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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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분은 사람의 시신을 매장한 시설물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후기 구석기시대에 인간의 지능 발달과 함께 무덤의 기념물화가 시작되면서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양한 형식의 무덤들이 만들어졌다. 무덤 중에서도 고대국가 형성 이후의 무덤을 고분이라 하여 역사를 연구하고 재구성하는 학술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고분에 대한 연구는 묘지와 그 분포, 봉토 및 묘역 시설, 매장주체시설 및 매장법, 껴묻거리(부장품) 등 4가지 요소로 나누어 진행되고 있다.
고분 (古墳)
고분은 사람의 시신을 매장한 시설물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후기 구석기시대에 인간의 지능 발달과 함께 무덤의 기념물화가 시작되면서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양한 형식의 무덤들이 만들어졌다. 무덤 중에서도 고대국가 형성 이후의 무덤을 고분이라 하여 역사를 연구하고 재구성하는 학술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고분에 대한 연구는 묘지와 그 분포, 봉토 및 묘역 시설, 매장주체시설 및 매장법, 껴묻거리(부장품) 등 4가지 요소로 나누어 진행되고 있다.
전방후원분은 원형의 분구에 방형 혹은 삼각형의 단상부가 합쳐진 모양의 큰 무덤이다. 형태가 장고와 유사해서 장고분·장고형 고분이라고도 한다. 이 무덤양식은 일본열도 고유의 무덤 형식으로 전방후원분이라는 용어도 일본에서 유래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전방후원분은 일본열도의 그것을 수용한 것이며, 한반도의 서남부 전라남도에서 주로 확인된다. 매장시설은 후원부에 설치된 앞트기식 돌방·굴식 돌방이며, 축조 시기는 5세기 후엽부터 6세기 전엽까지의 시기에 국한된다. 이 지역은 한반도 문물이 일본에 전파되는 경로로서 일본 고분 문화의 일부가 자연스럽게 유입된 것이다.
전방후원분 (前方後圓墳)
전방후원분은 원형의 분구에 방형 혹은 삼각형의 단상부가 합쳐진 모양의 큰 무덤이다. 형태가 장고와 유사해서 장고분·장고형 고분이라고도 한다. 이 무덤양식은 일본열도 고유의 무덤 형식으로 전방후원분이라는 용어도 일본에서 유래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전방후원분은 일본열도의 그것을 수용한 것이며, 한반도의 서남부 전라남도에서 주로 확인된다. 매장시설은 후원부에 설치된 앞트기식 돌방·굴식 돌방이며, 축조 시기는 5세기 후엽부터 6세기 전엽까지의 시기에 국한된다. 이 지역은 한반도 문물이 일본에 전파되는 경로로서 일본 고분 문화의 일부가 자연스럽게 유입된 것이다.
방형으로 에워싸는 주구를 돌리고 그 안에 매장시설을 설치하는 무덤양식.
방형주구묘 (方形周構墓)
방형으로 에워싸는 주구를 돌리고 그 안에 매장시설을 설치하는 무덤양식.
전라남도 나주시 반남면에 있는 초기국가시대 마한의 독널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나주 신촌리 고분군 (羅州 新村里 古墳群)
전라남도 나주시 반남면에 있는 초기국가시대 마한의 독널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봉분이나은 분구가 방추형 또는 방대형으로 축조된 무덤양식.
방형분 (方形墳)
봉분이나은 분구가 방추형 또는 방대형으로 축조된 무덤양식.
귀때가 달려 있는 신석기·원삼국시대와 백제시대의 토기.
귀때토기 (귀때土器)
귀때가 달려 있는 신석기·원삼국시대와 백제시대의 토기.
오산수청동유적(烏山水淸洞遺蹟)은 경기도 오산시 수청동 일대에 분포하는 초기국가시대부터 삼국시대에 걸쳐 조성된 백제 지역 지방 세력의 분묘유적이다. 지역 집단의 장례 양식과 최고 지배층의 유물 부장 양상을 나타내고 있으며, 생활유적으로 인근 오산가수동유적이 확인되어 화성길성리토성을 중심으로 자리한 지역 집단 중 하나로 이해된다. 또한, 왕성 주변에서 사치품으로 유입되던 중국 자기 중 넓은입청자항아리가 위세품으로 확인되어 오산수청동유적 일대가 백제 중앙에 의해 관리되던 지방의 요충지였음을 알 수 있다.
