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

가족
개념
유교적 이념을 실현하는 가례(家禮)의 핵심을 이루는 관례(冠禮), 혼례(婚禮), 상례(喪禮), 제례(祭禮)의 네 가지 의례.
이칭
이칭
관혼상제, 가례, 통과의례, 평생의례
내용 요약

사례(四禮)는 유교적 이념을 실현하는 가례(家禮)의 핵심을 이루는 관례(冠禮), 혼례(婚禮), 상례(喪禮), 제례(祭禮)의 네 가지 의례이다. 천하나 국가 단위의 공적 의례인 왕조례(王朝禮)가 길례(吉禮), 흉례(凶禮), 군례(軍禮), 빈례(賓禮), 가례(嘉禮)의 오례(五禮)로 구분되는 것과는 달리, 사례는 사대부가에서 소년기 관례, 청년기 혼례, 중장년기의 상례와 사후의 제례로 일생의 시간 순서에 따라 반드시 치르게 되는 가례의 핵심적인 통과의례 혹은 일생 의례들로 구분된다.

정의
유교적 이념을 실현하는 가례(家禮)의 핵심을 이루는 관례(冠禮), 혼례(婚禮), 상례(喪禮), 제례(祭禮)의 네 가지 의례.
내용

사례(四禮)는 유교적 이념을 실현하는 『가례(家禮)』의 핵심을 이루는 관례(冠禮), 혼례(婚禮), 상례(喪禮), 제례(祭禮)의 네 가지 의례이다. 천하나 국가 단위의 공적 의례인 왕조례(王朝禮)가 길례(吉禮), 흉례(凶禮), 군례(軍禮), 빈례(賓禮), 가례(嘉禮)오례(五禮)처럼 영역별로 구분되는 것과는 달리, 사례는 본래 천자와 제후를 비롯한 귀족들의 예(禮)가 사대부(士大夫)의 예까지 확대됨에 따라 사대부가에서 소년기 관례, 청년기 혼례, 중장년기의 상례와 사후의 제례로 일생의 시간 순서에 따라 반드시 치르게 되는 가례의 핵심적인 통과의례 혹은 일생 의례들이다.

유래와 역사

사례는 중국 송나라의 가례서들에서 본격적으로 비롯되었다. 북송(北宋)의 사마광(司馬光, 1019~1086)이 지은 『서의(書儀)』에서 비롯하여 남송(南宋)의 주자(朱子)가 지은 『가례(家禮)』를 거치면서 국가나 왕조가 아닌 사대부가 차원의 관례, 혼례, 상례, 제례의 사례 혹은 가례의 체제와 구성이 이루어졌다. 남북조시대의 세가대족(世家大族) 출신의 귀족들이 가문의 예법을 엄격한 규범으로 정립하고 종족 내부의 결속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일상의 의례적 규범들을 다루는 서찰 형식의 ‘서의(書儀)’류 자료들을 만들면서 민간 사대부들의 가례서(家禮書)들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송대의 『가례』에 이르러 유교 예법의 경전적 토대인 『의례(儀禮)』『예기(禮記)』 등의 고례(古禮)의 기준과 성격을 검토하면서, 길례, 흉례, 군례, 빈례, 가례 등의 오례로 구성되는 왕조례와 다른 사대부가의 가례를 정립하였다. 이 가운데서도 주자의 『가례』가 다루는 사례가 고려 말에 한반도에 유입되어 성리학자들의 연구와 실천을 통해서 유교적 생활 방식으로 자리잡았으며, 이에 따라 사례는 국가 질서 유지와 운영을 위한 이념을 담은 오례의 정치적 질서를 넘어서서 사대부를 중심으로 하는 민간의 의례적 실천과 윤리적 생활의 사회적 규범으로 부각되었다.

한편, 사례에 대한 논의는 『가례』를 연원으로 삼지만 그 내용에 대한 본격적 검토와 논의는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 규정된 대부(大夫), 사(士), 서인(庶人) 관련 가례 규정들, 예컨대, 「문무관관의(文武官冠儀)」, 「종친문무관일품이하혼례의(宗親文武官一品以下昏禮儀)」, 「대부사서인상(大夫士庶人喪)」, 「대부사서인사중월시향의(大夫士庶人四仲月時享儀)」 등을 통해 조선의 시속(時俗)을 일정하게 반영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실제로 조선의 사례는 『가례』에 분명한 규정이 없는 조항들을 살펴보고 그 절차와 복식, 음식, 기물 등을 조선의 현실에 맞게 재조정하면서 지속적으로 발전하였다. 예컨대, 16세기 중반 이후에 가례 혹은 사례는 상례와 제례를 중심으로 행례(行禮)의 매뉴얼을 만드는 상례서나 제례서 혹은 상제례서들이 등장하다가 관혼상제(冠婚喪祭)를 모두 갖춘 사례서(四禮書)로 발전하였다. 이를 기반으로 삼아 17세기 사가례(私家禮)와 국가전례(國家典禮)가 인정과 의리 혹은 혈연적 유대와 관직을 가진 사람을 존귀하게 대우하는 사회적 위계질서 중 어떤 것이 더 중요한가를 두고 벌어진 예 논쟁이나 예송(禮訟)을 거친 뒤에 국가 중심의 오례 체제를 넘어서서 사대부들의 사례 체제가 지닌 자율적이고 주체적인 성찰과 실천이 부각되었다.

