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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목활자 및 인쇄 용구는 조선 후기에 민간에서 책을 찍어내는 데 사용한 목활자와 용구이다. 1986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호남지방과 호서지방에서 삯을 받고 민간의 문집류, 족·과보류(族·科譜類), 제전기류, 지방지류 등을 찍는 데 사용하였다. 활자체가 인서체이면서도 글자의 오른쪽에서 길게 삐치는 특이한 모양에 따라 “지겟다리획 인서체 목활자”로 이름 붙였다. 이 목활자는 순조 초기에 만들어져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 부족한 것을 만들고 보충해 가면서 사용하여 활자 폼은 조잡하다. 호남과 호서지방에서 민간 책들을 찍어 지방문화발전에 기여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민간 목활자 및 인쇄 용구 (民間 木活字 및 印刷 用具)
민간 목활자 및 인쇄 용구는 조선 후기에 민간에서 책을 찍어내는 데 사용한 목활자와 용구이다. 1986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호남지방과 호서지방에서 삯을 받고 민간의 문집류, 족·과보류(族·科譜類), 제전기류, 지방지류 등을 찍는 데 사용하였다. 활자체가 인서체이면서도 글자의 오른쪽에서 길게 삐치는 특이한 모양에 따라 “지겟다리획 인서체 목활자”로 이름 붙였다. 이 목활자는 순조 초기에 만들어져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 부족한 것을 만들고 보충해 가면서 사용하여 활자 폼은 조잡하다. 호남과 호서지방에서 민간 책들을 찍어 지방문화발전에 기여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고려판대장경인쇄전말(高麗板大藏經印刷顚末)』은 일제강점기에, 고려 『재조대장경(팔만대장경)』의 인출 관련 보고서 3종 중 1915년 조선총독부에서 편찬한 보고서로 고려 재조대장경 인출에 대해 전반적인 내용이 상세하게 게재되어 있는 자료이다. 이 보고서는 1915년에 발간된 등사본에서부터 1931년에 출판된 간행본까지 총 6종이 있는데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1915년판 간행본이다.
고려판대장경인쇄전말 (高麗板大藏經印刷顚末)
『고려판대장경인쇄전말(高麗板大藏經印刷顚末)』은 일제강점기에, 고려 『재조대장경(팔만대장경)』의 인출 관련 보고서 3종 중 1915년 조선총독부에서 편찬한 보고서로 고려 재조대장경 인출에 대해 전반적인 내용이 상세하게 게재되어 있는 자료이다. 이 보고서는 1915년에 발간된 등사본에서부터 1931년에 출판된 간행본까지 총 6종이 있는데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1915년판 간행본이다.
감동관은 조선시대 국가의 토목 공사나 서적 간행 등 특별한 사업을 감독 관리하기 위해 임시로 임명된 관직이다. 감동은 공사를 감독하고 채근한다는 의미로, 공사의 규모와 성격에 따라서 대신과 당상관, 참상관, 잡직 등 다양한 부류가 감동관으로 임명되었다. 국가의 온갖 공사에 임명되는 임시 관직으로 사안에 따라 주어진 임무가 달랐으며, 사업의 결과에 따라 가자나 승서, 상물의 하사 등 포상을 받기도 하고, 문책을 당하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는 크고 작은 각종 사업에 책임을 맡는 감동관을 임명하여 부실한 공사를 방지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감동관 (監董官)
감동관은 조선시대 국가의 토목 공사나 서적 간행 등 특별한 사업을 감독 관리하기 위해 임시로 임명된 관직이다. 감동은 공사를 감독하고 채근한다는 의미로, 공사의 규모와 성격에 따라서 대신과 당상관, 참상관, 잡직 등 다양한 부류가 감동관으로 임명되었다. 국가의 온갖 공사에 임명되는 임시 관직으로 사안에 따라 주어진 임무가 달랐으며, 사업의 결과에 따라 가자나 승서, 상물의 하사 등 포상을 받기도 하고, 문책을 당하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는 크고 작은 각종 사업에 책임을 맡는 감동관을 임명하여 부실한 공사를 방지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복사기는 문서 · 도면 · 사진 따위를 같은 크기로 또는 확대, 축소하여 간단하고 빠르게 복제하는 기계이다. 복사기는 18세기 후반 습식 방식으로 시작되어 20세기 중반 건식 방식으로 발전하였다. 한국에는 1960년대 도입되었고, 초기에는 고가의 제품이었지만 점차 대중화되어 사무 환경과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1980년대에는 정치적인 측면에서도 복사기가 중요한 역할을 하며 정보 전파에 이바지하였다.
복사기 (複寫機)
복사기는 문서 · 도면 · 사진 따위를 같은 크기로 또는 확대, 축소하여 간단하고 빠르게 복제하는 기계이다. 복사기는 18세기 후반 습식 방식으로 시작되어 20세기 중반 건식 방식으로 발전하였다. 한국에는 1960년대 도입되었고, 초기에는 고가의 제품이었지만 점차 대중화되어 사무 환경과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1980년대에는 정치적인 측면에서도 복사기가 중요한 역할을 하며 정보 전파에 이바지하였다.
