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퇴계학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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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암집』은 조선 후기의 학자 이재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732년에 간행한 시문집이다. 간행 연대는 미상이다. 이재는 갈암 이현일의 아들이자 대산 이상정, 소산 이광정의 외할아버지로서, 조선 후기 퇴계학파의 계보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밀암집』은 주리론(主理論)에 바탕을 둔 이재의 학설과 더불어, 영남 퇴계학파의 인격 수양과 교유관계의 일단을 보여 주는 자료이다.
밀암집 (密菴集)
『밀암집』은 조선 후기의 학자 이재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732년에 간행한 시문집이다. 간행 연대는 미상이다. 이재는 갈암 이현일의 아들이자 대산 이상정, 소산 이광정의 외할아버지로서, 조선 후기 퇴계학파의 계보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밀암집』은 주리론(主理論)에 바탕을 둔 이재의 학설과 더불어, 영남 퇴계학파의 인격 수양과 교유관계의 일단을 보여 주는 자료이다.
『방산문집』은 조선 후기의 학자 허훈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10년에 간행한 시문집이다. 저자는 성재 허전의 제자로서 근기남인의 계보를 이은 퇴계학파 학자다. 철학사상면에서 퇴계 이황의 학설을 옹호하고, 지리와 역사에까지 박학하였던 저자의 식견이 수록작에 나타나 있다.
방산문집 (舫山文集)
『방산문집』은 조선 후기의 학자 허훈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10년에 간행한 시문집이다. 저자는 성재 허전의 제자로서 근기남인의 계보를 이은 퇴계학파 학자다. 철학사상면에서 퇴계 이황의 학설을 옹호하고, 지리와 역사에까지 박학하였던 저자의 식견이 수록작에 나타나 있다.
『방산집』은 조선 후기부터 개항기까지 생존한 학자, 이운정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36년에 간행한 시문집이다. 유치명의 제자로서 저자는 주희·도연명·이언적·이황·유치명 등의 작품에 차운한 시를 지어 영남의 주자학자로서의 면모가 드러난다. 유가 경전과 예학에 대한 논의를 펼친 편지 또한 수록되어 있다.
방산집 (方山集)
『방산집』은 조선 후기부터 개항기까지 생존한 학자, 이운정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36년에 간행한 시문집이다. 유치명의 제자로서 저자는 주희·도연명·이언적·이황·유치명 등의 작품에 차운한 시를 지어 영남의 주자학자로서의 면모가 드러난다. 유가 경전과 예학에 대한 논의를 펼친 편지 또한 수록되어 있다.
『문봉문집』은 조선 전기의 문신, 정유일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799년에 간행한 시문집이다. 퇴계 이황의 제자였던 저자는 이황에 대한 존경의 뜻을 표하는 시문과 동문수학한 인사들과 관련한 작품을 많이 남겼고, 조선시대 세종 대부터 인종 대까지 왕과 당대 인물들에 대한 기록인 「한중필록(閑中筆錄)」도 실려 있다.
문봉문집 (文峯文集)
『문봉문집』은 조선 전기의 문신, 정유일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799년에 간행한 시문집이다. 퇴계 이황의 제자였던 저자는 이황에 대한 존경의 뜻을 표하는 시문과 동문수학한 인사들과 관련한 작품을 많이 남겼고, 조선시대 세종 대부터 인종 대까지 왕과 당대 인물들에 대한 기록인 「한중필록(閑中筆錄)」도 실려 있다.
『백담문집』은 조선 중기 문인이자 학자인 구봉령의 시문을 편집한 문집이다. 그는 퇴계학파에서 학문적으로 한 축을 담당한 유학자로서 시들은 그가 외직을 지내면서 지방의 풍경을 보고 읊은 내용이 대부분이고, 상소는 주로 임금의 수신과 기강의 진작을 장려하는 내용이다. 편지는 조정 상황과 당론 타파부터 학문의 방법까지 다양한 주제를 담고 있다. 그의 사후 손자 사위 위준이 편집하고, 이후 풍기 군수 김계광이 원집을 안동 유생 이유수 등이 속집을 각각 간행하였다.
