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조선 전기, 문신·학자 구봉령의 시·서(書)·제문·전 등을 수록한 시문집.
저자
구봉령이 벼슬했던 시기는 심의겸(沈義謙)과 김효원(金孝元)의 대립으로 인해 조정의 사림(士林)이 분열될 때였다. 그는 중립을 견지하여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았으며, 당색을 떠나 소신껏 인재를 등용하는 꿋꿋한 지조를 보였다. 그럼에도 백담은 사론의 분열이 가져오는 폐해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당시 붕당이 형성된 원인을 두고 심의겸(沈義謙)의 파직을 논하면서 심의겸과 함께했던 인물들을 거론하였는데, 이때 앙금을 가지고 있던 이발(李潑)이 그를 심의겸의 문객으로 지목하였다. 구봉령은 이 사건을 계기로 일체 조정에 올라가지 않았으며 병환이 깊어지면서 이듬해 1586년(선조 19) 사망하였다.
편찬/발간 경위
구성과 내용
원집의 권1에는 오언절구 49수, 칠언절구 167수, 권2에는 칠언절구 130수, 권3에는 오언율시 58수, 권4에는 칠언율시 194수, 권5에는 오언배율 3수, 오언고시 12수, 칠언배율 7수, 칠언고시 9수, 부 1수가 각각 실려 있다. 권6~7에는 소(疏) 2, 차(箚) 1, 계(啓) 1, 의(議) 2, 교서(敎書) 1, 비답(批答) 1, 책문(冊文) 1, 청사(靑詞) 3, 축문(祝文) 2, 제문(祭文) 4, 전(箋) 6, 표(表) 1편이 각각 실려 있고, 권8에는 서(書) 90편이 실려 있다. 권9에는 기(記) 1, 설(說) 1, 논(論) 3, 제문(祭文) 19, 묘갈(墓碣) 3, 묘표(墓表) 1편이 각각 실려 있고, 권10에는 「상례문답(喪禮問答)」과 「유어(遺語)」, 그리고 부록으로 행장(行狀), 묘갈명(墓碣銘), 사액 제문(賜額祭文) 등이 실려 있다.
원집 권1~5의 시에는 자주(自註)와 편자주(編者註)가 자세히 실려 있다. 구봉령은 황해도(黃海道), 충청도(忠淸道), 전라도(全羅道)의 재상 어사(災傷御史)를 역임한 바 있고, 충청도와 전라도의 관찰사를 지내면서 그때마다 지은 시가 거의 대부분이다. 이때의 시는 산수 경물을 보고 느낀 점을 읊은 산수 경물시와 자신의 처지를 읊은 술회시가 대부분이다. 또 퇴계 선생을 존모하여 차운하거나 퇴계 선생의 상징적 공간인 청량산을 소재로 한 작품을 다수 남기고 있으며, 유성룡(柳成龍), 조목(趙穆) 등 사우들과 차운하고 화답한 시가 다수 들어 있다. 「대음희성부(大音希聲賦)」는 옛 황제들이 여러 음(音)의 제도를 만들어 백성을 교화하고 습속을 바르게 하기 위해 힘썼으며, 그 중에도 황제들의 숨은 뜻인 대음(大音)은 다른 소리와 다르게 들리지 않으면서도 마음을 움직여 백성을 선하게 하니 비록 눈에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지만 교화의 효과는 어느 것보다도 크다는 내용이다.
권6의 「의홍문관진폐소(擬弘文館陳弊疏)」에서는 당시 지진, 일식, 충요(蟲妖) 등 재앙이 잇달아 일어나는 것은 임금이 매사를 공경하지 못하는 데 기인한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군자를 등용하고 소인을 물리치며 궁중의 비위를 금하고 유신을 애용해야 한다는 등의 개선책을 제시하였다.
권7의 「사헌부차자(司憲府箚子)」는 1572년 구봉령이 사헌부(司憲府)에 재직할 때 올린 차자(箚子)이다. 선조가 등극한 지 5년에 치효(治效)가 드러나지 않고 재앙이 날로 성하여져 천재지이와 해충이 전에 없이 치성하니 전하께서는 흐트러진 기강을 바로잡는 데 힘쓸 것을 진달한 내용이다.
권8은 90편의 편지로, 유성룡(柳成龍), 조목(趙穆), 남치리(南致利), 권춘란(權春蘭) 및 아들 구충윤(具忠胤)과 구선윤(具善胤), 구성윤(具誠胤) 등과 주고받았다. 유성룡과의 편지에는 조정 상황과 당론 타파에 대한 내용이 많고 조목(趙穆)과 권춘란(權春蘭)과의 편지에는 학문의 입지(立志), 수신(修身), 계구(戒懼), 신독(愼獨) 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였다. 남치리에게 보낸 편지에는 상례(喪禮)에 대한 문답으로 상(喪), 연제(練祭), 담사(禫祀), 길제(吉祭) 등에 대한 광범위한 내용이 담겨 있다.
