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최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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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기 참찬문하, 연해등처병선조전절제사 등을 역임한 장수.
나세 (羅世)
조선전기 참찬문하, 연해등처병선조전절제사 등을 역임한 장수.
왜구는 13세기부터 16세기까지 우리 나라와 중국 해안에서 약탈을 하던 일본의 해적이다. 일본 정국의 불안정으로 남부 지방 일부 세력이 해적화하고, 동아시아의 정세혼란으로 왜구퇴치에 역량을 집중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왜구의 약탈은 구조적으로 고착되어 갔다. 한반도의 해안지대만이 아니라 내륙에까지 침범하여 막대한 피해를 주었다. 왜구는 고려말 조선초에 가장 심했고, 특히 고려 말 약 40년간은 그 피해가 막대해서 고려 멸망의 한 요인이 되기도 했다. 지속적인 왜구소탕 작업, 고려와 조선의 쓰시마 정벌에도 불구하고 왜구 침입은 임진왜란 때까지 계속되었다.
왜구 (倭寇)
왜구는 13세기부터 16세기까지 우리 나라와 중국 해안에서 약탈을 하던 일본의 해적이다. 일본 정국의 불안정으로 남부 지방 일부 세력이 해적화하고, 동아시아의 정세혼란으로 왜구퇴치에 역량을 집중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왜구의 약탈은 구조적으로 고착되어 갔다. 한반도의 해안지대만이 아니라 내륙에까지 침범하여 막대한 피해를 주었다. 왜구는 고려말 조선초에 가장 심했고, 특히 고려 말 약 40년간은 그 피해가 막대해서 고려 멸망의 한 요인이 되기도 했다. 지속적인 왜구소탕 작업, 고려와 조선의 쓰시마 정벌에도 불구하고 왜구 침입은 임진왜란 때까지 계속되었다.
화통도감은 고려말 화약·화기의 제조를 맡아보던 임시 관청이다. 1377년(우왕 3)에 최무선의 건의로 설치된 것이다. 최무선은 고려말 횡행하던 왜구를 격멸하는 데 화약만 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여, 원나라 염초 기술자 이원으로부터 화약을 제조하는 법을 배워 국가에 건의해서 화통도감을 설치하기에 이르렀다. 화통도감에서 개발한 20여 종의 화기들은 왜구들과의 전투에서 큰 위력을 발휘하였다.
화통도감 (火筒都監)
화통도감은 고려말 화약·화기의 제조를 맡아보던 임시 관청이다. 1377년(우왕 3)에 최무선의 건의로 설치된 것이다. 최무선은 고려말 횡행하던 왜구를 격멸하는 데 화약만 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여, 원나라 염초 기술자 이원으로부터 화약을 제조하는 법을 배워 국가에 건의해서 화통도감을 설치하기에 이르렀다. 화통도감에서 개발한 20여 종의 화기들은 왜구들과의 전투에서 큰 위력을 발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