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전쟁"
검색결과 총 182건
645년(보장왕 4) 고구려가 당나라 군대와 안시성에서 벌인 공방전.
안시성전투 (安市城戰鬪)
645년(보장왕 4) 고구려가 당나라 군대와 안시성에서 벌인 공방전.
의병은 조선 이후부터 일제강점기 이전까지 이민족의 침략에 저항한 자발적인 백성의 군대이다. 이민족의 침략에 대응하여 자발적으로 조직하여 활동하였으며, 우리나라에서는 크게 임진왜란, 병자호란, 한말의 1, 2차 의병으로 구분할 수 있다. 각 시기에 활동한 의병은 활동 목표, 방향에 따라서 다소 성격을 달리한다. 임진왜란 때의 의병은 향병과 근왕병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이때의 의병은 일본군에 대한 저항과 국왕의 호위라는 명분에 따라 창의(倡義)하여 활동하였다. 병자호란 때의 의병은 근왕병의 성격이 강하였다.
의병 (義兵)
의병은 조선 이후부터 일제강점기 이전까지 이민족의 침략에 저항한 자발적인 백성의 군대이다. 이민족의 침략에 대응하여 자발적으로 조직하여 활동하였으며, 우리나라에서는 크게 임진왜란, 병자호란, 한말의 1, 2차 의병으로 구분할 수 있다. 각 시기에 활동한 의병은 활동 목표, 방향에 따라서 다소 성격을 달리한다. 임진왜란 때의 의병은 향병과 근왕병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이때의 의병은 일본군에 대한 저항과 국왕의 호위라는 명분에 따라 창의(倡義)하여 활동하였다. 병자호란 때의 의병은 근왕병의 성격이 강하였다.
병인양요는 1866년(고종 3) 흥선대원군의 천주교 탄압에 대한 보복으로 프랑스군이 강화도에 침입한 사건이다. 1866년 초 대원군은 천주교 금압령을 내려 프랑스 신부와 조선인 천주교신자 수천 명을 학살했다. 이때 프랑스 선교사 12명 중 9명이 처형되어 한국과 프랑스의 군사적 충돌로 이어졌다. 1차 원정에서 군사정보를 수집한 프랑스 군대는 2차 원정에서 막강한 화력을 앞세워 강화부를 점령했다. 이에 조선군은 기병작전으로 강화도를 수복할 계획을 세우고 정족산성에서 프랑스 군대를 격퇴했다. 우리 역사상 최초로 서구 제국주의 침략세력을 격파한 전투이다.
병인양요 (丙寅洋擾)
병인양요는 1866년(고종 3) 흥선대원군의 천주교 탄압에 대한 보복으로 프랑스군이 강화도에 침입한 사건이다. 1866년 초 대원군은 천주교 금압령을 내려 프랑스 신부와 조선인 천주교신자 수천 명을 학살했다. 이때 프랑스 선교사 12명 중 9명이 처형되어 한국과 프랑스의 군사적 충돌로 이어졌다. 1차 원정에서 군사정보를 수집한 프랑스 군대는 2차 원정에서 막강한 화력을 앞세워 강화부를 점령했다. 이에 조선군은 기병작전으로 강화도를 수복할 계획을 세우고 정족산성에서 프랑스 군대를 격퇴했다. 우리 역사상 최초로 서구 제국주의 침략세력을 격파한 전투이다.
660년 황산벌에서 있었던 백제군과 신라군 사이의 큰 싸움.
황산벌전투 (黃山伐戰鬪)
660년 황산벌에서 있었던 백제군과 신라군 사이의 큰 싸움.
김홍일은 일제강점기 1·8 일왕저격, 4·29 상해의거 당시의 독립운동가이다. 군인이자 정치인이다. 1898년에 태어나 1980년에 사망했다. 신천경신학교 교사 재직 중 항일단체 가담 혐의로 심한 고문을 받고 풀려난 뒤 중국으로 망명했다. 1920년 중국 육군강무학교를 졸업하고 한국독립군에 가담하여 항일활동을 벌였다. 김구의 요청으로 1932년 이봉창의 1·8 일왕저격 및 윤봉길의 4·29 상해의거용 폭탄을 제작했다. 해방 후 귀국하여 육군사관학교 교장으로서 한국군 초기 설립에 공을 세웠고, 이후 국회의원, 정당 당수 등 정치가로 활동했다.