권9의 「혼천의기(渾天儀記)」는 천문을 관측하는 데 쓰는 혼천의의 모양과 만들게 된 동기 등을 말한 것이다. 논(論)은 성인의 도를 구해서 보려면 맹자의 마음에서 시작해야 된다는 「구관성인지도필자맹자시(求觀聖人之道必自孟子始)」, 『주례』에도 여자 무당의 말이 있다는 「주례설여무론(周禮設女巫論)」, 제갈공명이 죽지 않고 소열(昭烈)을 보필하여 공업을 이루었다면 예악(禮樂)이 흥하였을 것이라는 선유(先儒)의 의견에 대해 논변한 「공명서기예악론(孔明庶幾禮樂論)」이 있다.
권10의 「상례문답(喪禮問答)」은 여러 경전에서 근거를 찾아 상례의 불분명한 점을 설명하면서, 특히 적자(嫡子)와 서자의 복제의 구분, 스승의 복제 등에 대한 9개의 문답을 정리한 것이다. 「유어(遺語)」는 어록을 모은 것이다. 부록에는 이준이 지은 행장, 묘갈명과 1692년의 사액제문이 실려 있다.
속집은 권수(卷首)에 김굉(金㙆)의 속집 서문이 있고, 권1~3에는 시, 권4에는 부(賦) 1, 사(辭) 1, 서(書) 45, 명(銘) 1, 찬(贊) 1, 축문(祝文) 4, 제문(祭文) 9편이 실려 있으며, 부록으로 만사(輓詞), 제문, 시장(諡狀), 「청증작사시서원사액소(請贈爵賜諡書院賜額疏)」, 「예조회계(禮曹回啓)」 등이 실려 있다.
속집의 권1~3의 시는 원집과 마찬가지로 시체별(詩體別)로 실려 있고, 황해도 · 충청도 · 전라도 세 도의 재상 어사, 충청도와 전라도 두 도의 관찰사 시절 지은 시가 다수이다. 권1의 오언고시 중에는 사서(史書)를 읽고 감흥을 적은 시와 장온고(張蘊古)의 「대보잠(大寶箴)」을 읽고 쓴 시가 실려 있으며, 권2의 칠언절구 가운데는 현감 홍가신(洪可臣) 등과 함께 배를 타고 부여(扶餘)를 향해 가면서 유람하고 지은 시 14수와 「빈일헌십영차운(賓日軒十詠次韻)」이 실려 있다.
속집 권4의 「치군불급요순부(耻君不及堯舜賦)」는 당우 삼대(唐虞三代)의 미덕을 칭송하고 임금이 요순에 미치지 못함을 부끄러워하며 남에게 책임을 미루며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 부끄럽다는 내용이다. 「금강사(錦江辭)」는 1568년(선조 1) 전라도 재상 어사(災傷御使)로 갈 때 배를 타고 금강을 지나다가 흥이 일어 지은 부(賦)이다. 도도히 흐르는 강물과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에 찬탄하고 지난 세월에 대한 감흥과 선현의 경지에 도달하고 싶은 소망을 피력하였다.
서(書)에서 퇴계 선생께 올린 문목 2편은 납폐(納幣)의 예에 대하여 질문한 것이다. 나머지는 조목(趙穆), 권춘란(權春蘭) 등에게 보낸 편지 43편이 실려 있다. 그 외 「옥주명(玉舟銘)」, 「경성찬(景星贊)」, 축문, 제문이 실려 있으며, 부록에는 정탁(鄭琢), 권춘란, 이봉춘(李逢春), 조목, 권호문(權好文) 등이 지은 만사와 이서우(李瑞雨)가 지은 시장(諡狀) 등이 들어 있다.
평가와 의의
참고문헌
원전
- 『한국문집총간 해제 백담집』
- 『국역 백담집』
논문
- 박동일, 「백담 구봉령의 한시 연구」 (안동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1)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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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제왕이나 재상, 유현(儒賢) 들이 죽은 뒤에, 그들의 공덕을 칭송하여 붙인 이름.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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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결혼을 한, 아버지의 형제 가운데 둘째 되는 이. 아버지의 형제가 여럿인 경우에 아버지가 셋째나 그 아래이면 둘째 큰아버지를, 아버지가 맏이거나 둘째이면 첫째 작은아버지를 이른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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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나이가 많아 벼슬을 사양하고 물러남.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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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세력 있는 집에 머물면서 밥을 얻어먹고 지내는 사람. 또는 덕을 볼까 하고 수시로 그 집에 드나드는 사람.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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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죽은 이를 슬퍼하여 지은 글. 또는 그 글을 비단이나 종이에 적어 기(旗)처럼 만든 것. 주검을 산소로 옮길 때에 상여 뒤에 들고 따라간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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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존경하여 그리워하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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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남이 지은 시의 운자(韻字)를 따서 시를 짓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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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8
: 불길같이 성하게 일어나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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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9
: 악을 물리치고 선을 북돋아서 마음과 행실을 바르게 닦아 수양함.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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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0
: 조심하고 두려워함.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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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1
: 홀로 있을 때에도 도리에 어그러짐이 없도록 몸가짐을 바로 하고 언행을 삼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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