특히 이런 논쟁과 토론을 거치면서 축적된 예학적 기반은 조선 후기에 사대부들의 관혼상제 실천에 실제로 활용할 수 있도록 『가례』에 미비한 내용들을 구체적으로 규정하거나 변례(變禮) 상황에서 어떻게 가례를 실천할 것인지에 대한 의례적 표준을 정하기 위하여 『사례편람』을 비롯한 다양한 사례서 혹은 행례서들이 등장하게 이끌었으며, 조선 후기에는 성리학적 종법(宗法) 질서를 구현하는 유교적 전통 사회의 전형을 이룩하게 되었다.

의미와 성격

공자가 신종추원(愼終追遠)이 왕도(王道) 정치의 핵심이라고 주장했듯이, 유교 사회에서는 상례와 제례를 중심으로 하는 사례의 온전한 실천이 문화적 이상의 실현에 핵심적인 관건이다. 따라서 사례는 단순한 통과의례 혹은 일생 의례가 아니라 개인의 일상생활을 의미있게 실현하는 의례적인 실천 규범이자 사회와 국가의 질서를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공동체적 근간으로 자리잡았다. 특히 사례는 사대부가의 의례적 이념을 극명하게 잘 보여 준다. 송대 주자의 『가례』는 유교적 이념을 적절한 의례적 실천과 종법의 공동체적 질서로 구현하기 위해서 사례의 몇 가지 기준을 제시하였다. 통례(通例)의 차원에서는 사대부가마다 각각 가묘(家廟)를 두고 종자(宗子)를 중심으로 조상과 후손을 연계하는 혈연적 가문의 종법 질서를 실현하려고 하였다. 특히 무덤을 중시하는 여묘(廬墓)의 삼년상 실천이 아니라 반곡(反哭) 혹은 반혼(返魂)을 통해 가묘의 신주(神主)를 중심으로 유교적 가례를 실현하는 상례를 실천하는 한편, 친영(親迎)을 통한 남성 가부장적 가족 질서의 구축과 더불어, 조상들의 제례를 통한 종족의 혈연적 유대감과 결속력 고취를 주기적으로 강화하였다.

이러한 사례가 조선에 와서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 족보와 가묘를 중심으로 하는 동성 집성촌에서 종자를 중심으로 구축되는 남성 가부장 중심의 전형적인 유교적 전통 사회가 이루어졌다. 조선에서 유교적 사례가 변모시킨 관혼상제의 중요한 특징은 다음과 같다.

먼저 유교적 성인식인 관례로는 남자는 상투를 틀고 갓을 쓰는 관례를 행하였고, 여자는 쪽을 찌고 비녀를 꽂는 계례(筓禮)를 행하였다. 관례는 일반적으로 15세부터 20세까지의 나이에 혼례를 앞두고 이루어졌다. 택일(擇日)부터 초가례(初加禮), 재가례(再加禮), 삼가례(三加禮)와 초례(醮禮)를 행하고나서 자(字)를 지어 주는 의식을 마친 뒤에는 가묘에 고유(告由)하였으며, 관례를 마친 뒤에는 연회를 베풀었고, 관례 다음날에는 선영에 성묘하는 경우도 있었다.

다음으로 가례의 실행 이전까지만 해도 남자가 여자 집으로 장가를 가는 남귀여가혼(男歸女家婚)이었던 혼례는 유교적 가례가 도입되면서 여자가 남자 집으로 시집을 오는 친영으로 이행하기 시작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며 남귀여가혼에서 친영으로 변화하는 혼례의 양상은 가례 도입 이전에 본가와 외가, 부계와 모계가 동등하게 결합을 이루었던 양계제(兩系制) 가족 질서가 종자를 중심으로 하는 남성 가부장 중심의 종법 질서로 변모하는 양상을 잘 보여준다. 또한 이러한 질서가 확대되어 조선 후기에는 문중(門中)의 출현이 이루어졌다.

한편, 상례에서는 불교식으로 화장(火葬)과 49재를 하거나 무덤에서 시묘살이하던 종래의 풍습이 유교적인 사례의 도입에 따라 삼년상과 더불어 장례를 치른 뒤에 가묘로 신주를 옮기는 반혼 또는 반곡의 실천이 본격화되었다. 제례에서는 남녀 자녀들이 돌아가며 조상을 제사하던 윤행 봉사나 외손이나 사위 및 총부들이 제사를 드리거나 무덤을 중심으로 묘제(墓祭)를 중시하던 종래의 풍습에서 벗어나서, 가묘에서 적장자인 종자를 중심으로 주기적으로 시제(時祭)기제(忌祭)를 드리면서 사대봉사를 하는 질서가 확립되었다.

그러므로 사례의 도입과 실천은 단순한 통과의례의 실천을 넘어서 유교적 전통 사회를 구성하고, 유교적 이상을 구현하는 의례적 실천이자 공동체적 질서의 구현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원전

『가례(家禮)』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사례편람(四禮便覽)』

단행본

『한국인의 윤리관』(한국정신문화연구원,1983)
장철수, 『한국전통사회의 관혼상제』(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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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김윤정, 「조선후기 四禮의 전형―『四禮便覽』을 중심으로―」(『민족문화연구』 86,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2020)
박종천, 「『계암일록』에 나타난 17세기 예안현 사족의 의례생활」(『국학연구』 24, 한국국학진흥원, 2014)
장동우, 「『國朝五禮儀』에 규정된 大夫・士・庶人의 四禮에 관한 고찰」(『한국학연구』 31, 인하대 한국학연구소, 2013)
정현정, 「司馬光 『書儀』의 체제 및 구성과 그 성격」(『퇴계학보』 129, 퇴계학연구원,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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