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은 같은 제목으로 향유되는 전혀 다른 두 종의 책을 지칭하는 명칭이다. 하나는 조선 중기에 홍만종(洪萬宗)이 편찬한 『고금소총』이고, 다른 하나는 1958년 민속학자료 간행회에서 유인본(油印本)으로 출간한 『고금소총』을 말한다. 이 두 가지가 뒤섞여 쓰이고 있으나, 둘은 서로 전혀 다른 책이다. 여기서 다루는 『고금소총』은 전자의 것을 말한다.
편자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홍만종이다. 홍만종은 정통 시문(詩文)보다 우리나라 역사 · 지리 · 시화 등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가 남긴 저술로는 『동국역대총목(東國歷代叢目)』 · 『증보역대총목(增補歷代叢目)』 · 『시화총림(詩話叢林)』 · 『소화시평(小華詩評)』 · 『시평보유(詩評補遺)』 · 『해동이적(海東異蹟)』 · 『순오지(旬五志)』 · 『동국악보(東國樂譜)』 · 『동국지지략(東國地志略)』 등이 그러하다. 여기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는데, 그의 모든 저술이 동국(東國), 즉 우리나라와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 그 연장선으로 『고금소총』 역시 우리나라 설화에 관한 관심을 표명한 저작이라 할 만하다.
홍만종이 편찬한 『고금소총』은 현재 일본 동양문고에 보관되어 있다. 여기에 실린 이야기는 모두 17세기 중반~18세기 초반에 향유된 여러 잡록(雜錄)에서 가려서 뽑아낸 것이다. 다만 이전 시대에 온전하게 소화(笑話)만을 수록한 『태평한화골계전』 · 『촌담해이』, 『어면순』, 『속어면순』에서는 한 작품도 뽑지 않았다.
그가 고른 작품들은 잡록들 중에서 소화나 패설(稗說)이었다. 현재까지 확인된 바에 의하면, 『고금소총』에 수록된 이야기는 유몽인(柳夢寅)의 『어우야담(於于野談)』에서 19편, 김시양(金時讓)의 『하담기문(荷譚記聞)』에서 3편, 김육(金堉)의 『잠곡필담(潛谷筆談)』에서 2편, 김득신(金得臣)의 『종남총지(終南叢志)』에서 22편, 임방(任埅)의 『천예록(天倪錄)』에서 8편 등 다섯 종의 잡록에서 선택된 총 54편의 이야기다.
『고금소총』에 실린 이야기들은 현전(現傳)하는 다섯 종의 잡록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특히 『잠곡필담』에는 『시화총림』에서 발췌한 51편만이 존재할 뿐, 『고금소총』에 실린 이야기의 실물조차 확인할 수 없다. 이처럼 『고금소총』에 실린 작품은 현전하는 잡록들에 실린 작품들과 일정한 거리가 있다. 또한 원본 『고금소총』에는 이보다 더 많은 이야기가 실렸을 것으로 보인다.
고려대학교 소장본 『파수추(破睡椎)』나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 『선언집(善言集)』이 그 가능성을 높인다. 특히 『선언집』에는 80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이 중 31편은 『고금소총』에서, 42편은 『명엽지해(蓂葉志諧)』에서 발췌하였다. 그 나머지 7편 중 적어도 4편 이상은 원본 『고금소총』에 실려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이 점에서 보면 원본 『고금소총』에는 적어도 58편 이상의 작품이 실려 있었던 것으로 확인할 수 있다.
홍만종은 모든 제목을 4자로 붙였다. 예컨대 『어우야담』 ‘창기’ 조항에 제목 없이 수록된 「성산월(星山月) 이야기」에 대해 홍만종은 ‘송주거기(誦呪拒妓)’라는 제목을 붙이고, 『천예록』에 「심진사행괴사화(沈進士行怪辭花)」라고 제목이 달린 이야기는 ‘집요사화(執拗辭花)’라는 4자 제목으로 바꾸어 놓는다. 홍만종은 4자 제목이 패설의 정형성(定型性)이라고 이해하였고 의도적으로 제목을 변개(變改)했음을 알 수 있다.
4자로 제목을 붙일 때는 제목만 보고서도 내용을 알 수 있게끔 줄거리 중 인상적인 부분에 집중하였다. 예컨대 「송주거기」는 “주문을 외면서까지 기생을 거부하다”라는 뜻으로, 기생 성산월을 여우로 오인한 사람이 주문을 외며 그녀를 배척하였다는 내용과 상응(相應)한다. 『고금소총』에서는 내용도 일부 변개하였다. 다른 잡록에 실린 이야기를 단순히 전사(轉寫)하면서도, 이야기에 대한 불만이 있으면 원 내용을 파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개작(改作)한 것이다.
개작 양상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전대 문헌에서 불필요한 부분 삭제, 보완이 필요한 부분 첨가, 그리고 전대 문헌에 대한 불만의 대체 · 보완 등이 그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홍만종은 이전 시대의 패설을 집대성했다.
『고금소총』은 말 그대로 ‘옛날과 지금의 우스갯소리’를 집대성하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러한 의식은 일찍이 조선 중기에 홍만종에서 비롯되었다. 이후 1958년에 민속학자료간행회에서 이 책의 제목을 다시 차용(借用)했다. 두 책은 서로 전혀 다른 책이지만, 지향(志向)하는 바가 같다고 볼 수 있다.
특정 문학 갈래를 집대성하는 것은 과거부터 당대까지 존재하는 성과를 축적하면서 향후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것이다. 홍만종의 『고금소총』은 이 같은 의식을 보인 최초의 저작(著作)이라는 점에서 일정한 의의가 있다.