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인화문"
검색결과 총 10건
신라토기는 고대국가 신라 영역에서 생산하여 소비한 일체의 토기이다. 대체로 3세기 후반부터 신라 멸망 때까지 생산·소비된 토기를 말한다. 3세기 후반에서 4세기 후반까지는 와질토기를 중심으로 연질·도질토기가 병존했고, 5세기 초부터 도질·연질토기만 생산되면서 전형적인 신라양식 토기가 성립되었다. 이후 낙동강 동안 지역으로 범위가 확대되며, 6세기 후반에는 크기가 작아지고 장식도 간략해졌다. 7세기 후반의 인화문 유행, 8세기 후반의 몸통이 긴 병·호 및 편호·편병·덧띠무늬병 유행을 거쳐 10세기에는 문양새김이 사라지고 고려 도기와 자기 형태로 계승되었다.
신라토기 (新羅土器)
신라토기는 고대국가 신라 영역에서 생산하여 소비한 일체의 토기이다. 대체로 3세기 후반부터 신라 멸망 때까지 생산·소비된 토기를 말한다. 3세기 후반에서 4세기 후반까지는 와질토기를 중심으로 연질·도질토기가 병존했고, 5세기 초부터 도질·연질토기만 생산되면서 전형적인 신라양식 토기가 성립되었다. 이후 낙동강 동안 지역으로 범위가 확대되며, 6세기 후반에는 크기가 작아지고 장식도 간략해졌다. 7세기 후반의 인화문 유행, 8세기 후반의 몸통이 긴 병·호 및 편호·편병·덧띠무늬병 유행을 거쳐 10세기에는 문양새김이 사라지고 고려 도기와 자기 형태로 계승되었다.
덕수궁 대한문은 서울시 덕수궁에 있는 조선 후기 다포식 우진각지붕 형태의 문이다. 1906년 동쪽에 있던 대안문을 수리하고 이름도 ‘대한문’으로 고쳐 정문으로 삼았다. 현판은 당시의 궁전대신 남정철이 썼다. 대한문은 경희궁 흥화문처럼 단층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우진각지붕이다. 우진각지붕은 네 추녀마루가 동마루에 몰려 붙은 지붕 형태를 말한다. 처마는 겹처마이며 용마루와 추녀마루가 있다. 용마루 끝에는 매 머리모양의 장식이 있고 추녀마루에는 용두와 잡상을 놓았다. 제자리에서 옮겨지면서 변형되고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쳤다.
덕수궁 대한문 (德壽宮 大漢門)
덕수궁 대한문은 서울시 덕수궁에 있는 조선 후기 다포식 우진각지붕 형태의 문이다. 1906년 동쪽에 있던 대안문을 수리하고 이름도 ‘대한문’으로 고쳐 정문으로 삼았다. 현판은 당시의 궁전대신 남정철이 썼다. 대한문은 경희궁 흥화문처럼 단층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우진각지붕이다. 우진각지붕은 네 추녀마루가 동마루에 몰려 붙은 지붕 형태를 말한다. 처마는 겹처마이며 용마루와 추녀마루가 있다. 용마루 끝에는 매 머리모양의 장식이 있고 추녀마루에는 용두와 잡상을 놓았다. 제자리에서 옮겨지면서 변형되고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쳤다.
서울특별시 관악구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토기를 굽던 가마터.
서울 남현동 요지 (서울 南峴洞 窯址)
서울특별시 관악구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토기를 굽던 가마터.
분청사기 인화문 장군은 15세기에 제작되었으며 술 등의 액체를 담는 데 사용한 분청사기이다. 2004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장군은 한자 표기로 장본이라고 하며, 술그릇을 지칭한다. 분청사기 인화문 장군은 몸통이 부풀어 오른 듯이 팽만한데 아래쪽이 편평하여 안정감이 있고, 위쪽 가운데에는 좁은 입이 붙어있다. 넓은 면을 툭툭 쳐서 만든 듯한 몸통은 질박한 느낌을 준다. 흙으로 만든 도장을 이용하여 찍는 인화기법으로 문양을 장식했다. 전면에 작은 점을 빼곡하게 채운 인화기법은 좁고 빈틈이 없는 치밀함으로 공예의장적인 면에서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다.
분청사기 인화문 장군 (粉靑沙器 印花文 獐本)
분청사기 인화문 장군은 15세기에 제작되었으며 술 등의 액체를 담는 데 사용한 분청사기이다. 2004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장군은 한자 표기로 장본이라고 하며, 술그릇을 지칭한다. 분청사기 인화문 장군은 몸통이 부풀어 오른 듯이 팽만한데 아래쪽이 편평하여 안정감이 있고, 위쪽 가운데에는 좁은 입이 붙어있다. 넓은 면을 툭툭 쳐서 만든 듯한 몸통은 질박한 느낌을 준다. 흙으로 만든 도장을 이용하여 찍는 인화기법으로 문양을 장식했다. 전면에 작은 점을 빼곡하게 채운 인화기법은 좁고 빈틈이 없는 치밀함으로 공예의장적인 면에서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다.
