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인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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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삼을 넣어 빚는 약주.
인삼주 (人蔘酒)
인삼을 넣어 빚는 약주.
인삼 재배와 약용문화는 인삼을 농경 작물로 재배하는 기술과 인삼의 효능을 바탕으로 다양한 약재를 개발하고 이를 복용하는 모든 문화이다. 인삼은 삼국시대부터 우리나라 주요 특산물이었으며 조선 후기에 가삼이 주요 상품이 되었고 이후 홍삼으로 가공되면서 대표 약재가 되었다. 인삼의 생태적 특성을 바탕으로 인삼 재배의 다양한 전통 지식이 전승되고 있으며, 인삼을 가공, 변형하여 다양한 건강식품으로 만드는 기술도 전승된다. 인삼의 주요 재배지는 강화, 금산, 풍기 등이며, 인삼을 약용으로 활용하는 기법도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인삼 재배와 약용문화 (人蔘 栽培와 藥用文化)
인삼 재배와 약용문화는 인삼을 농경 작물로 재배하는 기술과 인삼의 효능을 바탕으로 다양한 약재를 개발하고 이를 복용하는 모든 문화이다. 인삼은 삼국시대부터 우리나라 주요 특산물이었으며 조선 후기에 가삼이 주요 상품이 되었고 이후 홍삼으로 가공되면서 대표 약재가 되었다. 인삼의 생태적 특성을 바탕으로 인삼 재배의 다양한 전통 지식이 전승되고 있으며, 인삼을 가공, 변형하여 다양한 건강식품으로 만드는 기술도 전승된다. 인삼의 주요 재배지는 강화, 금산, 풍기 등이며, 인삼을 약용으로 활용하는 기법도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충청남도 금산군에 속한 분지.
금산 분지 (錦山 盆地)
충청남도 금산군에 속한 분지.
개성상인은 고려·조선시대 개성을 중심으로 국내 상업과 국제 무역을 담당한 상인이다. 개성상인들은 개성부 내의 시전(市廛), 전국적 행상(行商) 활동, 해양을 무대로 한 선상(船商) 활동, 중국과 일본을 연결하는 국제 무역 등을 토대로 성장하였으며, 나아가 인삼 재배와 홍삼 제조업으로도 사업 영역을 확장하였다. 개성상인들은 송도사개치부법으로 불리는 복식 부기법, 사환(使喚) 교육과 차인(差人)의 지방 진출 등을 지원하는 제도, 신용을 기초로 하는 금융 제도인 시변제(時邊制) 등 합리적이고 장기 지속 가능한 상업 관습을 창출하였다.
개성상인 (開城商人)
개성상인은 고려·조선시대 개성을 중심으로 국내 상업과 국제 무역을 담당한 상인이다. 개성상인들은 개성부 내의 시전(市廛), 전국적 행상(行商) 활동, 해양을 무대로 한 선상(船商) 활동, 중국과 일본을 연결하는 국제 무역 등을 토대로 성장하였으며, 나아가 인삼 재배와 홍삼 제조업으로도 사업 영역을 확장하였다. 개성상인들은 송도사개치부법으로 불리는 복식 부기법, 사환(使喚) 교육과 차인(差人)의 지방 진출 등을 지원하는 제도, 신용을 기초로 하는 금융 제도인 시변제(時邊制) 등 합리적이고 장기 지속 가능한 상업 관습을 창출하였다.
고려후기 상장군, 호군, 도첨의찬성사 등을 역임한 관리.
조윤통 (曺允通)
고려후기 상장군, 호군, 도첨의찬성사 등을 역임한 관리.
담배·홍삼 및 홍삼제품의 전매와 인삼행정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였던 재무부의 외청.
전매청 (專賣廳)
담배·홍삼 및 홍삼제품의 전매와 인삼행정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였던 재무부의 외청.
전북특별자치도 북동부에 위치한 군.
진안군 (鎭安郡)
전북특별자치도 북동부에 위치한 군.
팔포는 조선시대 중국 사행의 공식 인원에게 허가해 준 무역 자금이다. 중국 사행에 필요한 여비를 자비로 부담한 것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 사무역을 허용하였다. 조선 초기에 은화를 가지고 가는 것을 금지하고, 인삼 10근씩을 가지고 가도록 했다가 80근으로 늘렸는데, ‘10근씩 여덟 꾸러미’로 포장해서 팔포라고 했다. 은화로 환산할 수 있는 가치 칭량단위여서 인삼이 아니라 국내 생산물 가운데 가죽, 종이, 해삼 등 잡화로 대체할 수 있었다. 역관은 별포라고 하여 각 군문과 아문에서 빌려준 은화로 무역을 대행하거나 무역 권리를 빌려주는 공팔포(空八包)를 활용하였다.