김홍일 (金弘壹)
김홍일은 일제강점기 1·8 일왕저격, 4·29 상해의거 당시의 독립운동가이다. 군인이자 정치인이다. 1898년에 태어나 1980년에 사망했다. 신천경신학교 교사 재직 중 항일단체 가담 혐의로 심한 고문을 받고 풀려난 뒤 중국으로 망명했다. 1920년 중국 육군강무학교를 졸업하고 한국독립군에 가담하여 항일활동을 벌였다. 김구의 요청으로 1932년 이봉창의 1·8 일왕저격 및 윤봉길의 4·29 상해의거용 폭탄을 제작했다. 해방 후 귀국하여 육군사관학교 교장으로서 한국군 초기 설립에 공을 세웠고, 이후 국회의원, 정당 당수 등 정치가로 활동했다.
일제가 1938년 조선인 학생, 여성과 농촌 노동력을 동원하기 위해 조직한 단체.
보국대 (報國隊)
일제가 1938년 조선인 학생, 여성과 농촌 노동력을 동원하기 위해 조직한 단체.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국군 수도사단의 별칭.
맹호부대 (猛虎部隊)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국군 수도사단의 별칭.
1938년 4월에 일제가 인적·물적 자원의 총동원을 위해 제정·공포한 전시통제의 기본법.
국가총동원법 (國家總動員法)
1938년 4월에 일제가 인적·물적 자원의 총동원을 위해 제정·공포한 전시통제의 기본법.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통일을 이루겠다는 이승만 정권의 통일론. 무력북진통일론.
북진통일론 (北進統一論)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통일을 이루겠다는 이승만 정권의 통일론. 무력북진통일론.
전후문학은 한국전쟁이 가져온 처참한 상황과 정신적 상처와 우울 등을 인간 존재의 부조리 측면에서 파악하고 형상화한 문학이다. 한국전쟁이라는 주제를 이념적 차원에서 전유하려는 기성 작가들에 대항해, 자신의 생존을 위해 타인을 죽이는 인간 존재의 부조리함과 세계에 대한 깊은 환멸을 담아내고자 했다. 1950년대 중반 전후세대 작가와 시인들의 작품에서 시작되었다. 전후문학은 근대 이후 한국에서 이루어진 근대적 기획들을 근본적으로 해체하고 또 다른 윤리의 필요성을 적극 환기했는데, 이들의 성과를 토대로 1960년대에 4·19세대가 또 다른 근대적 주체와 윤리를 모색해 나갔다.
전후문학 (戰後文學)
전후문학은 한국전쟁이 가져온 처참한 상황과 정신적 상처와 우울 등을 인간 존재의 부조리 측면에서 파악하고 형상화한 문학이다. 한국전쟁이라는 주제를 이념적 차원에서 전유하려는 기성 작가들에 대항해, 자신의 생존을 위해 타인을 죽이는 인간 존재의 부조리함과 세계에 대한 깊은 환멸을 담아내고자 했다. 1950년대 중반 전후세대 작가와 시인들의 작품에서 시작되었다. 전후문학은 근대 이후 한국에서 이루어진 근대적 기획들을 근본적으로 해체하고 또 다른 윤리의 필요성을 적극 환기했는데, 이들의 성과를 토대로 1960년대에 4·19세대가 또 다른 근대적 주체와 윤리를 모색해 나갔다.
