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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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못 설화」는 인색한 장자가 시주받으러 온 스님에게 쇠똥을 담아 주자, 며느리가 시아버지 몰래 스님에게 제대로 시주하고 장자의 집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피해 스님의 뒤를 따르다가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금기를 어기는 바람에 돌이 되었다는 내용의 이야기다. 이와 유사한 서사적 구성을 보여주는 이야기가 세계 여러 문화권에서 전승되고 있다. 한국에도 전국 여러 지역에서 지명, 혹은 지형 유래담으로 연행·전승되고 있는 대표적인 「광포 전설」이다.
장자못 설화 (장자못 說話)
「장자못 설화」는 인색한 장자가 시주받으러 온 스님에게 쇠똥을 담아 주자, 며느리가 시아버지 몰래 스님에게 제대로 시주하고 장자의 집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피해 스님의 뒤를 따르다가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금기를 어기는 바람에 돌이 되었다는 내용의 이야기다. 이와 유사한 서사적 구성을 보여주는 이야기가 세계 여러 문화권에서 전승되고 있다. 한국에도 전국 여러 지역에서 지명, 혹은 지형 유래담으로 연행·전승되고 있는 대표적인 「광포 전설」이다.
전라남도 나주시 남평읍에 있는 남평문씨의 시조 문다성 관련 바위.
나주 문바위 (羅州 文바위)
전라남도 나주시 남평읍에 있는 남평문씨의 시조 문다성 관련 바위.
고려 후기에, 추밀원사, 지문하성사, 참지정사 등을 역임한 문신.
김련 (金鍊)
고려 후기에, 추밀원사, 지문하성사, 참지정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일정한 친족관계가 있는 사람 사이에 한 쪽이 사망하거나 법률상의 원인이 발생하였을 때 재산적 또는 친족적 권리와 의무를 포괄적으로 계승하는 제도.
상속 (相續)
일정한 친족관계가 있는 사람 사이에 한 쪽이 사망하거나 법률상의 원인이 발생하였을 때 재산적 또는 친족적 권리와 의무를 포괄적으로 계승하는 제도.
전라도 지역에서 죽은 이의 영혼을 저승으로 인도하기 위해 행하는 무속의례. 천도굿.
씻김굿
전라도 지역에서 죽은 이의 영혼을 저승으로 인도하기 위해 행하는 무속의례. 천도굿.
「이공본풀이」는 제주특별자치도 굿에서 서천 꽃밭 주화관장신의 내력을 풀이하는 서사무가이다. 「이공본풀이」의 구연이 중심이 되는 제차의 이름이기도 하다. 유사한 내용의 이야기가 불교설화와 고전소설, 다른 지역의 무가에서도 발견된다. 이 본풀이에서 서천 꽃밭은 사람을 살리는 환생꽃뿐만 아니라 사람을 죽이고 징벌하는 악심꽃이 피어 있는 공간으로 상상되는데, 이는 다른 서사물에서는 보기 어려운 제주특별자치도 신화의 특징적 면모이다.
이공본풀이 (이공本풀이)
「이공본풀이」는 제주특별자치도 굿에서 서천 꽃밭 주화관장신의 내력을 풀이하는 서사무가이다. 「이공본풀이」의 구연이 중심이 되는 제차의 이름이기도 하다. 유사한 내용의 이야기가 불교설화와 고전소설, 다른 지역의 무가에서도 발견된다. 이 본풀이에서 서천 꽃밭은 사람을 살리는 환생꽃뿐만 아니라 사람을 죽이고 징벌하는 악심꽃이 피어 있는 공간으로 상상되는데, 이는 다른 서사물에서는 보기 어려운 제주특별자치도 신화의 특징적 면모이다.
정종은 고려 전기 제10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1034~1046년이며, 동복형인 덕종의 서거로 왕위에 올랐다. 즉위년에 팔관회를 열어 송나라 등 외국 상인들에게도 예식을 관람시키는 상례를 만들었다. 변경의 방위를 위해 힘썼고, 동서대비원을 수리해 가난하고 병든 자들에게 의복과 음식을 주었다. 1037년 거란의 침입을 받아 거란의 연호를 사용하고 책봉을 받았지만 이후 북방 경비에 주력해 1044년 덕종의 유업인 천리장성을 완성했다. 노비종모법과 장자상속법을 제정했다. 병이 위독하자 아우 왕휘(뒤의 문종)로 하여금 국정을 맡게 했다.
정종 (靖宗)
정종은 고려 전기 제10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1034~1046년이며, 동복형인 덕종의 서거로 왕위에 올랐다. 즉위년에 팔관회를 열어 송나라 등 외국 상인들에게도 예식을 관람시키는 상례를 만들었다. 변경의 방위를 위해 힘썼고, 동서대비원을 수리해 가난하고 병든 자들에게 의복과 음식을 주었다. 1037년 거란의 침입을 받아 거란의 연호를 사용하고 책봉을 받았지만 이후 북방 경비에 주력해 1044년 덕종의 유업인 천리장성을 완성했다. 노비종모법과 장자상속법을 제정했다. 병이 위독하자 아우 왕휘(뒤의 문종)로 하여금 국정을 맡게 했다.
조선 후기에, 『남당집』, 『주자언론동이고』 등을 저술하였으며, 호락논쟁에서 호론을 주장한 대표적인 학자.
한원진 (韓元震)
조선 후기에, 『남당집』, 『주자언론동이고』 등을 저술하였으며, 호락논쟁에서 호론을 주장한 대표적인 학자.
기해예송은 1659년(현종 즉위) 효종이 죽자 계모였던 자의대비가 입을 상복의 종류를 두고 일어났던 서인과 남인의 예절에 관한 논쟁이다. 이 논쟁은 효종이 인조의 맏아들이 아닌 둘째 아들이었기 때문에 발생하였다. 서인은 효종을 둘째로 인식하여 일 년을 입는 기년복을 주장하였고, 남인은 효종이 왕위를 계승했기 때문에 장자에 해당한다고 하여 삼년복을 주장하였다. 논의 끝에 기년복이 채택되었는데, 남인 윤선도가 서인들의 기년설을 ‘효종을 낮추고 종통과 적통을 이분화’한 것이라고 공격하였다. 이에 서인들이 윤선도를 탄핵하고 예송에 가담한 남인들을 조정에서 축출하고 정권을 독점하였다.
기해예송 (己亥禮訟)
기해예송은 1659년(현종 즉위) 효종이 죽자 계모였던 자의대비가 입을 상복의 종류를 두고 일어났던 서인과 남인의 예절에 관한 논쟁이다. 이 논쟁은 효종이 인조의 맏아들이 아닌 둘째 아들이었기 때문에 발생하였다. 서인은 효종을 둘째로 인식하여 일 년을 입는 기년복을 주장하였고, 남인은 효종이 왕위를 계승했기 때문에 장자에 해당한다고 하여 삼년복을 주장하였다. 논의 끝에 기년복이 채택되었는데, 남인 윤선도가 서인들의 기년설을 ‘효종을 낮추고 종통과 적통을 이분화’한 것이라고 공격하였다. 이에 서인들이 윤선도를 탄핵하고 예송에 가담한 남인들을 조정에서 축출하고 정권을 독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