팔포 (八包)
팔포는 조선시대 중국 사행의 공식 인원에게 허가해 준 무역 자금이다. 중국 사행에 필요한 여비를 자비로 부담한 것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 사무역을 허용하였다. 조선 초기에 은화를 가지고 가는 것을 금지하고, 인삼 10근씩을 가지고 가도록 했다가 80근으로 늘렸는데, ‘10근씩 여덟 꾸러미’로 포장해서 팔포라고 했다. 은화로 환산할 수 있는 가치 칭량단위여서 인삼이 아니라 국내 생산물 가운데 가죽, 종이, 해삼 등 잡화로 대체할 수 있었다. 역관은 별포라고 하여 각 군문과 아문에서 빌려준 은화로 무역을 대행하거나 무역 권리를 빌려주는 공팔포(空八包)를 활용하였다.
공삼제는 조선시대 각 군현에서 공납의 물품으로 인삼을 상납하던 제도이다. 공삼, 삼공이라고도 하였다. 조선 인삼은 약효가 뛰어나다고 평가되어 일찍부터 공납제의 대상이 되었다. 공삼은 대내적으로는 중앙 각사에 대한 약재 지급용으로 사용되었고, 대외적으로는 조공품, 사절단의 경비, 무역 물품 등으로 이용되었다. 17세기 대동법의 시행으로 공삼은 현물공납제에서 공물가를 받아 공물을 매입하는 수가무납제로 변하였다. 이 제도는 20세기 초반에 폐지되었다. 공납품이었던 인삼은 일제강점기에는 전매국, 해방 이후에는 전매청, 한국담배인삼공사, 한국인삼공사에서 관할하고 있다.
공삼제 (貢蔘制)
공삼제는 조선시대 각 군현에서 공납의 물품으로 인삼을 상납하던 제도이다. 공삼, 삼공이라고도 하였다. 조선 인삼은 약효가 뛰어나다고 평가되어 일찍부터 공납제의 대상이 되었다. 공삼은 대내적으로는 중앙 각사에 대한 약재 지급용으로 사용되었고, 대외적으로는 조공품, 사절단의 경비, 무역 물품 등으로 이용되었다. 17세기 대동법의 시행으로 공삼은 현물공납제에서 공물가를 받아 공물을 매입하는 수가무납제로 변하였다. 이 제도는 20세기 초반에 폐지되었다. 공납품이었던 인삼은 일제강점기에는 전매국, 해방 이후에는 전매청, 한국담배인삼공사, 한국인삼공사에서 관할하고 있다.
홍삼무역은 18세기 말부터 수삼을 가공하여 생산한 홍삼을 해외 시장에 수출해온 경제활동이다. 18세기 전반까지의 인삼은 자연산으로 지금의 산삼이었다. 18세기 중후반부터 산삼이 거의 사라지자 인삼 재배가 성행하였다. 19세기 들어 개성상인들이 인삼 재배에 대대적으로 투자하면서 홍삼무역은 비약적으로 성장하였다. 홍삼 원료인 6년근 인삼은 1810년대부터 6·25전쟁 발발 이전까지 개성인이 재배하였다. 18세기 말에 시작된 홍삼무역은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를 거쳐 현재의 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 2백년 넘게 성행하고 있다.
홍삼무역 (紅蔘貿易)
홍삼무역은 18세기 말부터 수삼을 가공하여 생산한 홍삼을 해외 시장에 수출해온 경제활동이다. 18세기 전반까지의 인삼은 자연산으로 지금의 산삼이었다. 18세기 중후반부터 산삼이 거의 사라지자 인삼 재배가 성행하였다. 19세기 들어 개성상인들이 인삼 재배에 대대적으로 투자하면서 홍삼무역은 비약적으로 성장하였다. 홍삼 원료인 6년근 인삼은 1810년대부터 6·25전쟁 발발 이전까지 개성인이 재배하였다. 18세기 말에 시작된 홍삼무역은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를 거쳐 현재의 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 2백년 넘게 성행하고 있다.
1754년(영조 30) 의주 상인의 책문무역을 공인하면서 반포된 무역 운영 규정이다. 의주 상인의 책문무역이 다시 공인되자, 역관의 팔포와 의주상인의 만포가 규정대로 채워지는지, 은화를 초과 반출하지 않는지에 대한 철저한 검사를 규정하였다. 무역이 끝난 뒤에는 비포문서를 만들었는데, 거기에는 책문에 남겨둔 은화의 수량도 기록하여 무역품의 총 값어치를 증명할 수 있도록 하였다. 비포문서 및 사행의 문기 등은 3~4인의 관리를 따로 두어 검토하게 하였다. 무역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폐단을 막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었다.
비포절목 (比包節目)
1754년(영조 30) 의주 상인의 책문무역을 공인하면서 반포된 무역 운영 규정이다. 의주 상인의 책문무역이 다시 공인되자, 역관의 팔포와 의주상인의 만포가 규정대로 채워지는지, 은화를 초과 반출하지 않는지에 대한 철저한 검사를 규정하였다. 무역이 끝난 뒤에는 비포문서를 만들었는데, 거기에는 책문에 남겨둔 은화의 수량도 기록하여 무역품의 총 값어치를 증명할 수 있도록 하였다. 비포문서 및 사행의 문기 등은 3~4인의 관리를 따로 두어 검토하게 하였다. 무역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폐단을 막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