우금치전투는 1894년 11월 동학농민군이 공주의 우금치에서 관군 및 일본군과 치른 전투이다. 삼례에서 제2차 기포한 전봉준 등 남접과 보은에 집결한 손병희 등 북접이 협력하여, 충청감영 소재지이며 서울로 올라가는 길목에 위치한 공주를 공격하기로 하였다. 동학농민군은 부여와 논산 방면에서 협공한다는 작전 계획을 세우고 공격하였다. 그러나 대부분 죽창으로 무장한 동학농민군은 우세한 화력을 가진 관군과 일본군의 견고한 수비를 돌파하지 못하고 참패하였다. 제2차 동학농민전쟁의 승패를 결정지은 전투로 평가되고 있다.
우금치전투 (牛金峙戰鬪)
우금치전투는 1894년 11월 동학농민군이 공주의 우금치에서 관군 및 일본군과 치른 전투이다. 삼례에서 제2차 기포한 전봉준 등 남접과 보은에 집결한 손병희 등 북접이 협력하여, 충청감영 소재지이며 서울로 올라가는 길목에 위치한 공주를 공격하기로 하였다. 동학농민군은 부여와 논산 방면에서 협공한다는 작전 계획을 세우고 공격하였다. 그러나 대부분 죽창으로 무장한 동학농민군은 우세한 화력을 가진 관군과 일본군의 견고한 수비를 돌파하지 못하고 참패하였다. 제2차 동학농민전쟁의 승패를 결정지은 전투로 평가되고 있다.
포츠머스 조약은 1905년 9월에 러일전쟁을 마무리하기 위해 미국 포츠머스에서 일본과 러시아 간에 체결된 강화조약이다. 러일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막대한 재정 부담을 안게 된 일본과 계속 패전하고 있는 러시아가 미국의 중재로 15차례 회담 끝에 체결하였다. 한국에 대한 일본의 자유처분권을 확보하고, 사할린의 남쪽 부분을 할양받는 등 일본의 승리를 확인하는 5개 사항에 합의하였다. 미국과 가쓰라-테프트 비밀협정을 체결한 일본은 영국과 제2차 영일동맹을 체결하는 등 대한제국에 대한 독점적 지배를 안정적으로 확약받게 되었다.
포츠머스 조약 (Portsmouth 條約)
포츠머스 조약은 1905년 9월에 러일전쟁을 마무리하기 위해 미국 포츠머스에서 일본과 러시아 간에 체결된 강화조약이다. 러일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막대한 재정 부담을 안게 된 일본과 계속 패전하고 있는 러시아가 미국의 중재로 15차례 회담 끝에 체결하였다. 한국에 대한 일본의 자유처분권을 확보하고, 사할린의 남쪽 부분을 할양받는 등 일본의 승리를 확인하는 5개 사항에 합의하였다. 미국과 가쓰라-테프트 비밀협정을 체결한 일본은 영국과 제2차 영일동맹을 체결하는 등 대한제국에 대한 독점적 지배를 안정적으로 확약받게 되었다.
중추원은 1894년에 설립되어 일제강점기까지 존속하였으며, 한일합병 전에는 초기 의회와 같은 역할을 하였고 일제 강점기에는 조선총독의 자문 역할을 한 기관이다. 1894년, 갑오개혁기에 정치개혁과 관제개혁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관리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대한제국기에는 독립협회, 만만공동회의 활약에 힘입어 국정에 민의를 반영하는 의회적 성격을 띠었으며, 한일병합 후에는 조선총독의 자문기관으로 변화하였다. 이 외에 구관습을 조사하는 업무를 하였다. 문화정치기에 민심수습책의 일환으로 중추원에 지역참의를 설치하였다.
중추원 (中樞院)
중추원은 1894년에 설립되어 일제강점기까지 존속하였으며, 한일합병 전에는 초기 의회와 같은 역할을 하였고 일제 강점기에는 조선총독의 자문 역할을 한 기관이다. 1894년, 갑오개혁기에 정치개혁과 관제개혁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관리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대한제국기에는 독립협회, 만만공동회의 활약에 힘입어 국정에 민의를 반영하는 의회적 성격을 띠었으며, 한일병합 후에는 조선총독의 자문기관으로 변화하였다. 이 외에 구관습을 조사하는 업무를 하였다. 문화정치기에 민심수습책의 일환으로 중추원에 지역참의를 설치하였다.