분청사기 인화 국화문 사이부태호는 15세기 왕실에서 태를 담아 묻었던 분청사기 태항아리이다. 2010년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동아대학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바깥 항아리와 속 항아리로 구성된 태항아리로 두 항아리 모두 표면에 인화 기법의 국화문을 주문양으로 하여 문양이 새겨져 있다. 바깥 항아리는 몸체가 풍만하고 속 항아리는 홀쭉한 편이다. 두 항아리 모두 어깨 부분에 고리형태의 4귀가 있고 뚜껑에는 꼭지가 달려 있다. 15세기 분청사기로 제작한 태항아리 유형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유물이다.
분청사기 인화 국화문 사이부태호 (粉靑沙器 印花 菊花文 四耳附胎壺)
분청사기 인화 국화문 사이부태호는 15세기 왕실에서 태를 담아 묻었던 분청사기 태항아리이다. 2010년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동아대학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바깥 항아리와 속 항아리로 구성된 태항아리로 두 항아리 모두 표면에 인화 기법의 국화문을 주문양으로 하여 문양이 새겨져 있다. 바깥 항아리는 몸체가 풍만하고 속 항아리는 홀쭉한 편이다. 두 항아리 모두 어깨 부분에 고리형태의 4귀가 있고 뚜껑에는 꼭지가 달려 있다. 15세기 분청사기로 제작한 태항아리 유형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유물이다.
경기도 여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여주 매룡리 고분군 (驪州 梅龍里 古墳群)
경기도 여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통일신라 시대의 도기 뼈 항아리.
녹유골호(부석제외함) (綠釉骨壺(附石製外函))
통일신라 시대의 도기 뼈 항아리.
고려 말에서 조선 초 사이에 제작된 청자 매병.
청자 상감 어룡문 매병 (靑磁 象嵌 魚龍文 梅甁)
고려 말에서 조선 초 사이에 제작된 청자 매병.
분청사기 상감 사각 묘지 및 분청사기 인화문 사각 편병은 1447년 사망한 숙부인 정씨의 분청사기묘지 및 묘지와 같은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분청사기이다. 상감 사각 묘지는 몸통이 세로방향으로 길쭉한 사각의 통형으로, 죽은 사람의 이름과 태어나고 죽은 날이 적혀있는 지문이 적혀 있다. 인화문 사각 편병은 몸통이 가로방향으로 긴 장방형으로, 윗면의 중앙에는 커다란 구연이 있다. 사각 묘지는 15세기 중엽의 자기제 묘지의 제작 양상을 보여준다. 또한 사각 편병은 인화기법 분청사기의 절정기를 가늠할 수 있는 자료로서 의의가 있다.
분청사기 상감 사각 묘지 및 분청사기 인화문 사각 편병 (粉靑沙器 象嵌 四角 墓誌 및 粉靑沙器 印花文 四角 扁甁)
분청사기 상감 사각 묘지 및 분청사기 인화문 사각 편병은 1447년 사망한 숙부인 정씨의 분청사기묘지 및 묘지와 같은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분청사기이다. 상감 사각 묘지는 몸통이 세로방향으로 길쭉한 사각의 통형으로, 죽은 사람의 이름과 태어나고 죽은 날이 적혀있는 지문이 적혀 있다. 인화문 사각 편병은 몸통이 가로방향으로 긴 장방형으로, 윗면의 중앙에는 커다란 구연이 있다. 사각 묘지는 15세기 중엽의 자기제 묘지의 제작 양상을 보여준다. 또한 사각 편병은 인화기법 분청사기의 절정기를 가늠할 수 있는 자료로서 의의가 있다.
도기 연유인화문 항아리 일괄은 통일신라시대 제작된 도기 연유인화문 항아리 2조이다. 기물 전체에 빼곡하게 인화문을 장식하고 황록색 연유를 입혀 만든 도기 항아리이다. 대호와 소호가 각각 뚜껑을 갖추어 모두 4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2조 모두 8세기 통일신라 연유도기의 기술적 완성도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며 조형적 · 예술적으로 가치가 높다. 2019년 6월 26일 보물로 지정되었고,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도기 연유인화문 항아리 일괄 (陶器 鉛釉印花文 缸아리 一括)
도기 연유인화문 항아리 일괄은 통일신라시대 제작된 도기 연유인화문 항아리 2조이다. 기물 전체에 빼곡하게 인화문을 장식하고 황록색 연유를 입혀 만든 도기 항아리이다. 대호와 소호가 각각 뚜껑을 갖추어 모두 4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2조 모두 8세기 통일신라 연유도기의 기술적 완성도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며 조형적 · 예술적으로 가치가 높다. 2019년 6월 26일 보물로 지정되었고,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