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고산현(高山縣) 지금의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일대]에서 편찬하였다.
1책 4장의 필사본이다. 크기는 세로 31.1㎝, 가로 30.1㎝이다. 장정은 주1, 표지 재질은 주2, 본문 재질은 저지(楮紙)이다. 표제는 ‘고산현읍지(高山縣邑誌)’이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주3이다.
읍지의 체재와 내용이 1765년(영조 41)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의 「고산읍지(高山邑誌)」 체제를 따르고 있다. 호구가 경자년(庚子年) 장적에 따라 기록되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편찬 시기는 1765년 이후 첫 번째 경자년인 1780년(정조 4) 이후로 짐작할 수 있다.
책의 첫머리에 ‘고산현전주진관(高山縣全州鎭管)’이라고 기재하여, 고산현이 지방군 편제상 전주진관에 속하였음을 밝혔다. 수록 항목은 진관(鎭管), 강계(疆界), 방리(坊里)‚ 도로‚ 건치연혁(建置沿革)‚ 군명(郡名)‚ 형승(形勝)‚ 관직(官職)‚ 산천‚ 성씨(姓氏)‚ 풍속(風俗)‚ 단묘(壇廟)‚ 공해(公廨)‚ 제언(堤堰)‚ 창고(倉庫)‚ 물산‚ 교량(橋梁)‚ 역원(驛院)‚ 누정(樓亭)‚ 사찰‚ 고적(古蹟)‚ 인물‚ 한전‚ 수전‚ 진공(進貢)‚ 조적(糶糴)‚ 전세‚ 대동저치미‚ 균세‚ 봉름(俸廩)‚ 남한의승(南漢義僧)‚ 훈련도감납둔전답도조(訓鍊都監納屯田畓賭租)‚ 군병‚ 여지승람판본(輿地勝覽板本)‚ 현곡집판본(玄谷集板本) 등으로 구성하였다.
전체적인 내용은 『여지도서』의 「고산읍지」 체재와 내용을 따르고 있지만, 남한의승 항목을 포함하여 몇 가지 항목과 내용을 추가하였다. 대신 진보(鎭堡)와 봉수(熢燧), 관애(關阨), 발참(撥站), 학교, 선생안(先生案), 서원(書院), 제영(題詠) 등의 항목은 빠져 있다.
『고산읍지』는 조선 후기 고산현의 연혁과 인문지리, 행정 등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이다. 시문이나 인물, 고적 등은 간략한 대신 경제와 군사 관련 내용이 상세한 점이 특징이다. 1964년 간재(艮齋) 전우(田愚)의 문인들이 편찬한 『고산지(高山誌)』와의 비교를 통해, 전통 시대 읍지가 근대 인물지로 변화하는 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