1894년 3월 28일 김옥균이 상해(上海)에서 홍종우(洪鍾宇)에 의해 저격, 피살된 사건.
김옥균 암살사건 (金玉均 暗殺事件)
1894년 3월 28일 김옥균이 상해(上海)에서 홍종우(洪鍾宇)에 의해 저격, 피살된 사건.
유럽 동남부 발칸반도의 남단에 있는 공화국.
그리스 (Greece)
유럽 동남부 발칸반도의 남단에 있는 공화국.
1894년(고종 31) 동학농민군이 전라감영군을 맞아 크게 승리한 전투.
황토현전투 (黃土峴戰鬪)
1894년(고종 31) 동학농민군이 전라감영군을 맞아 크게 승리한 전투.
고종은 고려 후기의 제23대 왕이다. 무인 정권하에서 재위하였으며, 재위 중인 1231년(고종 18)부터 몽골군의 침입이 시작되었고 이듬해 1232년(고종 19)에 강화도로 도읍지를 옮겨 항쟁하였다. 1259년(고종 46)까지 전란이 지속되어 개경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강화도에서 숨을 거두었다. 장기적인 전란, 천도, 무인 정권이라는 특수한 정치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고려의 역대 임금 가운데 가장 오랜 기간 재위한 임금이다.
고종 (高宗)
고종은 고려 후기의 제23대 왕이다. 무인 정권하에서 재위하였으며, 재위 중인 1231년(고종 18)부터 몽골군의 침입이 시작되었고 이듬해 1232년(고종 19)에 강화도로 도읍지를 옮겨 항쟁하였다. 1259년(고종 46)까지 전란이 지속되어 개경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강화도에서 숨을 거두었다. 장기적인 전란, 천도, 무인 정권이라는 특수한 정치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고려의 역대 임금 가운데 가장 오랜 기간 재위한 임금이다.
한국전쟁 후 월북하지 못하고 빨치산으로 남아있던 지리산지역의 공비들을 토벌하기 위한 군·경 합동작전.
지리산 공비토벌작전 (智異山 共匪討伐作戰)
한국전쟁 후 월북하지 못하고 빨치산으로 남아있던 지리산지역의 공비들을 토벌하기 위한 군·경 합동작전.
일제강점기 조선주택영단을 통해 건설된 주택형태.
영단주택 (營團住宅)
일제강점기 조선주택영단을 통해 건설된 주택형태.
기벌포전투는 676년(문무왕 16) 11월에 기벌포에서 신라의 수군이 당나라 수군을 크게 깨뜨린 전투이다. 기벌포는 서해 재해권이 걸린 요충지로 다양한 설이 있으나 그 위치를 금강 하구로 보고 있다. 이 전투는 백제·고구려를 멸망시킨 신라, 당나라의 군사동맹 이후 당나라가 신라를 배신하여 일어난 대당전쟁의 일환이었다. 매소성 전투에서 패배한 당나라는 기벌포를 공격하였고 22번의 전투 끝에 신라는 당나라 수군 4천여 명을 죽이고 승리하였다. 신라가 대당전쟁을 승리할 수 있는 결정적 계기이자 서해상의 재해권을 완전히 장악하는 계기가 되었다.
기벌포전투 (伎伐浦戰鬪)
기벌포전투는 676년(문무왕 16) 11월에 기벌포에서 신라의 수군이 당나라 수군을 크게 깨뜨린 전투이다. 기벌포는 서해 재해권이 걸린 요충지로 다양한 설이 있으나 그 위치를 금강 하구로 보고 있다. 이 전투는 백제·고구려를 멸망시킨 신라, 당나라의 군사동맹 이후 당나라가 신라를 배신하여 일어난 대당전쟁의 일환이었다. 매소성 전투에서 패배한 당나라는 기벌포를 공격하였고 22번의 전투 끝에 신라는 당나라 수군 4천여 명을 죽이고 승리하였다. 신라가 대당전쟁을 승리할 수 있는 결정적 계기이자 서해상의 재해권을 완전히 장악하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