오산 수청동 유적 (烏山 水淸洞 遺蹟)
오산수청동유적(烏山水淸洞遺蹟)은 경기도 오산시 수청동 일대에 분포하는 초기국가시대부터 삼국시대에 걸쳐 조성된 백제 지역 지방 세력의 분묘유적이다. 지역 집단의 장례 양식과 최고 지배층의 유물 부장 양상을 나타내고 있으며, 생활유적으로 인근 오산가수동유적이 확인되어 화성길성리토성을 중심으로 자리한 지역 집단 중 하나로 이해된다. 또한, 왕성 주변에서 사치품으로 유입되던 중국 자기 중 넓은입청자항아리가 위세품으로 확인되어 오산수청동유적 일대가 백제 중앙에 의해 관리되던 지방의 요충지였음을 알 수 있다.
방형의 수혈주거지 둘레에 원형 또는 타원형의 도랑을 돌린 형식의 주거지 유적.
연암 동형 주거지 (燕巖 洞形 住居址)
방형의 수혈주거지 둘레에 원형 또는 타원형의 도랑을 돌린 형식의 주거지 유적.
공주 장원리 유적은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이후 집터와 도랑움무덤·건물터 관련 생활유적이다. 신석기시대의 유물퇴적층과 청동기시대 생활유적, 원삼국시대 고분, 조선시대 관련 유구가 확인되었다. 그중 중심을 이룬 유구는 주변에 도랑을 두른 원삼국시대의 도랑움무덤이다. 이 무덤은 3세기 전·후반 무렵 일정한 묘역에 상호 중복 없이 조성되었다. 현재 도랑의 일부가 유실되어 활모양으로 남아 있는 것이 많지만 정상부에서는 모서리를 둥글게 처리한 방형이 확인된다. 이 움무덤의 분포를 통해 마한 각지에 존재했을 소국의 영역에 대한 이해가 가능하다.
공주 장원리 유적 (公州 長院里 遺蹟)
공주 장원리 유적은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이후 집터와 도랑움무덤·건물터 관련 생활유적이다. 신석기시대의 유물퇴적층과 청동기시대 생활유적, 원삼국시대 고분, 조선시대 관련 유구가 확인되었다. 그중 중심을 이룬 유구는 주변에 도랑을 두른 원삼국시대의 도랑움무덤이다. 이 무덤은 3세기 전·후반 무렵 일정한 묘역에 상호 중복 없이 조성되었다. 현재 도랑의 일부가 유실되어 활모양으로 남아 있는 것이 많지만 정상부에서는 모서리를 둥글게 처리한 방형이 확인된다. 이 움무덤의 분포를 통해 마한 각지에 존재했을 소국의 영역에 대한 이해가 가능하다.
충청남도 공주시 장기면에 있는 철기시대 이후 널무덤·독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공주 하봉리 유적 (公州 下鳳里 遺蹟)
충청남도 공주시 장기면에 있는 철기시대 이후 널무덤·독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서천당정리유적(舒川堂丁里遺蹟)은 충청남도 서천군 종천면에 있는 청동기시대부터 원삼국시대 사이의 복합유적이다. 송국리식 집터와 휴암리식 집터 등 청동기시대 유구 17기와 원삼국시대 주구묘 23기가 확인되었다. 청동기시대의 송국리식 집터 10기와 휴암리식 집터 4기가 확인되었으며, 원삼국시대 주구묘에서는 대형 옹관 조각과 이음독무덤이 출토되었다.
서천 당정리 유적 (舒川 堂丁里 遺蹟)
서천당정리유적(舒川堂丁里遺蹟)은 충청남도 서천군 종천면에 있는 청동기시대부터 원삼국시대 사이의 복합유적이다. 송국리식 집터와 휴암리식 집터 등 청동기시대 유구 17기와 원삼국시대 주구묘 23기가 확인되었다. 청동기시대의 송국리식 집터 10기와 휴암리식 집터 4기가 확인되었으며, 원삼국시대 주구묘에서는 대형 옹관 조각과 이음독무덤이 출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