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정제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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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이승은 조선 후기 공조좌랑, 영평현령 등을 지낸 문신이다. 가난한 집안에서 유복자로 태어났으나, 학문에 매진하여 윤증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성리설에 뛰어나 낙론 계열을 이끌었 김창협과 양명학을 대표하는 정제두 등 당대의 뛰어난 학자들과 논쟁하였다.
민이승 (閔以升)
민이승은 조선 후기 공조좌랑, 영평현령 등을 지낸 문신이다. 가난한 집안에서 유복자로 태어났으나, 학문에 매진하여 윤증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성리설에 뛰어나 낙론 계열을 이끌었 김창협과 양명학을 대표하는 정제두 등 당대의 뛰어난 학자들과 논쟁하였다.
강화학파는 조선 후기 학자 정제두가 강화도에서 양명학을 중심으로 형성한 유교학파이다. 조선시대 문학, 예술 등 학문사에서 독특하고 창의적인 유산을 남겼다. 특히 이 학파는 양명학을 비판적으로 수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고증학의 방법론을 주체적으로 받아들였고, 훈민정음·국어학·국사학·서법·문자학·문헌학 분야에서 뛰어난 논저들을 남겼다.
강화학파 (江華學派)
강화학파는 조선 후기 학자 정제두가 강화도에서 양명학을 중심으로 형성한 유교학파이다. 조선시대 문학, 예술 등 학문사에서 독특하고 창의적인 유산을 남겼다. 특히 이 학파는 양명학을 비판적으로 수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고증학의 방법론을 주체적으로 받아들였고, 훈민정음·국어학·국사학·서법·문자학·문헌학 분야에서 뛰어난 논저들을 남겼다.
박세채(1631~1695)는 조선 후기 대사헌, 이조판서, 우참찬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자는 화숙, 호는 현석, 남계이며, 시호는 문순이다. 1659년 예송논쟁이 벌어지자 송시열 등과 함께 서인의 기년설을 찬성하였다. 1674년 2차 예송논쟁에서 서인이 패하자 파직당하고 유배당했다. 1680년 경신환국으로 서인이 재집권하자 관직에 복귀하였다. 1684년 회니 시비로 인해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분당하자 소론의 편에 섰다. 1694년 갑술환국 때 복귀하여 소론의 영수가 되었다. 이이, 성혼의 문묘 종사를 확정하고, 김육의 대동법을 확산시켰다.
박세채 (朴世采)
박세채(1631~1695)는 조선 후기 대사헌, 이조판서, 우참찬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자는 화숙, 호는 현석, 남계이며, 시호는 문순이다. 1659년 예송논쟁이 벌어지자 송시열 등과 함께 서인의 기년설을 찬성하였다. 1674년 2차 예송논쟁에서 서인이 패하자 파직당하고 유배당했다. 1680년 경신환국으로 서인이 재집권하자 관직에 복귀하였다. 1684년 회니 시비로 인해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분당하자 소론의 편에 섰다. 1694년 갑술환국 때 복귀하여 소론의 영수가 되었다. 이이, 성혼의 문묘 종사를 확정하고, 김육의 대동법을 확산시켰다.
조선 후기에, 공조참판, 형조참판, 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한 문신.
구택규 (具宅奎)
조선 후기에, 공조참판, 형조참판, 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춘추좌씨전례』, 『역차고』, 『상차고』 등을 저술한 학자.
신작 (申綽)
조선 후기에, 『춘추좌씨전례』, 『역차고』, 『상차고』 등을 저술한 학자.
조선후기 예조판서, 평안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서화가.
윤순 (尹淳)
조선후기 예조판서, 평안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서화가.
조선 후기에, 동지돈녕부사, 한성부판윤, 지의금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경호 (李景祜)
조선 후기에, 동지돈녕부사, 한성부판윤, 지의금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후기 「의주왕문답」을 저술한 문인. 학자.
이광신 (李匡臣)
조선후기 「의주왕문답」을 저술한 문인. 학자.
조선후기 『초원유고』, 『초원담노』 등을 저술한 문인. 학자.
이충익 (李忠翊)
조선후기 『초원유고』, 『초원담노』 등을 저술한 문인. 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