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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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진산군(현 충청남도 금산군 진보면)의 연혁·인문지리·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
진산군읍지 (珍山郡邑誌)
전라도 진산군(현 충청남도 금산군 진보면)의 연혁·인문지리·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 읍내리에 있는 공립초등학교.
진산초등학교 (珍山初等學校)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 읍내리에 있는 공립초등학교.
김도규는 보성 출신으로 대한제국기 전라남도 보성일대에서 활약한 의병장이다. 1908년 안규홍 의진에 합류하여 부장으로도 활약하였다. 보성의 박곡 전투, 병치 전투, 진산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고, 안규홍이 체포되고 의병이 해산되자 이름을 숨기고 은신하였다.
김도규 (金道珪)
김도규는 보성 출신으로 대한제국기 전라남도 보성일대에서 활약한 의병장이다. 1908년 안규홍 의진에 합류하여 부장으로도 활약하였다. 보성의 박곡 전투, 병치 전투, 진산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고, 안규홍이 체포되고 의병이 해산되자 이름을 숨기고 은신하였다.
신해박해는 1791년(정조 15) 전라도 진산에서 조상 제사 문제로 발생한 박해로, 신해사옥 또는 진산사건이라고도 한다. 진산의 윤지충이 모친의 상을 당해 외종형 권상연과 함께 신주를 불태우고 제사를 지내지 않아 체포되었고, 신앙을 증거하며 순교했다. 이로 인해 서울과 충청도에서도 박해가 일어났으나, 대부분의 신자들은 배교하고 풀려났다. 이 박해를 계기로 양반 신자들이 교회를 떠나고 중인 이하 신분층이 그들을 대신하게 되었으며, 천주교와 서양 과학기술에 대한 배척이 심화되었다.
신해박해 (辛亥迫害)
신해박해는 1791년(정조 15) 전라도 진산에서 조상 제사 문제로 발생한 박해로, 신해사옥 또는 진산사건이라고도 한다. 진산의 윤지충이 모친의 상을 당해 외종형 권상연과 함께 신주를 불태우고 제사를 지내지 않아 체포되었고, 신앙을 증거하며 순교했다. 이로 인해 서울과 충청도에서도 박해가 일어났으나, 대부분의 신자들은 배교하고 풀려났다. 이 박해를 계기로 양반 신자들이 교회를 떠나고 중인 이하 신분층이 그들을 대신하게 되었으며, 천주교와 서양 과학기술에 대한 배척이 심화되었다.
대한제국기 때, 안규홍 의진에서 유격장으로 활동한 의병.
소휘천 (蘇輝千)
대한제국기 때, 안규홍 의진에서 유격장으로 활동한 의병.
대한제국기 때, 전라남도 보성에서 의진을 결성한 의병장.
안규홍 (安圭洪)
대한제국기 때, 전라남도 보성에서 의진을 결성한 의병장.
조선후기 신해박해 당시에 순교한 천주교인.
윤지충 (尹持忠)
조선후기 신해박해 당시에 순교한 천주교인.
서울특별시 종로구 옥인동·누상동·사직동과 서대문구 현저동·홍제동에 걸쳐 있는 산.
인왕산 (仁王山)
서울특별시 종로구 옥인동·누상동·사직동과 서대문구 현저동·홍제동에 걸쳐 있는 산.
조선 후기에, 의주부윤, 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이동욱 (李東郁)
조선 후기에, 의주부윤, 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대한제국기 때, 안규홍 의진에서 좌우익부장으로 활동한 의병장.
임병국 (任秉國)
대한제국기 때, 안규홍 의진에서 좌우익부장으로 활동한 의병장.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풍세면 태화산(泰華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진산이 창건한 사찰.
태화산 태학사 (泰華山 泰鶴寺)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풍세면 태화산(泰華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진산이 창건한 사찰.
추화산성(推火山城)은 밀양강과 단장천이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한 신라의 석축 포곡식 산성이다. 동문과 남문, 북쪽 계곡에는 우물과 집수지, 부속 건물 등이 위치하고 있다. 산성의 내부에서 단각고배, 인화문토기, 승렴문호, 파상문 단경호, 순청자 접시, 상감청자 종지, 분청자 저부편 등의 유물이 출토되어 삼국시대(6세기 후반경)에 초축되어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 전기까지 산성이 사용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추화산성 (推火山城)
추화산성(推火山城)은 밀양강과 단장천이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한 신라의 석축 포곡식 산성이다. 동문과 남문, 북쪽 계곡에는 우물과 집수지, 부속 건물 등이 위치하고 있다. 산성의 내부에서 단각고배, 인화문토기, 승렴문호, 파상문 단경호, 순청자 접시, 상감청자 종지, 분청자 저부편 등의 유물이 출토되어 삼국시대(6세기 후반경)에 초축되어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 전기까지 산성이 사용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고려 후기에, 전교교감, 전리총랑, 대사헌 등을 역임한 문신.
하윤원 (河允源)
고려 후기에, 전교교감, 전리총랑, 대사헌 등을 역임한 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