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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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행사
신령에게 청원하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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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축문(祝文)은 신령에게 청원하는 글이다. 대개 독축(讀祝)의 형식을 빌어 의례(儀禮)의 맥락과 연결되며, 의례의 성격을 결정짓는 핵심적인 요소로 간주된다. 축문은 의례의 상황에 맞게 창작되기도 하지만, 규칙화된 의례의 경우에는 기본 격식을 갖춘 축문을 그대로 모방하기도 한다. 근대 이후 사례 축문집이 인쇄술에 힘입어 대량으로 보급되었고, 다종교 상황의 전개로 다양한 축문집도 간행되었다.

정의
신령에게 청원하는 글.
축문의 의례적 가치와 의미

축(祝)은 빎이나 기림 또는 바람을 의미하며 축문(祝文)은 그것을 담은 텍스트이다. 간혹 축문과 제문(祭文)을 두루 쓸 때도 있지만, 분명한 차이를 보여 주기도 한다. 축문이 신령에게 축원을 고하는 형식을 취하는 게 일반적이라면, 제문은 죽음을 애도하거나 사회를 풍자하는 문학적 장르로 활용되기도 한다.

축문은 의례(儀禮)에서 활용되기 마련이며, 의례의 성격과 맥락을 결정짓는 핵심적인 요소로 간주된다. 축문은 소위 독축(讀祝)의 형태로 의례 과정에서 구현되며, 그것을 통해 인간과 신령이 매개되고 소통한다. 의례 절차상 헌주 이후에, 특히 초헌 이후에, 축문이 낭독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축문이 활용되는 의례는 다종다양하다. 개인 및 가정의례 차원, 마을 및 지역 의례 차원, 국가 및 왕실 의례 차원, 특정 종교 교단의 의례 차원 등에서 축문은 신령을 감응시키는 고유하고도 긴요한 의례적 역할을 수행한다.

축문의 내용과 형식

민속 의례에서 소지(燒紙)를 올리며 비손하듯이 형식에 구애됨이 없이 자유롭게 축원하는 경우도 있으나, 축문은 나름의 일정한 형식을 지향한다. 물론 축문이 다양한 만큼 축문의 형식을 한마디로 단정 짓기는 곤란하다. 그러나 특정의 형태로 축문을 정형화하거나 공식화하려는 움직임도 강했기 때문에 일반적인 경향성을 언급할 수는 있다. 대개 한국의 의례 문화에 보편화된 축문은 어느 정도 유교의 영향으로 형성된 것이 대부분인데, 그 형식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첫째, 축문의 도입부로서 의례의 때와 주체, 그리고 의례를 흠향할 신위를 공표하는 서문이다. 주로 ‘유세차(維歲次)’로 시작해서 ‘감소고우(敢昭告于) ○○신위’로 마무리되는 형식을 취하며, ‘언제, 누가, 어느 신에게 감히 고한다.’라는 내용을 담는다. 의례의 주체와 대상이 설정되는 만큼 해당 의례의 성격과 위상을 결정짓는 요소가 서문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둘째, 축문의 중심부로서 호명한 신령에게 원하는 바를 축원하는 본문이다. 양적인 면에서 축문 내용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대개 신령의 호위에 감사하거나 바라는 바를 청하거나 부닥친 위기 상황을 하소연하는 내용으로 구성된다.

셋째, 축문을 마무리 하는 부분으로서 신의 감응을 바라며, 법식에 맞춰 정성스럽게 마련한 제물을 흠향하도록 권고하는 결문이다. 대개 축문의 끝에 제물의 흠향을 바란다는 의미로 ‘상향(尙饗)’으로만 표현하는 수도 있다.

축식과 축집

축문 자체가 긴요한 의례의 구성물이므로 무분별하게 작성되어서는 곤란하다. 의례의 상황과 조건에 부합하도록 기본 형식을 갖추는 것이 요구된다. 기우제와 같은 비정기적인 의례에서는 무조건 전례를 따르기보다 상황에 맞게 정성껏 축문을 신작하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대부분의 정례화된 의례에서는 축문의 창작보다는 규칙화된 축문의 모방이 의례적 과오를 줄일 수 있다고 간주되었다.

