나 26년간 망명생활을 했다. 대한민국임시헌법을 기초하고 임시정부의 중책을 맡았다. 귀국 후 임시정부 계통과 노선을 달리했고, 이승만의 뒤를 이어 국회의장이 되었다. 이승만의 장기집권에 반대하여 장면·조병옥 등과 민주당을 창당하고 1956년 야당의 대통령후보로 출마했다. 유세활동 중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1910년대 말 중국 상해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
상해조선인민단 (上海朝鮮人民團)
1910년대 말 중국 상해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
광복 이후 초대 외무부장관, 국무총리 등을 역임한 정치인.
장택상 (張澤相)
광복 이후 초대 외무부장관, 국무총리 등을 역임한 정치인.
1951년부터 1961년까지 존재한 한국의 정당.
자유당 (自由黨)
1951년부터 1961년까지 존재한 한국의 정당.
1921년 2월 중국 상해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
유지사 (有志社)
1921년 2월 중국 상해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