백담문집 (栢潭文集)
『백담문집』은 조선 중기 문인이자 학자인 구봉령의 시문을 편집한 문집이다. 그는 퇴계학파에서 학문적으로 한 축을 담당한 유학자로서 시들은 그가 외직을 지내면서 지방의 풍경을 보고 읊은 내용이 대부분이고, 상소는 주로 임금의 수신과 기강의 진작을 장려하는 내용이다. 편지는 조정 상황과 당론 타파부터 학문의 방법까지 다양한 주제를 담고 있다. 그의 사후 손자 사위 위준이 편집하고, 이후 풍기 군수 김계광이 원집을 안동 유생 이유수 등이 속집을 각각 간행하였다.
영남학파는 영남지방을 중심으로 하는 학문상의 유파로서, 영학파, 퇴계학파, 남명학파, 여헌학파를 총칭한다. 영남학파의 학맥은 정몽주에서 비롯해 길재, 김숙자를 거쳐 김종직으로 계승되었다. 조선 초기 김종직을 중심으로 한 영학파는 훈구파와의 반목으로 정치적 희생물이 되었다. 조선 중기에 이황은 영남좌도에서 퇴계학파의 영수로서, 조식은 영남우도에서 남명학파의 영수로서 많은 학자들을 배출했다. 여헌학파인 장현광은 퇴계학파인 정구, 정경세와 교유했을 뿐 아니라 퇴계학을 묵수하였다. 따라서 거시적 관점에서 보면 여헌학파도 퇴계학파에 속한다.
영남학파 (嶺南學派)
영남학파는 영남지방을 중심으로 하는 학문상의 유파로서, 영학파, 퇴계학파, 남명학파, 여헌학파를 총칭한다. 영남학파의 학맥은 정몽주에서 비롯해 길재, 김숙자를 거쳐 김종직으로 계승되었다. 조선 초기 김종직을 중심으로 한 영학파는 훈구파와의 반목으로 정치적 희생물이 되었다. 조선 중기에 이황은 영남좌도에서 퇴계학파의 영수로서, 조식은 영남우도에서 남명학파의 영수로서 많은 학자들을 배출했다. 여헌학파인 장현광은 퇴계학파인 정구, 정경세와 교유했을 뿐 아니라 퇴계학을 묵수하였다. 따라서 거시적 관점에서 보면 여헌학파도 퇴계학파에 속한다.
『임여재문집』은 1849년 이후 조선 후기 문신 유규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간행한 시문집이다. 그의 손자들이 불탄 초고를 바탕으로 편차·증보하여 1849년 이후 간행한 9권 5책의 목판본이다. 시·서·제문·행장 등 다양한 문체의 글이 수록되어 있으며, 특히 병산서원 사액청원소, 실용적 수학 관련 서간, 정조와의 면담 기록 등은 유규의 학문적 깊이와 실천적 유학자로서의 면모를 보여 준다. 퇴계학파의 학통을 계승하고 유성룡의 후손으로서 염락의 기풍을 시문에 반영한 점에서 사상적·문학적 의의가 크다.
임여재문집 (臨汝齋文集)
『임여재문집』은 1849년 이후 조선 후기 문신 유규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간행한 시문집이다. 그의 손자들이 불탄 초고를 바탕으로 편차·증보하여 1849년 이후 간행한 9권 5책의 목판본이다. 시·서·제문·행장 등 다양한 문체의 글이 수록되어 있으며, 특히 병산서원 사액청원소, 실용적 수학 관련 서간, 정조와의 면담 기록 등은 유규의 학문적 깊이와 실천적 유학자로서의 면모를 보여 준다. 퇴계학파의 학통을 계승하고 유성룡의 후손으로서 염락의 기풍을 시문에 반영한 점에서 사상적·문학적 의의가 크다.
『임연재문집』은 1855년 조선 전기 문신 배삼익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간행한 시문집이다. 후손 배한주 등에 의해 편찬된 6권 3책의 목활자본이다. 시 361수와 함께 소·계·서·명·조천록·교서 등 다양한 글이 수록되어 있으며, 특히 한양의 경치를 읊은 「한성팔영」, 시무책을 조목별로 서술한 「시무십조소」, 동성혼 금지를 청한 계문 등은 그의 정치적·사회적 관심을 드러낸다. 문풍은 ‘평담간소’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퇴계학파의 일원으로서 학문과 문장을 겸비한 점에서 의의가 있다.