범례(範例)가 될 만한 격식을 갖춘 축문을 축식(祝式)이라 하며, 그 축식의 모음집이 바로 축집(祝輯)이다. 국가 의례의 경우, 각종 축문에 대한 기본 법식은 『국조오례서례(國朝五禮序例)』(축판)에 별도로 규정되어 있다. 일반적인 가정에서 관혼상제(冠婚喪祭) 등의 사례(四禮)를 행할 때에는 주자의 『가례(家禮)』이재『사례편람(四禮便覽)』 등과 같은 권위 있는 예법에 관한 책에 수록된 축문의 격식을 참고하였다.

사례 축문집의 대중화

근대 이후 사례의 축식을 별도로 모은 축문집의 발간이 두드러졌다. 신분제가 붕괴되면서 사례 축문의 수요층이 늘었고, 근대 인쇄술의 발전으로 공급 또한 원활했기 때문이다. 다만 당시에 출간된 축문집은 당대의 순수한 창작물이라기보다는 과거의 권위 있는 축문들을 모으고 분류한 편집물에 가까웠다. 1907년 송병순(宋秉珣, 1839-1912)의 『사례축식(四禮祝式)』은 근대 축문집의 효시라 할 만하다. 『사례축식』이 발간된 이래 목판본(1929)과 석판본(1934)이 시차를 두고 출간되었다. 아울러, 동일한 제목에 현행(現行) 혹은 시행(時行)을 덧붙이고, 앞뒤 내용에 약간의 변화를 가한 『사례축식』(이종정, 태학서관, 1917)도 인기를 끌었다.

이 밖에 위도한의 『사례축사상변통해(四禮祝辭常變通解)』(1916), 김종수의 『고축집람(告祝輯覽)』(1917), 신현설의 『이례축식(二禮祝式)』(1925), 강의영의 『유행축식사례정선(流行祝式四禮精選)』(1926), 전달준의 『사례상변축사(四禮常變祝辭)』(1927), 서우석의 『백례축집(百禮祝輯)』(1929), 조삼환의 『축규총집(祝規叢輯)』(1929), 박봉호의 『찬축고증(贊祝考證)』(1929), 최상규의 『사례상변고축(四禮常變告祝)』(1930), 이병호의 『상변고축합편(常變告祝合編)』(1937) 등과 같은 사례 축문집이 서울과 지방에서 간행되었다.

축문집의 다변화

근대 이후 사례 축문집이 대량으로 발간되되었을 뿐만 아니라 다종교 상황의 전개로 축식도 다변화되었다. 즉 외래 종교의 전래뿐만 아니라 국내의 신종교 운동도 축문의 다변화를 부추겼다. 천주교의 경우 각종 예식의 기도문을 수록한 『텬쥬셩교공과』가 1860년대 목판본으로 간행되었고, 1912년 뮈텔 주교에 의해 신연활자본으로 종교인들에게 보급되었다. 성공회의 경우에도 교단 차원에서 공적 기도문을 모은 『셩공회공도문(聖公會公禱文)』 (박요한, 1912)과 신도 개인이 일상에서 준행할 기도문을 모은 『사도문(私禱文)』(민재은, 1917)을 각각 발행하였다. 각종 기도문은 축문의 명칭으로 제시될 정도로 기도문은 축문으로서 이해되었다. 이후 1932년에 사도문이, 1939년에 공도문이 재간행되었다.

한편, 동학 교단에서도 각종 예식에 축문을 사용하였고 그것을 법식화하였지만, 별도로 간행된 축문집이 확인되는 곳은 상주에 본거지를 둔 동학교 본부이다. 1915년경 교단의 틀을 갖추고 1922년 공식 출발한 동학교는 목활자본과 필사본 형태로 『축식(祝式)』을 남기고 있다. 『축식』에는 교단 본연의 헌성식이나 혼상제례에 활용될 42편의 축문을 수록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축문은 의례의 핵심으로서 신인의 관계, 공동체와 소속감, 인간의 절실한 염원과 정성을 압축적으로 담고 있는 기도문이다. 축문을 통해 의례의 성격과 의례 참여자의 심성을 보다 더 적절하게 이해할 수 있다.

참고문헌

원전

『사례축식』
『가례(家禮)』
『사례편람(四禮便覽)』

논문

최종성, 「축(祝)의 시대: 일제강점기 축문집의 발간과 의례의 다변화」(『역사민속학』 53, 역사민속학회, 2017)
관련 미디어 (2)
집필자
최종성(서울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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