『소파여사시집(小坡女士詩集)』은 1929년에 근대의 여성 작가 오효원(吳孝媛)의 한시와 가사 등을 엮어 간행한 시집이다. 활자본 1책으로, 책 앞머리에는 저자의 아버지 오시선(吳時善)이 쓴 서문, 청말에 활동한 교육가이자 시인인 오지영(吳芝瑛)이 쓴 서문을 비롯해 저자의 서문이 수록되어 있으며, 책의 말미에는 발문 1편과 편자의 후기가 수록되어 있다. 수록 작품은 모두 474수로, 다양한 시체(詩體)의 시가 실려 있다.
소파여사시집 (小坡女士詩集)
『소파여사시집(小坡女士詩集)』은 1929년에 근대의 여성 작가 오효원(吳孝媛)의 한시와 가사 등을 엮어 간행한 시집이다. 활자본 1책으로, 책 앞머리에는 저자의 아버지 오시선(吳時善)이 쓴 서문, 청말에 활동한 교육가이자 시인인 오지영(吳芝瑛)이 쓴 서문을 비롯해 저자의 서문이 수록되어 있으며, 책의 말미에는 발문 1편과 편자의 후기가 수록되어 있다. 수록 작품은 모두 474수로, 다양한 시체(詩體)의 시가 실려 있다.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내판리에 있는 교과서 전문 박물관.
교과서박물관 (敎科書博物館)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내판리에 있는 교과서 전문 박물관.
덕원 성 베네딕도 수도원(德源 聖 Benedictus 修道院)은 1927년 함경남도 덕원에 건립된 베네딕도회 대수도원이다. 1909년 독일 상트 오틸리엔의 베네딕도 수도회가 교육 선교를 목적으로 서울 백동에 세웠던 수도원 후신이다. 1920년 베네딕도 수도회가 새로 설정된 원산교구를 맡으며 덕원 성 베네딕도 수도원이 건립되었고 1949년 북한 공산정권에 의해 폐쇄되었다.
덕원 성 베네딕도 수도원 (德源 聖 Benedictus 修道院)
덕원 성 베네딕도 수도원(德源 聖 Benedictus 修道院)은 1927년 함경남도 덕원에 건립된 베네딕도회 대수도원이다. 1909년 독일 상트 오틸리엔의 베네딕도 수도회가 교육 선교를 목적으로 서울 백동에 세웠던 수도원 후신이다. 1920년 베네딕도 수도회가 새로 설정된 원산교구를 맡으며 덕원 성 베네딕도 수도원이 건립되었고 1949년 북한 공산정권에 의해 폐쇄되었다.
일제강점기 때, 김천청년연맹 집행위원, 부산청년동맹 집행부에서 활동하며 독립운동 자금 지원 활동을 수행하였으며, 해방 이후 제2대 국회의원을 역임한 정치인·독립운동가.
김칠성 (金七星)
일제강점기 때, 김천청년연맹 집행위원, 부산청년동맹 집행부에서 활동하며 독립운동 자금 지원 활동을 수행하였으며, 해방 이후 제2대 국회의원을 역임한 정치인·독립운동가.
「동대문도」는 1901년 8월 29일 『그리스도신문』에 게재된 서울 동대문의 모습을 찍은 사진이다. 동대문을 전경으로 오고가는 흰 옷 입은 인파를 넣어 촬영하였다. 『그리스도신문』에 실린 대부분의 사진이 서구의 여러 풍물과 첨단 기술 분야를 소재로 한 것과 달리 한국의 문화유산을 소재로 담고 있어 19세기 초 서울의 모습과 주변 환경을 오늘에 전하고 있다.
동대문도 (東大門圖)
「동대문도」는 1901년 8월 29일 『그리스도신문』에 게재된 서울 동대문의 모습을 찍은 사진이다. 동대문을 전경으로 오고가는 흰 옷 입은 인파를 넣어 촬영하였다. 『그리스도신문』에 실린 대부분의 사진이 서구의 여러 풍물과 첨단 기술 분야를 소재로 한 것과 달리 한국의 문화유산을 소재로 담고 있어 19세기 초 서울의 모습과 주변 환경을 오늘에 전하고 있다.
「대한즉경도」는 1901년 9월 19일 『그리스도신문』에 목판 인쇄 방식으로 게재된 한국의 모습을 담은 다섯 장의 사진 연작이다. 모두가 1900년 경 한국의 여러가지 풍물 즉 가마를 메고 가는 장면, 관복을 입고 고목나무 옆에 기대 있는 무관의 모습, 어린 소년 행상, 농가 풍경 등을 촬영한 사진이었다.
대한즉경도 (大韓卽景圖)
「대한즉경도」는 1901년 9월 19일 『그리스도신문』에 목판 인쇄 방식으로 게재된 한국의 모습을 담은 다섯 장의 사진 연작이다. 모두가 1900년 경 한국의 여러가지 풍물 즉 가마를 메고 가는 장면, 관복을 입고 고목나무 옆에 기대 있는 무관의 모습, 어린 소년 행상, 농가 풍경 등을 촬영한 사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