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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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가(喪家)에서 시급하게 부고(訃告)를 작성해야 할 때 쓰던 호상(護喪)의 가명(假名).
내용 요약

정대일(丁大一)은 조선시대부터 상가(喪家)에서 시급하게 부고(訃告)를 작성해야 할 때 쓰던 호상(護喪)의 가명(假名)이다. 빨리 쓰기 위해서 성과 이름을 모두 획수가 가장 적은 글자들로 조합하였다. 근대에 와서는 이 용법이 확장되어 작자 혹은 편찬자를 대신하는 가명의 대명사로 쓰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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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상가(喪家)에서 시급하게 부고(訃告)를 작성해야 할 때 쓰던 호상(護喪)의 가명(假名).
내용

상례(喪禮)는 인생을 마감하는 마지막 통과 의례이지만, 상당한 시간 동안 신중하게 준비하는 관례(冠禮)혼례(婚禮) 혹은 의례를 행하는 날짜가 고정되어 미리 준비가 가능한 제례(祭禮)와는 달리, 갑자기 닥치는 경우가 많아서 미리 충분한 대비를 하지 못한 채 맞게 되는 경우가 있었다. 일반적으로는 갑작스럽게 상례를 맞은 상주(喪主)와 가족들은 죽음의 심리적 충격을 감내하면서 상례의 모든 과정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상례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있는 친척이나 지인들 중에서 상례의 모든 절차를 준비하고 진행하며 총괄하는 호상(護喪)을 두었다. 그러나 호상을 맡을 만한 사람이 없을 경우에는 상가(喪家)에서 시급하게 부고(訃告)를 작성하여 발송하기 위해서 임시로 썼던 호상의 가명(假名)이 정대일(丁大一)이다.

호상을 정하기 힘든 상황일지라도 우선 짧은 시간에 최대한 많은 양을 부고를 써서 발송해야 하는 상황에서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호상을 대신하는 가명은 정(丁), 대(大), 일(一)로 획수가 가장 적은 글자들로 조합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부고를 받은 뒤에는 보관하지 않고 태워 버렸기 때문에 현재까지 실물이 남아 있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수기로 작성했던 방식에서 근대 이후에는 신문 공지와 전화를 통한 부고로 바뀌었다다가, 최근에는 휴대 전화 문자, 이메일, SNS, 상조 회사의 부고 서비스 등 다양한 부고 방식이 통용되면서 완전히 사라졌다.

이 용어의 정확한 역사적 연원을 밝힐 수는 없지만, 늦어도 조선 말기인 19세기부터 일부 문집에서 정대일을 사용한 용례가 확인된다. 대표적으로 김평묵(金平默, 1819~1891)의 『중암집(重菴集)』 권2, 시 「정대일탄(丁大一歎)」과 신기선(申箕善, 1851-1909)『양원유집(陽園遺集)』 권15, 「명강문답(明剛問答)」 등에서 정대일에 대한 설명이 보인다. 김평묵은 호상(護喪)의 실제가 사라지고 부고에서 하인의 성명으로 호상의 명칭을 대신 채우는 주3 지역의 천박하고 근거없는 풍속이 조선 전역으로 퍼진 것이라고 비판적으로 평가하였고, 신기원도 여러 곳에서 받은 부고에서 ‘정대일’이라는 호상 이름을 자주 보았다고 경험담을 고백하면서 정대일이 획이 간단하기 때문에 허명(虛名)으로 호상을 대신하는 주4이 애통하고 근신하는 정성이 없다는 점을 비판하였다.

한편, 근대에 와서는 이 용법이 확장되어 실명을 드러내기 곤란할 때 작자 혹은 편찬자를 대신하는 가명의 대명사로 쓰이기도 하였다. 실제로 조선시대 홍만종의 외설스런 이야기를 모은 야담집인 『명엽지해(蓂葉志諧)』손진태가 일본인 마에마 쿄사쿠[前間恭作]의 주2 『고금소총(古今笑叢)』에 실려 있는 내용으로 접한 뒤에 음담패설 수집가인 정대일에게 소개하였고, 정대일이 이 자료에 자신이 수집한 내용과 손진태가 제공한 내용을 더하여 『속지해(續志諧)』로 덧붙여서 합본하여 1932년에 도쿄[東京]에서 『명엽지해(蓂葉志諧)』로 간행했는데, 여기서 쓰인 정대일이 손진태의 가명이었다는 설이 있다. 또한 1947년 정대일이 조선의 음담패설 50여화를 모아서 편찬한 것으로 알려진 『조선상말전집』최남선의 가명이었다는 설도 있다. 이러한 사례들을 볼 때 정대일은 호상 대신 쓰는 가명 외에도 실명을 밝히기 힘들 때에 쓰는 일반적인 가명의 용법으로 확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요컨대, 정대일이라는 용어는 시급하게 부고를 작성해야 하는 상황에서 호상의 가명으로 쓰이던 것이 근대에 와서는 작자 혹은 편찬자를 대신하는 가명의 대명사로 확대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참고문헌

원전

김평묵(金平默), 『중암집(重菴集)』
신기선(申箕善), 『양원유집(陽園遺集)』

단행본

丁大一, 『蓂葉志諧』(東京: 三文社, 1932)(『고금소총』 유인본, 민속학자료간행회, 1958에 전재; 『손진태선생전집』 제3권, 1982에도 전재됨)
丁大一, 『조선상말전집』(향토문화연구회, 1947)
국어국문학편찬위원회 편, 『국어국문학자료사전』(한국사전연구사, 1994)
이민수, 『관혼상제(冠婚喪祭)』(을유문화사, 1975)
장철수, 『한국전통사회의 관혼상제』(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4)
주석
주1

서울의 번화함. 우리말샘

주2

손으로 베껴 써 옛날부터 전하여 오는 책. 우리말샘

주3

번화한 서울. 우리말샘

주4

습관이 된 풍속.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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