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산군읍지(珍山郡邑誌)』는 전라도 진산군(珍山郡) 지금의 충청남도 [금산군 진보면]에서 편찬하였다.
1책 5장의 필사본이다. 크기는 세로 30.2㎝, 가로 21.4㎝이다. 장정은 주1이고, 표지 재질은 주2, 본문 재질은 저지(楮紙)이다. 권수제는 ‘진산읍지(珍山邑誌)’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주3이다.
정확한 편찬 연대는 알 수 없지만, 방리 항목의 편호가 ‘기유식(己酉式)’으로 쓰여 있어 1789년(정조 13) 무렵에 편찬한 읍지로 추정한다. 간행 시기는 분명하지 않다.
수록 항목은 [정도], 방리(坊里), 도로, 건치연혁(建置沿革), 관직(官職), 산천, 성씨(姓氏), 풍속(風俗), 토산물산(土産物産), 단묘(壇廟), 공해(公廨), 창고(倉庫), 누정(樓亭), 사찰, 고적(古蹟), 인물, 한전(旱田), 수전(水田), 진공(進貢), 조적(糶糴), [전세(田稅)], [대동(大同)], [균세], [봉름(俸廩)], [군병] 등으로 구성하였다.
주변 군현까지의 거리, 소속 면리의 이름과 위치, 진산군의 역사, 거주하는 성씨 및 현의 풍속과 자연적 환경, 물산, 각종 시설의 위치 및 내력, 지역 인물 관련 정보, 그리고 인구수 및 토지의 면적, 조세 및 환곡 등의 재정 내역 등을 상세하게 기록하였다. 특히 고적 항목에 이태조(李太祖)의 태(胎)를 안치한 태실산에 대해 상세히 적어 놓았다. 당시 진산 지역에서 서울까지의 거리는 주4였다. 호구와 전결을 합하여 볼 때 진산은 작은 규모의 고을이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조선 후기 전라도 진산군의 연혁과 인문지리, 행정 등을 파악할 수 있는 읍지이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이후 처음으로 만들어진 진산군 읍지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