임연재문집 (臨淵齋文集)
『임연재문집』은 1855년 조선 전기 문신 배삼익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간행한 시문집이다. 후손 배한주 등에 의해 편찬된 6권 3책의 목활자본이다. 시 361수와 함께 소·계·서·명·조천록·교서 등 다양한 글이 수록되어 있으며, 특히 한양의 경치를 읊은 「한성팔영」, 시무책을 조목별로 서술한 「시무십조소」, 동성혼 금지를 청한 계문 등은 그의 정치적·사회적 관심을 드러낸다. 문풍은 ‘평담간소’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퇴계학파의 일원으로서 학문과 문장을 겸비한 점에서 의의가 있다.
『지애문집』은 조선 후기 영남에서 활동한 학자 정위(鄭煒, 1740~1811)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45년 이후에 간행한 시문집이다. 7권 4책의 목판본으로, 표제는 ‘지애집(芝厓集)’, 권수제와 판심제는 ‘지애선생문집(芝厓先生文集)’이다.
지애문집 (芝厓文集)
『지애문집』은 조선 후기 영남에서 활동한 학자 정위(鄭煒, 1740~1811)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45년 이후에 간행한 시문집이다. 7권 4책의 목판본으로, 표제는 ‘지애집(芝厓集)’, 권수제와 판심제는 ‘지애선생문집(芝厓先生文集)’이다.
이황은 조선전기 성균관 대사성, 대제학, 지경연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1501년(연산군 7)에 태어나 1570년(선조 3)에 사망했다.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진출했으나 1545년(명종 즉위) 을사사화 이후 고향 퇴계에 은거하여 학자의 삶을 살았다. 명유들과 토론하고 『주자대전』 등 주자학 관련서적을 주해·편찬하고 후진들을 양성하여 영남학파 및 친영남학파를 포괄한 거대한 주리파 철학을 형성했다. 68세에 무진육조소와 『성학십도』를 써서 선조에게 바쳤다. 사후 그를 기리는 서원을 지어 도산서원 사액을 받고 위패를 모셨다.
이황 (李滉)
이황은 조선전기 성균관 대사성, 대제학, 지경연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1501년(연산군 7)에 태어나 1570년(선조 3)에 사망했다.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진출했으나 1545년(명종 즉위) 을사사화 이후 고향 퇴계에 은거하여 학자의 삶을 살았다. 명유들과 토론하고 『주자대전』 등 주자학 관련서적을 주해·편찬하고 후진들을 양성하여 영남학파 및 친영남학파를 포괄한 거대한 주리파 철학을 형성했다. 68세에 무진육조소와 『성학십도』를 써서 선조에게 바쳤다. 사후 그를 기리는 서원을 지어 도산서원 사액을 받고 위패를 모셨다.
조선시대 학자 정인홍이 이황을 비판한 상소와 자신을 비판한 상소를 필사한 등록. 상소문.
퇴계학설반대상소문 (退溪學說返對上疏文)
조선시대 학자 정인홍이 이황을 비판한 상소와 자신을 비판한 상소를 필사한 등록. 상소문.
조유형이 『역학계몽』 중에서 도서(圖書) 부분을 정리하여 저술한 역학서.
계몽도서절요 (啓蒙圖書切要)
조유형이 『역학계몽』 중에서 도서(圖書) 부분을 정리하여 저술한 역학서.
이광정은 조선 후기에 『소산집』 등을 저술한 학자이다. 1714년 안동 출생이며, 대산 이상정의 동생으로 밀암 이재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728년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자 15세의 나이에 종군하였다. 경학과 성리학을 연구하고 예설을 정리하여 안동 지방의 표준 예설을 세웠다. 과거에 합격하지 못한 후 은거하여 도를 구하는 공부에 전념했고, 정조가 몇몇 관직에 제수하였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퇴계학통을 계승하여 많은 학자들에게 가르침을 주었다. 1789년 향년 76세에 별세하였고, 안동 고산서원에 배향되었다.
이광정 (李光靖)
이광정은 조선 후기에 『소산집』 등을 저술한 학자이다. 1714년 안동 출생이며, 대산 이상정의 동생으로 밀암 이재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728년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자 15세의 나이에 종군하였다. 경학과 성리학을 연구하고 예설을 정리하여 안동 지방의 표준 예설을 세웠다. 과거에 합격하지 못한 후 은거하여 도를 구하는 공부에 전념했고, 정조가 몇몇 관직에 제수하였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퇴계학통을 계승하여 많은 학자들에게 가르침을 주었다. 1789년 향년 76세에 별세하였고, 안동 고산서원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